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9.
지난주 토요일 친구 딸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 친구를 만난 지 10여 년 됐던가.
2년 전 송년회에서 만난 다른 친구를 통해 내가
그 친구의 모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서운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엄중한 시기였고,
연락을 받은 일도 없었기에 2년이나 지난 후
새삼스럽게 부의금을 보내기도 모양이 안 좋아
난감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 한구석엔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예식장에서 만나 미안함을 전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사람과 사람의 상대성 이론은 복잡하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오히려
단순한 편이다.
3차원에서 시간개념을 합치는 시공간의 이론을
알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금세 이해가
되는데 반해 사람과 사람간의 상대성 원리는
알면 알수록 친하면 친할수록 아리송할 때가
많다.
다른 나라는 위로와 축복의 문화지만 우리나라
에서 경조사는 '품앗이 문화'라 할 수 있기에
경조사에 단 한 번이라도 빼먹거나 소홀해지면
수십 년 이어왔던 인간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건강과 함께 옛날의 좋은 기억과
추억은 큰 자산이 된다.
오래전 위암수술을 받았던 친구,
걸음걸이와 말투가 어눌해진 친구,
160만 원짜리 보청기를 낀 친구,
3번씩이나 스텐트 시술로 심장의 위기를
넘겼다는 친구들의 늙어가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졌다.
수십 년 세월을 함께 한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세월은 상처를 희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간직하고 싶은 것들까지 휩쓸어 가버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살면서 우리는 숱한 만남과 이별을 겪지만
가슴에 남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느새 얼마 남지 않은 희미한 추억마저 시간의
배수구로 휩쓸려 사라져 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내 곁에 있는 친구와 지인도 우리 모두는
미완(未完)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함께했던 시간보다 함께하지 못할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
(去者必返)이라 정의했다.
따라서 모든 인연에는 헤어짐이 있고, 이별 후
에는 다시 만남이 있다는 거다.
새로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익숙한 나이,
무엇을 얻기보다는 상실이 더 쉬운 시절을
살아가는 동안,
삶의 황혼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고, 내가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나를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기적이 이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다 부질없는 욕심이겠지.
4년 만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마음에 품고
힘들게 끌고 오던 것들을 놓아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생각도 비우고 줄이고 단순해질수록,
마음에 여백이 커지면 커질수록 몸이 가벼워
지고 그 여백의 공간엔 '참 나의 모습'이
채워지는 게 아닐까.
2025. 6. 29.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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