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11 개망초 명상(冥想)

김흥만 2024. 5. 29. 08:52

2024.  5.  28.  08;30

내가 근무를 하는 사무실의 베란다는 제법 넓어 6인용

야외식탁 4개를 배치하고도 여유가 있다.

 

안전유리와 철제기둥 앞에 아이들이 올라서지 못하도록

작은 화분을 배치하여 작년엔 고추와 토마토 등을 심었는데

금년엔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지상에서 8층까지 날아온 '개망초' 씨앗이 발아하여 며칠 전

꽃망울을 터뜨렸다.

                               <   개망초   >

 

뽑아버릴까 놔둘까 궁리를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

개망초가 잘 있는지 수시로 들여다보다 정이 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화초와 함께 똑같이 물을 준다.

 

8층이라는 높고 황량한 곳에 핀 개망초,

꽃모양이 계란프라이를 닮아 계란꽃으로도 부르기도 하는

개망초를 오늘도 들여다보며 잠시 명상(冥想)에 잠긴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고 또 피는 개망초는 망초와 함께

19세기말 우리나라 개화기에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개화기 나라가 망할 때쯤 들어왔다해서 '망초'라는 이름을

얻었고,

세분화시켜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식물학자들은 망초와

개망초로 구분하더니, 개망초를 봄망초와 개망초로 또

구분을 했다.

 

망초 이름 앞에 '개'자가 붙은 개망초,

꽃이나 과일 이름 앞에 '개'자가 붙으면 '볼품없다'라는

뜻인데 개망초는 이와 반대로 아래 '망초'보다 더 예쁘다.

                       <    화담숲에서 찍은 망초   >

 

봄망초는 혀꽃이 빗질을 하지 않은 것처럼 조금 산만하고,

개망초는 빗으로 정성스럽게 빗어낸 듯 혀꽃이 정갈하다.

 

봄망초는 4월부터 6월까지 피며 줄기속이 비어있고,

개망초는 대개 6월부터 피는데 줄기속이 꽉 차있는 게

특징이다.

 

내가 찍은 이 꽃은 봄망초 일까, 개망초일까,

꽃잎으로 봐서는 개망초다.

 

줄기를 잘라보면 금세 알 수가 있을 텐데 이 꽃 또한 자연의

소중한 생명 중 하나임에 분명해 함부로 잘라보기가 싫다.

 

09;00

나이가 먹을수록 후덕(厚德)해져야 하는데

성격이 점점 예민해진다.

 

어제도 친구에게 화를 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생각을 바꾸었더라면 무시(無視)가 아니고 칭찬으로

들렸을 텐데 말이다.

 

나야말로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나오는 전형적인 노인지반

(老人之反)이 아닌가 자괴감이 든다.

 

개망초꽃을 한참 들여다본다.

꽃멍이다.

 

모든 게 멈췄다.

시간도 멈췄고 잠시나마 나 자신을 돌아봤다.

비로소 친구에게 느꼈던 미안한 마음이 사그라들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기저기 마구 피어 사람들한테 괄시를 받는

개망초꽃이 나를 명상수행(冥想修行)으로 이끌었구나.

 

                       2024.  5.  28.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