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1. 04;30
그놈의 버릇 참 고약하다.
여행의 고단함으로 아침까지 늘어지게 자야 하는데
새벽 4시가 되자 자동으로 눈이 떠졌으니 이 습관은
평생 고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꼬끼요♬!
수십 년 만에 들리는 닭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암탉은 울지 못한다.
그렇다면 수탉은 어디서 우는 걸까.
고향집 사립문옆에 닭장이 있었고 뒤꼍에는 돼지
우리가 있었다.
굴뚝 아래 토끼장이 있었고, 토끼장 옆 나무상자
에는 이맘때 딴 땡감이 가득 들었고 홍시가 될
때마다 식구들이 간식으로 꺼내 먹었다.
어느 날 족제비가 토끼장 철망을 교묘하게 뜯고
들어가 토끼 한 마리는 물어가고 나머지는 다 물어
죽였는데 조금 사나운 수탉이 있는 닭장은 건드리지
않았다.
수탉은 싸움닭으로 많은 암탉을 거느렸으니 감히
침범을 못한 모양이다.
앞마당 남쪽에는 감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가
뒷마당에는 툇마루 위를 덮는 포도나무가 있었다.
먼동이 트기 전 새벽잠을 깨운 수탉의 울음소리는
나를 수십 년 전 고향집으로 시공간 이동을 하게
만들었다.
04;40
숙소밖으로 나오자 재킷을 걸쳤는데도 온몸이
오싹하다.
기온을 보니 영상 2도로 어제 낮기온보다 20도
이상 떨어졌다.
< 털별꽃아재비 >
닭이 우는 곳을 찾다가 밤하늘을 보았다.
음력으로 그믐이라 달이 없다.
희미한 가로등불이 사라지고 인공조명의 간섭이
없는 곳이라서인지 하늘에선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환상적인 밤하늘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내 카메라는 별사진을 촬영할 수 없는 수준이라
눈과 가슴으로 담기 시작한다.
북극성과 사람의 생명과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별자리를 지키고 은하수는
서산으로 넘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는 약 4,000억 개의 별이 있다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별은 몇 개나 될까.
전갈, 궁수, 염소, 물병, 폐가수스, 안드로메다,
양, 황소, 오리온, 쌍둥이, 까마귀 자리 등 별자리
28수(宿)를 배웠는데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빛 간섭이 없다면 이론상 사람의 눈으로는
약 5,000~6,000여 개의 별을 볼 수가 있으며,
지구는 북반구와 남반구로 나뉘어 각 반구(半球)
에서 볼 수 있는 최대의 별은 약 2,500여 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직녀와 견우성(星)을 찾아본다.
은하수가 있어야 견우와 직녀가 까치가 만든
다리를 건너서 만날 수 있을 텐데,
은하수가 없어도 서로 만날 수 있을까 잠시 동화
속의 소년이 된다.
전기가 없던 시절 밤하늘에 보석처럼 빛나는
28수(宿)의 별자리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단
같은 은하수를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자주 보았지.
횡성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며 시(詩) 한수
읊는다.
< 강물소리
횡성의 여명빛 오르기 전
하늘의 맑은 고요가 그렇게 좋았다.
작은 별들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하늘의 시공간(時空間)은 은하수(銀河水)
강을 만들었다.
닭 울음소리에 꿈의 공간에서 깨어난 나
검은 하늘의 시공간과 함께 물아일체
(物我一體)가 되었다.
서산마루에 남긴 철퍼덕 은하수
강물소리는 황혼 고개를 헤매는 내 가슴을
처연(悽然)하게 만들고 사라졌다.
석천 >
샛별이 뜨면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 소리가
제일 먼저 새벽의 고요를 깼고,
샛별은 개밥바라기별이라며 강아지 메리가 마루
밑에서 밥 달라고 낑낑댔다.
동편하늘이 붉어지며 먼동이 트면 감나무에 앉은
까치가 짹짹 울어댔고,
살구나무에서 참새가 재잘거렸다.
아버지는 올망졸망한 자식새끼들 추울세라
군불을 지펴놓고 사립문을 열어 마당을 쓸기
시작하고,
앞집 쌀장수 아저씨는 삼발이 트럭에 쌀을 싣고
싸전으로 향했다.
옆집 광주댁 '거시기' 아주머니가 폐질환을 앓고
있는 아저씨 드실 약을 약탕기로 달이는 냄새가
골목에 퍼질 때쯤 나는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
타실 자전거를 닦았다.
횡성의 별빛이 쏟아지는 밤,
타임머신을 타고 지상과 천상의 세계 속을 유영
(游泳)하다가 수십 년 전 내 고향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2024. 10. 31. 횡성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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