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 12;30
아들내외와 손주 두 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
오자 썰렁했던 집안은 금세 활기가 넘친다.
손주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부르기 좋고 의미가 있는 이름으로
지어야 할 텐데 한동안 정하지를 못했었다.
김해김씨 항렬을 따른다면 창(昌), 현(鉉),
배(培), 종(鐘)의 순서에 따라 손주들은 종
(鐘)에 해당된다.
내 이름은 어땠을까.
나는 항렬상 현(鉉)에 해당하는데,
아버지는 이를 따르지 않고 흥만(興滿)으로
이름을 지으셨다.
아버지는 내 아들이 항렬이 배(培)에 해당
하니 헌배(憲培)가 어떠냐는 의견을 주셨는데
새배도 아닌 헌배라,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장모님이 지으신
이을 승(承) 자를 써서 승욱(承昱)으로 출생
신고를 하였다.
승(承) 자가 인연이 되었는지 며느리 이름도
승희(勝喜)라 내친김에 손주들도
작명가인 도담(蹈譚) 친구의 도움을 받아
승민(承珉), 승현(承鉉)으로 지어 아들가족
4명을 전부 승(承) 자로 통일시켰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술을 따라드리며 내
이름에 대해 불만사항을 말씀드렸다.
흥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중 60살이 넘어도 애들 이름이라 품위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가 야단을 맞았다.
흥만이라는 이름은 6.25 전쟁당시 쌀 한말을
주고 지은 이름이라며 비싼 대가를 치른
이름을 폄훼한다고 단단히 혼난 거다.
사실 전쟁통에 쌀 한말은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식량으로 금반지보다 귀했다고 한다.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문(呪文)이자
주문(注文)이다.
따라서 우리 부모들은 당신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자식들이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름을 골라 작명을 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천한 이름이어야 잘 살 수
있다며 '개똥이', '쇠돌이', '부뜰이'라는
아명으로 짓기도 했다.
여자들은 일본 식민지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자(子), 순(順), 숙(淑), 미(美), 영(英), 희(姬)
자를 많이 썼던 걸로 기억이 나며,
간혹 딸을 많이 낳은 집안은 일부지만 막, 말,
종(終) 자를 써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
요즘 이름 덕을 본 정치인이 화제다.
판결에 의해 죽었다가 판결에 의해 살아
나기도 한 이재명(李在明) 민주당 대표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在자가 운이 있는 건가 아님 明자에 운이 있는
건지 참 묘한 일이로다.
유감스럽게 明자가 들어간 명복, 명근 등 내
고향친구는 다 요절(夭折)을 했다.
그렇다면 있을 在자에 복이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문재인 전 대통령도 민주당 대표
이재명도 다 있을 재(在) 자를 썼다.
이름풀이에 문외한이라 내가 이러쿵저러쿵
따질 실력이 없으니 그저 그 사람들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호(號)와 자(字)는 무엇일까.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석천(石泉)이라는
호를 스스로 작명하여 지금까지 즐겨 쓴다.
석천은 바로 돌 틈에서 흘러나오는 샘, 즉
석간수(石間水)를 뜻하며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겐 이름이 여러 개 있다.
태어나면 부모나 조상이 지어주는 이름을
호적에 올리는 관명(館名)이 있고,
호적에 올리지 않는 다른 이름인 아명(兒名)과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르는 태명(胎名)이
있다.
16세 이상 성인이 되면 관례를 치르고 부모나
집안어른이 자(字)를 부여한다.
호는 덕망이 특출하거나 학문 또는 예술이
뛰어난 사람에게 남이 지어주는 수도 있지만
대개는 스스로 직접 작명을 하며,
시호(諡號)는 국가에서 내리는 호를 말한다.
호(號)에는 존칭이 붙지만 자(字)에는 존칭을
쓰지 않으며 자는 서로 호칭하는 동료지간이나
아랫사람에게 쓴다.
몸은 죽어도 이름은 썩지 않는다.
이름대로 살아가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최근
몇 년간 나름대로 호를 지었다.
사연이 많은 사고(士高),
심성이 좋고 술을 좋아하는 주봉(澍鳳),
상대방을 배려하기 좋아하는 개심(价深),
정종대왕 후손인 왕손(汪巽),
낚시를 좋아하는 허공(虛空),
말술을 마시는 대주(大舟),
막걸리와 농사를 즐기는 걸리(杰犁),
평소 말이 없는 과묵(寡默) 선생,
뒷모습이 당당한 후청(煦靑),
당구를 잘 치는 구당(球撞),
올챙이 별명을 가진 친구는 금와(金蛙),
여자들에게 구애를 잘하는 담연(淡燕),
친구들에게 잘하는 대형(大兄, 따거)
당구를 친 후 반성을 잘하는 반성(反省),
친구들에게 봉사를 잘하는 종신(宗信, 終身)
이밖에 '말봉(靺峰) 선생',
만화주인공인 '머털도사'를 닮아 '머털',
야구 만화 주인공을 닮았다 해서 '까치' 등을
지었다.
고사성어에 복경호우(福輕乎羽)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복(福)은 새의 날개보다 가볍다]
라는 뜻으로 자기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행복하게 된다는 말이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행복의 기준을 조금만 낮추면 되는
것이다.
요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이름대로 살아가며 사소한
행복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사는 내내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2024. 12. 1.
석천 흥만 졸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854 울림 그리고 떨림 (2) | 2024.12.08 |
---|---|
느림의 미학 853 허~참! 국지불국(國之不國3)이로다. (0) | 2024.12.07 |
느림의 미학 851 포쇄(曝曬)로 가을을 보내다. (0) | 2024.11.30 |
느림의 미학 849 단풍나무의 비애(悲哀) (1) | 2024.11.19 |
느림의 미학 848 슬픈 모기와 뻔뻔한 인간모기 (3) | 2024.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