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25 빗소리

김흥만 2024. 7. 25. 17:05

2024.  7.  24.  05;00

요즘 제일 애매한 건 일기예보의 신뢰문제다.

불과 30분 전인 4시 30분에 발표한 일기예보에 의하면

비는 그치고 맑음으로 나온다.

 

창문으로 보는 하늘에도 하현달이 떠있다.

기상청 예보를 믿어야 할까,

혹시라도 비가 쏟아지면 낭패를 당할까 의심이 강하게

들어 우산을 챙긴다.

 

황산 숲으로 들어서자 매미들이 일제히 울어댄다.

매미들이 울기 시작하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

한다는 건데 지금 울어대는 매미는 무슨 종류일까

귀를 기울인다.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참매미, 말매미,

쓰름매미, 기름매미들 울음이 갑자기 뚝 그쳤다.

 

쏴아!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나무 잎사귀들이

파도를 만난 듯 일제히 갈라진다.

 

'작달비'가 쏟아진다.

하늘이 뻥 뚫린 듯 세차게 퍼붓는 작달비는 나와 세상을

집어삼키고 매미 울음소리도 집어삼켰다.

 

새벽부터 맴맴, 맴맴, 찌르르르, 찌르르르 짝을 찾으며

숲을 울리던 뜨거운 매미 목소리와 숲의 공기마저

요동치게 하던 생명의 기운이 순식간에 숨을 죽였다.

 

10여 분 후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살아남은 매미는

다시 악을 쓴다.

이 녀석들은 굵은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용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도 버티었다.

 

하긴 유충으로 애벌레로 짧게는 3년간 길게는 7년

이상을 컴컴한 땅속에서 버티고 자라다가 겨우 땅

바깥으로 나와서 길게는 2~3주일 정도 짧은 생을 살다

매미,

 

길어야 한 달 반 정도 사는 매미가 껍질이 벗겨지는

선탈(蟬脫)의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생(生)을 마감

한다면 너무 억울한 게 아닌가.

 

빗속에서 해방된 매미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에 신나게

울어대고, 어느 나무에 붙어있을까 위를 올려다보니

떡갈나무 몸통에 붙어있다.

떡을 쌀만큼 두툼한 떡갈나무 잎사귀가 매미를 보호

해줬나 보다.

 

매미소리가 점점 커진다.

숲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매미 소리가

커질수록 인간세상의 고요함은 쥐 죽은 듯 깊어진다.

 

05;40

잠잠했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번엔 둥둥둥 북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양철을

두드리듯 탁탁하는 소리가 들린다.

 

공원 한구석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 지붕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빗소리와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옆 개골창에서 개구리와 맹꽁이가 일제히 합창을

하고, 맞은 꿩이 꿩꿩 울어댄다.

 

빗소리와 숲 속의 소리가 걸러지지 않고 귓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온다.

 

작년 여름엔 돌발성 난청으로 꽤나 고생하였는데

귀의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니 소리를 듣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나는 빗소리가 좋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빗소리,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듣던 빗소리,

건넌방 툇마루에서 듣던 빗소리가 좋았고,

비 오는 날 엄니가 부엌에서 날궂이용 파전을 부치는

소리를 사랑했다.

 

만 가지 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린다는 내 고향 진천 만뢰산

(萬賴山 611.7m)에서 소나기 쏟아졌던 날 나는 나비

소리를 들었고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꾸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만뢰산에서는 내가 모르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 문득 그리움이 앞선다.

 

                           2024.  7.  2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