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839 인생은 미완성<춘천 김유정 문학관>

김흥만 2024. 10. 5. 15:22

2024.  10.  4.  09;00

춘천행 고속도로 위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푸르다.

5월의 하늘이 저랬을까,

 

어느 예술가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시월의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10;40

어느 누군가 말했다.

다리가 떨리면 늦었다, 가슴이 떨릴 때 길을 나서라고

했던가.

 

그렇게 말한 사람은 현자(賢者)일까, 지자(智者)일까,

아니면 인자(仁者)일까.

 

당초 계획된 58명 중 이런저런 사유와

같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지병으로 어지럽고,

다리가 떨려 민폐를 끼칠까 두려워 포기를 한 친구가

8명이나 발생했다.

 

지금 김유정 생가와 문학관을 관람하기 위해 철길을

한가로이 걷는 친구들은 어느 부류에 속할까 곱씹는

나쁜 버릇이 발동했다.

 

현자란 무엇이고, 지자와 인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옛말에 지자요수(智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다.

 

지자(智者), 즉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물이란 지세를 따라 흐르되 작은 틈도 놓치치 아니하고

적시니 지혜(智慧)를 갖춘 자와 같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니 예(禮)를 갖춘 자와 같고,

깊은 곳, 장애물, 험한 곳을 두루 거쳐 멀리 흐르기에 

지혜로운 자가 물을 좋아하는 이유라는 거다.

 

인자(仁者), 즉 어진 자는 산(山)을 좋아한다고 했다.

무릇 산이란 만민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요,

산에서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초목이 나서 자라고,

새들이 둥지를 틀고 짐승이 그곳에서 쉰다.

 

산은 구름을 일으키고 바람을 인도하며 천지간에

우뚝 서서 국가가 이것으로 안녕을 얻으니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현자(賢者)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물론 현자에 대한 정의(定義)와 정답은 없다.

 

내가 현자의 정의에 대하여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현재 이곳을 걷고 있는 바로 우리 모두가

현자 아닐까.

 

치열했던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보릿고개, 월남전과

군사혁명, 산업화와 데모(demo) 시대의 아픔과 함께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온 우리,

 

비록 온 세상 널리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고,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무명으로 살아왔어도 자기 삶을

아끼고 서로 사랑하고 살아온 우리야말로 진정한

현자라는 생각이 든다.

 

10;50

북카페로 변신한 기차에 오른다.

전철이든 기차든 기차를 탄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기왕이면 창가 자리가 좋다.

 

요즘 고속열차는 조용하고 무척 빠르다.

창밖의 풍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여행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틈도 주지 않고 목적지에 내리게 한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던 증기기관차는 아니지만

수십 년 전의 이 완행열차는 조금 느리게 달렸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때 증평에서 기차를 탔다.

고등학교 시절 명절 때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구하지 못하면 천안행 기차를 타고 병천을

거쳐 진천에 내려갔다.

 

제37사단에서 훈련을 마친 김흥만 이등병은 증평에서

기차로 용산역 TMO에 와서 대기하다가 춘천행 군용

열차를 타고 103 보충대로 팔려갔다.

 

똑같은 계급장을 단 이등병 수백 명이 더블백 메고 탄

군용 열차 속,

 

그날 따라 열차 창밖엔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렸고,

질식할 정도로 가라앉은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나는

한강 모래사장에 널린 한톨의 모래알 신세였지.

 

1968년 서울시내 전차가 사라졌고, 군에서 제대하고

오니 증기기관차도 사라졌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고 부산으로 전출을 갈 때 그레이

하운드 고속버스를 탔고 한참 후 지하철을 탔다. 

 

때로는 쉽게 질러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멀리 돌아

갈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이동수단이 바뀌면 한참

섭섭하기도 했었다.

 

모처럼 앉은 완행열차의 의자는 추억과 함께 깊고

작은 울림을 준다.

 

기차 창문밖으로 보이는 가로수 위로 파란 허공이

보인다.

나뭇잎은 서서히 떨어져 가고 빈 가지 사이로 나타나는

허공에 대고 나의 사라진 젊음을 반영(反映)해 본다.

 

빈 가지에서 느끼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는 무엇일까.

나이 먹은 쓸쓸함인가.

 

전깃줄에 앉아서 재잘거리던 제비들은 사라지고,

떠날 때가 가까워진 기러기떼 한 무리가 텅 빈 하늘에서

역 V자 형태로 편대비행 연습을 한다.

 

친구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나이 되도록 그리움도 많았고 꿈도 많았다.

다들 멈추지 못하고 앞만 보며 숨 막히도록 바쁘게

살아왔지.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우리 학교 교실의 책걸상을

뒤집어 놓은 게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56년 세월이

흘렀다.

 

느린 걸음으로 가는 여름 하늘은 저만치 멀어져 가고

우리의 화려했던 젊음도 흘러간 세월 속 한 편의

추억으로 사라져 간다.

 

삶이란 지나고 보면 이렇게도 빠르게 지나가는

한순간인 것을 아직도 한참 남아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 이젠 남은 세월에 애착을 느껴볼 시간도

별로 없겠다.

 

11;20

소설가 김유정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에 들어간다.

예쁜 아기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천사가 따로 없다.

 

이 아기들의 본성은 착할까, 악할까?

아기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그리고 고자의 성무성악설, 왕충의 성선악혼설,

정약용의 성기호설을 떠올린다.

 

맑은 눈망울을 보여주는 아기들에게 어른들의 잣대로

착한 존재, 나쁜 존재로 구분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자체가 성악설에 해당되는 거

같아 잠깐이지만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11;40

두 번째 김유정 생가에 들린다.

기록을 찾아보니 5년 전인 2019. 7. 18일 김유정 생가에

들렸다가 금병산(金屛山 652m)에 올랐다.

 

그날 부슬비가 내렸고,

비가 그치자 기온은 30도가 넘었고 이곳 세상은 염천

(炎天)이 되어 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29살에 요절한 천재작가 김유정 선생,

불과 5년 여 집필기간에 소설 33편과 수필 12편 등

총 45편을 썼으니 엄청 빠른 속도이다.

 

그중 한국문학전집에서 읽었던 동백꽃(생강나무),

소낙비, 노다지, 봄밤, 두꺼비 등이 생각난다.

 

2m까지 왕성하게 자라 야생초의 왕이라 불리는

'왕고들빼기'를 양조장 앞 밭두렁에서 만났다.

 

최근 떨어진 기온으로 잎사귀는 말라가지만 1m 이상

자란 왕고들빼기의 당당한 자세는 바랭이 납작 엎드린

풀숲에서 왕의 모습이다.

 

참고들빼기, 이고들빼기는 키가 작은데 왕고들빼기는

덩치가 크고 야생미 넘치는 잎과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한다.

 

12;10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급성심근경색, 폐암 등으로

동창 3명과 은행 입사동기 1명이 타계를 했다.

문득 그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며 그리워진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흘러간 시간도, 지금 이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곁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더니

고교동창만 65명이라는 타계(他界) 숫자를 기록했다.

 

이별이 점점 많아져가는 고적(孤寂)한 황혼 인생길,

 

남은 친구들은 이별여행을 하기엔 아직 멀었기에

한 번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한잔술을

나눈다.

 

14;00

철길에서 '자주조회풀'도 만났다.

 

워낙 꽃이 작아 미풍(微風)에도 마구 흔들리기에

호흡을 조절하며 한참을 기다렸다가 셧터를 누른다.

 

오늘 여행이 끝나간다.

내가 살면서 놓친 것들이 무엇일까,

이번 여행을 주선하고 진행을 하며 미흡했던 부분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느 누구든 완벽한 삶은 없다.

어차피 인간의 삶이란 미완성이 아닌가.

 

작사가 김지평 선생은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랫말에서

< ♬인생은 미완성~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이라 했다.

 

서울행 전철이 요란스럽게 지나가고 잠시 철길을

홀로 걸으며 고독을 느낀다.

다수의 대중들 사이를 걸으면서도 고독을 느낀다는 건

살아있는 자들만의 특권이 아닌가.

 

산다는 게 별거 아니라지만 전쟁세대로 태어나

보릿고개, 병역 고개와 산업화 고개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고 우리 모두가 우주에서

엄청난 존재라 할 수 있다.

 

내가 살아있어야 세상만물과 주변 사람도 존재하는 것,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세월이란 무상(無常)하고 삶은 어차피 미완성인걸.

 

         2024. 10.  4. 김유정 문학관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