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0. 18;00
7월 17일 아침에 날아온 한통의 카톡 메시지는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까운 친구가 영면(永眠)에 들어갔다는 내용을 읽으며
가슴이 떨리고 어찌할 줄 몰라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확인해 보니 전날밤에 여러 통의 전화와 카톡 메시지가
왔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드는 바람에 친구의
죽음을 모르고 잠만 퍼질러잤으니 참으로 황망(慌忙)할
따름이다.
며칠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별세라,
동창이자 친구지만 나보다 나이가 네 살이나 많아
듬직한 형으로 생각했고, 볼 때마다 충청도식 호칭으로
'엉아'라고 부르곤 했는데 안타깝다.
십수 년 전 수술한 폐암의 예후가 안 좋아 최근 고생을
하였고, 목소리가 나무 안 좋아 걱정을 하면서도
조만간 힘을 차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다니.
장수사진 촬영을 두 번이나 신청하고도 몸이 아파
촬영에 응하지 못하였을 때 감을 잡았어야 했다.
사업체에서 은퇴를 하면 산에 같이 다니겠다고 약속
했던 친구가 사전 예고 없이 작고하였고, 지금
이 시각에 저승길에 있다는 삼도천(三途川)을 잘
건넜을까.
사후(死後) 첫 7일이 되지 않았으니 내가 꿈속에서
만났던 삼도천을 아직 건너지는 않았겠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혼자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내가 좋아하는 가수 양지은이 애달프게 부르는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노래를 듣는다.
♬ 가지 마오, 가지를 마오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강물에 떠내려가는 마지막 꽃잎일 새라~~~♪
진성과 가성에 콧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국악창법이 가미되어 파장이 조금 길고, 진폭이 큰
바이브레이션이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는 목소리가
담백하게 들린다.
슬프지만 비탄에 빠지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울림이 오히려 더 슬퍼지는 양지은의 노래를 들으며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온다.
나는 16년 전 은행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잘 놀며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이 친구는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굴지의 베어링 사업체를 운영했으니
참으로 바쁘게 걸어온 삶이다.
이렇게 살아온 과정이 서로 달랐어도 만나면 반가웠고,
못 보면 서운했던 친구를 이제는 영영 보내야 한다.
< 원추천인국 >
화려했던 청춘도 흘러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황혼길에 들어서면 병마(病魔)도 쉽게 이기지 못한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곁에 있던 가족, 많은 친구와
지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향해
떠나간다.
영원한 이별이 점점 많아지며 애별리고(愛別離苦)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기에 현인들은 인생무상
(人生無常)이라 했던가.
세상에 영원한 것도 없고,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삶이란 지나고 보면 촌음(寸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00
떠난 친구 생각에 목이 메어 밥숟가락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서재로 들어왔다.
천둥번개 요란하더니 작달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잘도
쏟아진다.
친구의 허망한 죽음을 애도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는다.
평소 남에게 싫은 말이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성품이 온화했던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추억은 많지
않다.
그래도 "여보시게 친구여 잘 가시게, 그곳에선 제발
아프지 마시게~"
마음속에서 친구를 떠나보내며 안타까운 눈물
한 방울이 눈밑으로 슬그머니 흘러내린다.
소뇌위축증, 파킨슨병, 루게릭병, 폐암, 급성 심근
경색 등 이런저런 사유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여러 친구들이 타계를 했고, 이번이 고등학교 동창
기준 70번째 별세이다.
나는 진즉에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등록했고,
사후 '장기기증 및 시신기증'까지 등록을 했으며,
최근에 동창, 친구들과 함께 장수사진을 빙자(憑藉)한
영정사진까지 찍었다.
나이 들어 친구들이 자꾸 떠나면 속상하고 점점
외로워지지만 남은 황혼삶을 어떻게 살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다.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그냥 사는 데까지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닌가.
백두산에서 합동 고희연(古稀宴)을 치른 것처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 적당한 날을
잡아 합동 '사전 장례식'을 치뤄야겠다.
2024. 7. 2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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