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12 두 번째 불쾌한 양보

김흥만 2024. 6. 2. 16:07

2024.  5.  30. 08;20

남산 트래킹을 하려고 전철에 오른다.

강일역까지 차내는 붐비지 않고 조용하다.

 

상일역부터는 많은 승객이 타 시끄럽기도 하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긴다.

 

2~3분 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 눈을 뜨니 옆에 앉았던

젊은 여성이 벌떡 일어나 앞에 선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해 준다.

 

건너편 임신부석에는 남자가 앉아있고,

참 오랜만에 자리양보를 하는 행동을 보며 미소가

나온다.

 

난 며칠 전에 자리양보를 했다.

고덕역에서 한 젊은이가 내 옆 임신부석에 덥석 앉는다.

 

"여긴 임신부석이니 내 자리에 앉으라"며 비켜주었더니

사양도 안 하고 당연한 듯 내 자리로 옮겨 앉았고,

그 임신부 자리에는 또 다른 남성이 잽싸게 앉는다.

 

세상에 나이 먹은 사람이 건장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

하다니 불쾌한 마음이 들어 물끄러미 그 청년을 바라본다.

 

불쾌한 양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수년 전 파주 감악산을 가며 전철에서 임신부석에 앉은

젊은이에게 양보를 하고 내내 서서 갔는데 똑같은 일이

반복하여 발생한 거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우리나라 전래의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런 행위는 사라지고, 양보는커녕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던지 휴대폰에 집중을 한다.

 

양보란 과연 좋은 행동일까라는 의구심(疑懼心)이

가끔 든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양보가 필요

할 때 젊은이들은 외면하고 오히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양보를 잘한다.

 

보란 승자의 아량이 아니다.

물론 전쟁이나 국익, 직장에서 진급 등에는 양보를 할 수가

없지만 노약자에게 양보를 하는 일은 아름답다.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성이 떨어졌다.

범죄자와 범죄혐의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한심한 나라에서 

누구 탓을 할까 그냥 그렇게 살아야겠지.

 

                    2024.  5.  3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