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26 하늘빛

김흥만 2024. 7. 30. 14:02

2024.  7.  30.  05;30

예봉산 하늘 여명(黎明)빛이 붉게 물들어간다.

여명빛보다는 아침노을이라 하는 게 맞겠다.

 

먹구름 사이로 하늘이 살짝 나오고 예봉산, 적갑산,

예빈산 산자락도 이내 붉은빛과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장엄하게 보이는 붉은빛은 금세 사라지지 않고

한참 동안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05;35

모처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새벽,

시간이 되자 태양이 예봉산 뒤에서 훌쩍 튀어나와

하늘가에 등장하더니 다시 먹구름 속으로 숨었고,

태양이 사라진 하늘가에는 맑은 고요만 흐른다. 

 

아침노을과 저녁노을 중 어느 게 더 멋있고 좋을까?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 바보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고 답을 구한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부산을 떠는

새벽형 인간이다.

 

모처럼 양궁 등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느라 두시가

지나 간신히 잠들었고,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운동을 나왔다가 멋진 일출과

새벽노을에 맞닥뜨린 거다.

 

지루한 장마철에 태양이 등장하는 일출과 퇴장하는 

일몰을 보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얼마 전만 해도 지리산 천왕봉(1,915m) 일출이 그리워서

어둠과 강풍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올라갔고,

설악산 대청봉(1,708m)에 올라 바닷속에서 튀어 오르는

태양에 혼(魂)이 빠져 마음이 설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젠 지리산과 설악산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서 지울 만큼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모처럼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날이니 저녁엔

팔당대교에도 나가봐야겠다.

오늘따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운(餘韻)의 시간에

삼각산 하늘가에 비치는 저녁노을이 보고 싶다.

 

아침노을과 일출은 감상과 소원을 비는 대상이지만,

석양에 물든 저녁노을과 일몰은 위로 받고 싶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은퇴직후 바라보던 석양과 저녁노을,

그때는 은퇴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저녁노을과 석양을

바라보면 조금 서글펐었다.

 

그래도 석양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시각에 마시는

한잔의 술맛이 그렇게 좋았다.

어쩌면 석양증후군(sundown syndrome)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한창때 바라보던 일출과 석양(夕陽)은

황혼기에 바라보는 일출, 석양과 분명히 다르다.

 

느낌이 서로 다르다는 자명(自明)한 사실을 내 재주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조금 더 늙거나 아파지면 표현이 쉬워지려나.

 

06;00

최근 동창 두 명이 지병으로 잇달아 타계를 하였다.

소식을 듣고 처음엔 망연자실(茫然自失)하였지만

며칠이 지나자 불안, 초조, 격앙, 우울, 망상, 혼동 등의

이상 증세는커녕 그냥 무덤덤하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강한 의문이 생긴다.

젊음과 늙음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까.

 

또한 젊은이는 늙은이를 어디까지 이해해 줄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2024.  7.  3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