2023. 10. 5.
눈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 독서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고,
주치의가 내린 금주(禁酒) 명령에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니 사는 게 재미가 없다.
미국에서 잠시 방문차 귀국했던 고교동창은 내가 명필(名筆)
이었다며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하릴없이 쓴웃음만
나온다.
그 친구는 내가 1983년 뇌종양 후유증으로 팔이 마비된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기에 내가 썼던 글씨를 떠올리며
칭찬한 건데 불편한 오른팔을 보며 괜히 우울해진다.
글씨를 못쓰고,
책도 볼 수 없으니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Tv를 켠다.
투생(偸生)에 해당되는 인간들, 시경 상서(相鼠) 편에서
말하는 쥐새끼 같은 정치인들이 나오는 채널을 피해 중국
항저우에서 중계방송하는 아시안 게임을 본다.
예전부터 나에겐 묘한 징크스(Jinx)가 있는데,
스포츠 중계를 보기만 하면 내가 응원하는 팀은 거의 진다.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
유도, 야구가 그랬고 오늘 양궁 컴파운드 결승에서도 인도한테
져 은메달을 땄다.
우상혁의 높이뛰기도,
조금 전 본 여자 핸드볼도 일본 2군에게 져 은메달에 그쳤으니
그놈의 지긋지긋한 징크스는 오늘도 이어진다.
징크스(Jinx)의 사전적인 의미는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으로 여겨지는 것'을 말하며,
기본의미는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기도 한다.
내 머리수술을 집도한 주치의는 나 같은 성격의 소유자는
특히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지는 게임은 피하고 이기는 게임만
보라고 했다.
그게 어디 마음먹는 대로 되는 일인가.
'머피의 법칙'이 더 많다고 하지만 간혹 '샐리의 법칙'도
있기에 Tv채널을 열자 내가 봐서 지는 건지 우리나라가 지는
게임만 나오니 오늘도 징크스를 피하진 못하겠다.
< 유홍초 >
머피의 법칙(Murphy's low)이란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어제 기어코 사달이 났다.
수면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은 채
길을 걷다가 넘어졌다.
이마는 혹부리 영감이 되었고 눈가의 까만 멍자국이 심각하다.
무릎과 오른손은 다 까지고 왼손은 인대를 살짝 다쳤는지
통증을 느낀다.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나쁜 쪽으로만 일이 진행되는
일종의 경험법칙에 반해,
우연히도 유리한 일만 생기고 설사 나쁜 일이 있더라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는 샐리의 법칙(Sally's low)을 기대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판에 박힌 루틴(Routine)도 재미없지만,
매사 억지로 되는 일도 없고 이렇게 다쳤을 때 진퇴양난
(進退兩難)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한 달 전 강동역 오름길에서 튀어나온 블록에 걸려 넘어질 뻔
했고,
어제 넘어진 곳에서도 며칠 전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그랬다면 매사 조심하여야 하는데,
수면 내시경에서 깨어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이를 간과(看過)하고 걷다가 동일 장소에서 앞으로 넘어져
병원에서 치료 받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이 또한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거고, 우연(偶然)이 아닌 필연
(必然)이라 할 수밖에 없겠다.
가끔은 예상하지 않은 행운이 줄줄이 이어지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는 걸 보고 싶지만 세상일이 그리
쉬운가.
암튼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의 은메달, 동메달도 매우
값지기에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23. 10. 5. 저녁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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