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6 미천골 조봉

김흥만 2017. 3. 21. 19:21


2008.  7.  17.

방태산에서 한잔을 하며 다음엔 '미천골 조봉'을 가자고 제의가 들어온다.


홍천의 껄덕주와 남녀성기를 테마로 한 휴게소에서 휴식을 하는데 남근상이 뭇 여인을

유혹한다.

 

 

 

9시 반에 도착. 

방 배정을 받아 짐을 정리하고 산행에 나선다.

 

계곡이란 호젓해야 제멋인데,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야호! 비경이다."라는 탄성이 나온다.

 

너른 암반이 나오고 급류와 폭포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충북 괴산에 있는 화양구곡을 합쳐놓은 19곡이라 해도 허언이 아닐 것 같다.

 

하얗게 핀 개망초대를 타고 오르는 능소화가 지천이다.

'조봉'은 백두대간의 '응복산' 북서쪽의 지능선을 가지고 뻗쳤는데, 여기서 제일 높은 곳이

해발 1,182m의 '조봉'이다. 

 

자연스럽게 생긴 이 협곡은 아래로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다. 

200~300m의 깊이는 보통이라, 전국의 산을 다녀봤어도 이런 협곡은 보기 힘들며 남한

제일의 협곡인 모양이다.

 

잘 발달된 주상절리를 보며 임도로 접어든다. 

수령 수백 년은 됐음직한 아름드리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지천이다.

지도도 없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초행길인데 아무리 걸어도 등산로 입구가 없다. 

 

불바라기 카페 주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가 3km 이상 더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차로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하자는 의견이 일치하여 봉길이 혼자 내려가 차를 가져온다. 

 

등산로 표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5.2km를 걸어야 정상이라고 한다.

표지판에 화살표 하나만 있었어도 바로  치고 올라갔을 텐데, 나중에 내려와 확인하니 

바로 '조봉' 들머리였다.

 

저게 무슨 나무지? 

침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고도계는 700m를 가리킨다. 

 

구상나무일까?   

솔방울이 위로 치솟아 달리는 구상나무는 1,000m 이상 고산지역에서만 있는데, 

가까히 다가가서 보니 구상나무가 맞다.

평창, 횡성, 양양 등은 우리나라에서 나무가 가장 잘 자라는 곳이다. 

기후 토질 등이 좋아 양평보다 네 배 이상 잘 자란다고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무지하게 덥다.

왼쪽 계곡에선 찬바람, 오른쪽 계곡에선 더운 바람이 불어온다.

개구리 한 마리가 죽어있고 옆 웅덩이에는 올챙이가 득시글거린다.

 

벌써 2시간째 운행인데 등산로 입구는 보이지 않고,

문성이는 등산이 싱겁다고 툴툴대고, 영인이는 대모산보다 쉽다고 한다.

 

고도 900m의 불바라기 약수터 입구다. 

여기까지 7km이상 걸은 거 같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다.

지류를 이리저리 건너며 200m를 더 가다 발이 미끄러져 계곡에 발이 젖는다.

방태산에선 종승이 빠지고 오늘은 내가 빠졌는데 다행히 등산화 속으로 물은 안들어갔다.

 

폭포소리가 우렁차게 들려 위를 쳐다보니, 우측엔 20m 이상 되는 3단 폭포가, 

왼쪽엔 같은 규모의 2단 폭포가 보이며, 폭포 중간에 호스 한 가닥이 내려와 있고 주위가 빨갛다.

 

'불바라기 약수'다.

우리나라 약수 중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며, 폭포 중간에서 나오는 신비스런 약수로 그 맛과

효능은 신약으로 탁월하다고 한다.

 

'불바라기' 명칭은 '불바닥'이 변하여 된 이름으로 철분이 많다.

그 맛 또한 `불같다`하는데, 진동 방태산의 '방동약수'나 '오색약수' '방아다리약수'

'신약수'보다는 순한 거 같다.

 

많이 먹으면 설사한다고 하는데 한잔을 마시니 속이 짜릿하다.

철분과 마그네슘이 듬뿍 함유된 이 약수는 위장병, 피부병, 간장병 등에 좋다고

하며, 이 물로 밥을 지으면 푸른색과 누런빛이 섞인 특이한 빛깔의 찰밥처럼 된다. 


배낭에서 장수막걸리 5병을 꺼낸다.

계속 올라가도 끝이 없고 오르다보니 '작은 점봉산'과 '점봉산'이 조망된다. 


어찌할까?

아마도 응복산을 거의 다 올라온 거 같은데 한 시간을 더 올라가도 등산로 입구가 나오지 않아

포기를 하고 돌아선다. 

 

조봉은 찾지도 못하고,

릅이 지천이라 오늘 저녁 술 안줏감으로 상대의 순한 부분만 채취한다. 

달개비 꽃, 노랑물봉선, 엉겅퀴 꽃이 지천이다.

 

샤워 후 봉길이 김치를 맛있게 볶는다.

돼지고기와 함께 데친 두릅과 소주 한 잔을 하던 중 술이 부족하다고 인영이 나가서 5병을

더 사온다.


7.  18.  02;00

세찬 빗소리에 잠이 깨니 새벽 두시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 새벽 조깅을 못하니 아쉽다.

 

조침령을 넘어선다. 

태영이의 전화를 받으며 204 GP에 들어간다고 약을 올리고

고개를 구비 구비 넘어 빗속에 방동약수에 도착 약수 한잔으로 숙취를 달랜다.

 

원통을 지나 서화, 천도리를 지나 펀치볼에 도착하여 간단한 수속을 밟고 제4땅굴로 들어간다. 

내가 현역시절인 73년부터 차단작전을 하다가 그 후 17년이 흐른 90년도에 역 갱도를 뚫어 

땅굴을 발견하였으니, 남한이 질긴 건가 북한 빨갱이가 질긴 건지 암튼 대단한 민족이다.

 

승용차로 1278고지에 있는 을지전망대 204, 205GP 중간으로 올라간다.

3중의 철조망이 분단의 현실을 안타깝게 표현한다.

안개가 너무 심해 '펀치볼'과 북한의 스탈린고지, 김일성고지, 금강산이 운해에 가려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저쪽 옥녀탕 계곡에 여자병사를 발가벗겨 목욕시키며, 아군병사를 유혹할 때도 있었는데,

눈을 녹여 밥을 짓고, 세수, 면도는 생각도 못했던 곳에 수세식변소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산 길에 사계 청소하는 병사들을 보며, 대암산 약수를 한잔하고 도솔산을 올라가나 

시계가 5m도 안 되는 최악의 기상조건이다.

도솔산 전적지,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도 전혀 조망이 안 된다.

 

양구 남면 광치막국수집에서 편육, 동동주, 감자전, 막국수로 맛있게 식사 중, 이등병이

소령하고 맞담배질을 한다. 

군대 참 좋아진 건지 그래도 장개석군대는 아니겠지.

 

 

인제, 홍천경계에서 옥수수 한 자루씩 사고 귀경을 서두른다. 

 

                            2008.  7.  18. 조봉의 불바라기 약수터에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