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98 황산숲길의 정자

김흥만 2026. 7. 4. 13:33

2026.  7.  4.  05;30

   숲 속에서 젊은이들 응원 함성이

요란하다.

 

잠시 후 한 청년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내가 서있는 정자 앞으로 헉헉대며

뛰어서 올라온다.

 

무게가 20kg이라는데,

TV 예능프로인 강철부대에서 탄약통

으로 대용하던 물건과 비슷해 보인다.

 

아마도 특전부대 지망생인 모양이라,

숨이 가빠 힘들어하는 청년에게 사진

이나 말을 걸기도 조심스러워 힘내라

말만 하고 스쳐 지났다.

 

정자 사이로 삐쭉 나온 북쪽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새벽노을이 생기는 중이니 오늘도 오후

비가 많이 오겠다.

 

황산숲길에 있는 팔각정 황산정(荒山

亭)의 지붕을 바라본다.

 

우리나라 한옥의 형식으로는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한 다포식(多包

式)과 주심포(柱心包), 익공식(翼工

式)있고,

 

지붕의 종류는 '솟을지붕',

팔작지붕의 기본형인 '맛배지붕',

 

사대부가나 사찰, 궁궐 등에서 볼 수

있는 '팔작(八作 합각)지붕'과

지붕 네 면이 모두 같은 각도로 내려

오는 '우진각지붕' 등이 있다.

 

우진각이 초가지붕의 형태라면

우리나라 정자 대부분은 육모정 기둥과

같은 각도로 내려오는 형태의 육모지붕

형식을 많이 썼다.

 

건물의 격(格)을 따지는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

亭)에서 정자는 가장 말석이다.

 

누각(樓閣)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게 지은

2층의 구조를 가졌고,

 

정자(亭子)는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해 지은 집으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 있으며 누각이 정자보다

조금 더 크다.

 

기둥의 형식으로는 밑에서 꼭대기 쪽

으로 조금씩 가늘게 다듬어 만든

'민흘기둥'과

 

중간정도가 직경이 크고 위아래로

직경을 점차 줄여 만든 '배흘림기둥'이

는데 황산정 기둥은 그냥 단순한

기둥이다.

 

내가 관심있게 본 배흘림기둥으론

서산 개심사와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이다.

 

그중 개심사의 기둥은 배흘림 형식을

충실히 따랐지만 개심사 범종각의

기둥은 배흘림이나 민흘림의 기법은

배제하고 나무가 휘인 상태 그대로

써서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명품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 황산 숲길에 서있는 정자는 여러

형식을 따르지 않고, 흘림이 없는

단순한 기둥으로 만든 팔각정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때 비를 피하

거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황산정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바로 인근에 '가나안 농군학교'가

있었고, 80년대 은행에서 대리급

책임자의 필수 교육 코스였다.

 

1983년 흙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와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소비가 미덕이라 하는데,

그 때는 근검절약이 최고의 덕목

(德目)이었으며,

 

농군학교에서 닭장을 개조한 숙소에서

자고, 씻을 때 치약은 3mm, 비누는

남자 두 번, 여자는 세 번만 비비라고

했다.

 

06;30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나왔더니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많이 띈다.

 

떼를 지어 slow running을 하는 청년,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언덕배기 위쪽이 오늘도 시끄럽다.

어제의 그 노인네가 오늘도 환자복을

입고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발성 연습을 한다.

 

이상 참기 어려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숲 속은 금세 조용

해졌다.

 

어제 오후 세시반에도 강동역 승차장

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악을 쓰는 여자

에게 시끄럽다고 소리를 쳤다.

 

세상이 왜 이럴까.

여름 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린다.

 

더울수록 남을 의식하지 않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세상

살이를 더 힘들게 만든다.

 

청년들이 땀 흘리며 훈련을 하는

소리는 아름다운데, 숲 속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는 공해가 아닌가.

 

            2026.  7.  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