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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길의 설악산 서북주릉을 타기 시작한다.
봉길이는 일행들을 잘 먹이려고 회도 싸왔고, 소주도 640mg 2병이니,
2홉들이 18병(360mg)정도 양인데도 무거운 짐을 기꺼이 멘다.
헉헉!
천하명산, 천하절경!
어떠한 미사여구를 붙여도 양이 차지 않는 산.
두 시간 만에 서북주릉 귀떼기청 3거리 안부(1,350m)에 도착한다.
소주 한잔 후 능선길에서 천천히 고도를 올린다.
여러 번 이 구간을 올랐어도 보지 못했던 설악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빨리 올라가기 급급했고, 내려가기에 바빴고 일행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조급함에 이 아름다운 모습을 주마간산한 어리석음에 마음이 아퍼온다.
우뚝 솟은 귀떼기청, 무수히 뻗어 내린 산줄기, 처처의 어디를 보아도 빼어나지 않은 구석이 없이
산악미의 극치를 이루는 설악산.
어떤 이는 북의 금강산과 쌍벽을 이룬다고 하지만, 노골적인 금강산보다는 어딘가 그 모습을 들어
내지 않는 설악이 한수 위가 아닌가?
용아능선과 공룡능선을 아래로 깔고 세 시간 만에 '끝청'에 도착한다.
'얼레지'가 지천이다.
뿌연 연무 속에 삼형제봉, 방태산 주억봉, 가리봉, 점봉산, 가칠봉이 가지런하게
조망된다.
여기가 1,610고지이니 앞으로도 100m를 더 높혀야 대청봉이다
너덜지대를 벗어나니 '중청산장'이 나온다.
휴! 살았다.
바람은 좀 세지만 대청아래서 여러 능선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깔때기 심연 속으로 빠져 든다 .
시끄러운 취사장에서 라면과 홍어무침회로 소주를 마시니 금방 취기가 오른다.
씻지 못한 땀 냄새를 각오하고, 겨우 양치만 눈치껏 하고 잠든다.
새벽잠 없는 봉길이 구시렁 거리는소리에 깨 '대청봉' 일출을 기대하고 올라가니 해무가 심하다.
해무가 끼었는데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달이 '점봉산'을 비춘다.
여명이다.
세찬바람과 바다에 드리워진 해무로 일출은 포기하고 내려오다가
화채능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
'소청'에 들어서는 순간 난 온 몸에 오르가즘을 느낀다.
휘휘감은 산릉과 산봉이 고운 몸을 드러내고 날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봉정암 거의 다 와서 난 기절할 지경이다.
용아장성 암릉 밑에 고즈넉하게 서있는 산사와 주위풍광은 예술이랄까.
신(神)은 얼마나 더 설악산을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
힘들게 올라오는 여승에게 "예쁜 누님 힘 내세요." 하니 너무 좋아한다.
그저 예쁘다 하면 늙은이, 젊은이나 스님이나 다 좋아하니,
경치는 더 좋아진다.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눈사태에 죽은 쌍폭, 구곡담, 기암인 골짜기의 작은 소마다 신선들이
몸과 마음을 닦는 곳인양 맑고 고운 빛의 물이 담겨 있고, 태곳적 자연미가 넘치는 골짜기는
신비스럽다.
다람쥐 한 마리가 열심히 도토리를 먹으며, 사람이 겁나지 않는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서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포즈를 취한다.
'수렴동 산장'에서 막걸리 한 사발 못한 게 한이 되어 쓰린 가슴을 안고 하산한다.
등산길 6시간, 하산길 6시간.
12시간에 걸쳐 설악산 종주를 하였으니 처음 올라온 재영인 가문의 영광이라 한다.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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