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51 포쇄(曝曬)로 가을을 보내다.

김흥만 2024. 11. 30. 08:22

2024.  11.  29.  15;00

북풍한설(北風寒雪)인가,

전철역에서 나오니 눈보라가 친다.

 

지난 이틀간 40cm가 넘는 폭설이 내린 거도 

모자랐는지 하늘은 함박눈을 뿌려준다.

 

덕풍중학교 여학생들이 떼를 지어 나타난다.

오후 3시라 하교시간인가 보다.

 

함박눈은 소녀들의 감성에 맞는지 우산도

쓰지 않고 재잘거리며 신이 났고,

나는 머리와 옷이 젖을세라 우산을 펼친다.

 

모처럼 영하권으로 떨어진 기온에 겉에는

겨울용 패딩점퍼를 입었지만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체질이라 안에는 가을 셔츠를

입었다.

 

옷을 한번 사면 잘 버리지 않기에 한 장 두 장

사서 입다 보니 여름옷보다는 가을옷이 많은

편이다. 

 

가을옷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아 입기가 편해

좋다. 

그러나 가을더위에 이어 느닷없이 닥쳐온

폭설과 영하로 떨어진 기온은 순식간에 겨울

복장을 강요했다.

 

가을이 사라졌다.

겨울과 짧은 봄을 거쳐 찾아온 여름이 길게

남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더니,

이번엔 단풍을 예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백설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영하권으로 떨어진 기온은 겨울옷으로

온몸을 감싸게 만들었고 을씨년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16;00

눈이 그쳤다.

날씨가 쌀쌀해도 집안의 창문을 전부 열어

환기를 시키며 청소기를 돌린다.

 

햇볕이 없는데 포쇄(曝曬)가 되려나,

그래도 서재의 책과 옷방의 옷을 말리려

창문을 연다.

 

너무 길어진 여름에 며칠 전 꺼내논 점퍼와

긴팔 티셔츠 등 가을옷은 쓸모가 없어졌다.

 

옷걸이에 걸어놓고 이번 가을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점퍼와 티셔츠를 개기 시작한다.

 

군대 관물함에 정리하듯이 각을 세우고 오와

열을 맞춰 수납을 하는데 의외로 종류와

가짓수가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겨울용 토퍼와 코트, 패딩점퍼, 롱코트를 꺼내

가을옷을 치운 옷걸이에 걸면서 투덜댄다.

 

이 옷은 작년에 입었던가,

체중이 늘어 혹시나 안 맞으면 다시 장만해야

하나,

 

꺼낸 옷을 하나씩 입어보고 대형거울 앞에서

홀로 패션쇼를 하면서 멋적은 웃음을 짓는다.

 

17;30

가을 낮은 형편없이 짧아졌다.

어느새 해는 서산에 떨어졌고 어둠이 밀려왔다.

 

며칠 전 겨울나기용으로 구입한 핫팩 세 박스를

서재 한귀퉁이에 쌓고 한 장 남은 탁상용 달력을

넘겼다.

 

한구석에 밀어놓았던 선풍기 두대를 분해하여

날개를 닦고 몸통은 폴리백으로 감싸고,

리모컨에서 배터리를 꺼내 분리하며 가을을

배웅한다.

 

               2024.  11.  2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