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123 오지의 산 울진 통고산<1,067m>

김흥만 2017. 3. 24. 22:53


2010.  9.  16.  06시

나는 무엇을 향해, 무엇을 얻기 위해, 여행의 참 목적은 무엇일까?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까.

나는 번잡함에서의 해방을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목적과 목표가 있는 여행은 재미가 없다.

단순하게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려,

사랑하는 친구들과 배낭을 둘러메고 새벽길을 나선다.

 

새벽안개 속에 동녘 빛이 핏빛으로 물든다.

그래 떠나자.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10여 년 전 '남한 최후의 비경으로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는 신문기사 한 조각을 들고,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산 통고산을 다녀왔었지.

 

심미골(深美)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아무리 가물어도 항상 이정도의 물줄기는 흐른다니 통고산의 숲이 얼마나 짙은가~

암반과 풍부한 수량이 어울린 이 아름다운 계곡을 심미골이라 한다.

 

들머리의 자그마한 헛간 여러 곳에 탈곡기, 이앙기, 쟁기 등 옛 농기구들이 가득하다.

 

햇쌀이 눈부시고 따갑다.

임도를 30여 분 올라가야 등산로가 나오는데,

산양의 서식지로 알려진 통고산은 등산 산행지로서는 점수를 별로 얻지 못한다.

산중턱을 가로질러 난 임도가 원인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울창한 원시림이다.

숲속의 아름드리 거목들이 주는 신선함이 크다.

 

양반꽃이라 불리는 능소화가 곱게 피었고,

 

양반꽃, 대감꽃, 절꽃 등으로 불리어 상민들이 함부로 이꽃을 집안에 심어 키우다 발각되면

혼줄이 났다는 꽃인데,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피어 처녀꽃, 금동화라고도 한다.

 

[  임금과 '소하'라는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골길 행차 시 너무나 신비롭고 순수한 소녀에 이끌린 임금은 궁에 데려가기로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못하자, 소녀는 담장 밑에서 임금의 행차만 기다리다 먼 훗날 상사병으로

눈을 감는다.  ]

 

능소란 밤을 능가한다는 뜻과, 소하의 한창 무르익은 소녀의 자태가 어둠의 밤조차 방해하지

못하고 늘 아름답게 빛을 낸다 하여 능소화란 이름이 붙었다는 거다.

 

가을이 내려오고 있다.

흰 구름이 하늘을 휘 젖고 다닌다.

무궁화과의 수박풀이 곱게 피었다. 

 

아침에 피었다가 오전중에 시들어 조로초(朝露草)라고도 한다.

1년생 초본으로 아프리카 원산이라고도 하는데 어느새 무궁화과로 분류되어

우리의 대자연에 야생한다.

 

와!

임도 주변에 '뚝갈'이 눈부시다.

 

 

백색으로 천궁, 구릿대, 기름나물, 갯기름나물, 궁궁이와 너무 닮아 줄기와 잎사귀로

구분해야 만 알 수 있다.

한방과 민간에서 부종, 풍비, 산후, 화상, 치질 등에 쓰인다는데,

너무 많이 피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그 화려함에 어지러움을 느낀다.

 

사방댐을 지나 조그만 폭포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인증샷을 한다.

 

여러 날 이어진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산 안의 소요와 혼탁을 산 밖으로 밀어냈다.

보이는 것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요,

들리는 건 물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에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 소리이다.


여름을 넘긴 산은 너무 좋다.

태풍에 무너진 나무들이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목도 마르고 온몸이 다 젖어온다.

집 냉장고에 1.5리터를 얼려놓고 챙기지를 않았다.


건망증인가 아님 치매 초기인가? 

휴대폰을 손에 들고서도 찾아 다니고, 넥타이핀을 넥타이에 곱게 차고도 찾는 나이가

되었으니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고들빼기'를 캐 술안주 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임도가 징그럽다.

흙길이었음 좋았을 텐데 세멘트 포장에 9월의 열기까지 더하니 숨이 막힌다.

 

능선위로 구름이 흐른다.

구름이 지워졌다 다시 살아서 꿈틀거린다.



천천히 걷지만 땡볕 아래 임도를 걸으니 등줄기는 벌써 젖었고 팬티까지 젖어온다.


산 아래 들녘과 건너편 산봉우리와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니

정상이 모습을 감추었다.



뙤약볕 길 임도는 통고산 허리를 이리저리 짤랐다.

급비탈의 절개 면으로 산행 리듬을 끊어 버리고 긴장감을 없애주니 두통마저 생긴다.

 

30여분 지나 드디어 된비알을 치며 올라야 하는 들머리이다.



이정표엔 1.5km에 한 시간 소요된다는데 거미가 한창 집을 짓고 있다.

 

안에서 바깥쪽으로 짓는 게 아니라 크게 바깥쪽을 짓고 나서 서서히 안쪽으로  좁히며,

짓는 모습을 정신없이 쳐다본다.

왜 그럴까?

바깥 원이 지주인 모양이다.

 

영재가 보리자나무 아래에서 편히 휴식을 취한다.

보리수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보리자나무가 정확한 이름이다.

 

한 아름이 아닌 두 아름 이상의 거목들이 숲의 절정을 이룬다.

기막힌 숲을 가진 산인데 임도 때문에 평가 절하되어 악평이 많은 산이니 안타깝다. 

 

잠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 축구, 술, 섹스를 화제에 담는다.

그 중에서도 군대이야기는 단연 1순위이다.

 

오늘 총리에 지명된 김황식 감사원장도 '부동시'로 군대를 면제 받았다는데

참으로 재미난 나라이다.

대통령,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대표, 국무총리 지명자까지 다 군대 면제자이니

정상적으로 군대를 다녀오면 출세를 못하는 모양이다.


'북한'이라는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민족보다 더 나쁜 인간들과 대치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나라인데 군대를 기피한 연예인들은 퇴출되고 면제된 사람들은 출세하니 말이다.

 

영재의 

"휴가 나와서 술은 취하고 돈이 없어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하다 공중전화에서 잠이 들었다고?

무전취식으로 헌병대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고~자대 복귀 후 대출 압력을 하던 중대장에 밉보여

사단 영창에 들어갔으나 우연히 알게 된 헌병장교의 덕으로 영창기간 중 휴가를 즐기고,

복귀했다"라는 경험담으로 다들 배꼽을 잡는다.  

 

급경사길이다.

힘들수록 보폭을 줄여야 하는데 선두와 격차가 많이 벌어진다.

전형적인 육산인 통고산의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된비알을 올라 능선에 올라선다.

숲은 터지고 더 오르면 뭔가 더 보일 것 같은데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우리의 거친 숨소리와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임도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니 싱그러운 솔바람의 시원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민다.

연리지도 아닌 수령이 200년 이상 추정되는 소나무이다.

 

안동을 거쳐 봉화로~불영계곡~울진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는 천하일품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 경영림은 면적이 2,274ha로 평균 나이

150년에 500년짜리도 있으며 평균 직경이 40cm가 넘는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일본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중국은 버드나무, 캐나다는 단풍나무, 유럽은 올리브나무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무이다.

 

농경 문화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는 이 땅에서 자라는 1천여 나무 중에서

건축재와 연료, 약재, 껍질의 구황식물로 가장 뛰어나 조상들의 삶에 가장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면 집 앞에 소나무를 심고 임금이나 왕족이 죽으면 속 부분이 누런빛을 띠는

황장목으로 관을 만들어 생명과 죽음의 문화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문학, 예술, 신앙,

사상에도 자연스럽게 접목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의 소나무 보호정책은 신라의 화랑도 "식송"에서 부터 시작되어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산' '봉산' '송금절목'등의 정책을 폈으며,

3금법인 송금(松禁), 우금(牛禁). 주금(酒禁)에 해당 될 정도로 엄격히 관리해왔다.

굳이 4금(四禁)이라 하면 궁금(宮禁)이라 해서 일반백성은 궁궐 안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졸참나무 밑둥치에 큰 구멍이 나있다. 

 

'옹달샘 40m' 팻말 앞에서 배낭을 내려 놓으니 짙은 숲의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아마톡신 성분을 가진 독버섯인 흰알 광대버섯의 모양이 외계에서 내려온 우주선으로

보이고 골프공으로도 보인다.

 

 

휴! 통고산 정상(1,067m)이다.

[유심웅장 幽深雄狀한 백두대간의 낙동정맥인데,

 부족국가시대 실직국 悉直國의 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산을 넘으면서 통곡하였다

 하여 통곡산 通哭山으로 불리다가 그후 통고산 通古山으로 불린다.] 라고 정상석 뒷면에

새겨져 있다.

 

원래 소리 내어 운다는 통곡은 통곡(痛哭)으로 써야 맞는데, 통할 통(通)자를 쓰니 나 또한 

모를 일이다.

 

10여 년 전엔 정상에서 벌러덩 누워 흘러가는 구름과 잠자리들의 비행을 보며 젊음을 노래하고

사방을 조망하였는데 잡목으로 둘러싸여 고산준령이 조망이 되지 않는다.

 

정상주는 장수막걸리이다.

 

 

 

막걸리 병을 자세히 보자.

같은 장수막걸리이지만 오늘 봉길이 짊어지고 온 것은 충북 진천에서 나온 막걸리이고,

우리가 즐기는 서울 탁주의 장수막걸리와는 다르다.


상표의 글자까지 같으니 어찌 된 거지 로열티를 지급한 유사상표일까?

맛은 현저히 다르지만 마실만하다.

 

막걸리에는 오덕五德과 삼반三反이 있다.

一德은 취하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취하지 않음이요.

二德은 새참에 마시면 요기가 되는 것이요.

三德은 힘 빠졌을 때 마시면 기운을 돋으니 삼덕이요.

四德은 안되던 일도 한잔 후 웃으면 되는 것이고,

五德은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와 화가 풀리니 오덕이로다.

         즉 옛날 관가나 향촌에서 큰 대포 한잔을 돌려 마심으로써 가졌던 크고 작은

         감정을 풀었던 향음 鄕飮에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삼반 三反이란

         일은 안하고 놀고 먹는 사람이 마시면 속이 끓고 트림과 숙취를 부른다 해서

         근로지향 勤勞志向의 반유한적 反有閑的이요.

         임금도 토막의 토방에서 오지항아리에 빚은 막걸리를 찾아 마셨으니

         반귀족적 反貴族的이며,

         민관군 民官軍이 참여하는 대사나 제사 때에 합심주로 막걸리를 돌려 마셨으니

         평등지향의 반계급적 反階級的이라는데,

누가 지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참으로 이상한 물체로다.

버섯인지 흰 두더지 같기도 하여 스틱으로 살짝 건드려도 움직이질 않는다.

많이 징그러운데 무엇일까?

 

나중에 확인해 보나 '노루궁뎅이 버섯'이다.

 

잠시 전에 머물렀던 정상에 흰 구름이 머무른다.

 

나무 그늘 아래 실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달래준다.

모두가 꿈이었나?

지나온 정상과 능선의 흰 구름을 뒤돌아보며,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려나 문득 마음이 시려온다.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 겨우 한 사람 정도 지날만한 하산길이다.

 

 

두터운 숲 속에서 갑자기 임도로 내려 서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이며 현기증이 나

당혹감을 느낀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물에 내려 서니 깊은 숲 속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발을 담그니 너무 시려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서둘러 계곡물을 빠져 나가기는 아쉬운데 선두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오름길 5km 와 하산 길 6km 니 산행이 11km 나 되었구나.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피신했다는 왕피천(王避川)을 끼고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단지로 이동하지만 9km에 가까운 비포장 길을 포기한다.

 

신라 진덕여왕(651년) 때 의상대사가 큰 못의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쫒아내고,

그 자리에 절을 창건한 후 서쪽에 있는 부처 형상 바위의 그림자가 항상 못에 비치기에

불영사(佛影寺)라 이름 지은 절을 지난다.

 

죽변항에서

잡어회와 소주로 여행의 맛과 멋을 즐긴다.

 

           [    인 생

           

            인생은 기쁨으로,

            슬픔으로도 걸어 갈 수 있는데

            나의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일까.

           

            누군가 불러 준다면

            아니 내가 부른다면 여유를 갖고

            뒤돌아 볼 수도 있는 인생이지.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

            슬프기도 해 보고

            힘들기도 해 보고

            눈물이 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었고

 

            원 없는 인생,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인생만이 남았나.

            한줄기 스쳐 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이지만,

            세월이 너무나 아까워

            포구의 석양빛도 아쉬워 한숨지네                   석천  흥만  ]

 

누군가가 그리워져도 보지 못하고, 다시 젊음으로 돌아 갈 순 없다.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는 나이라,

하고 싶은 이야기 꼭 해야 될 이야기도 때론 하지 말아야 할 지혜도 필요한 나이이다.

 

자연휴양림 숙소에서 술 한 잔을 하며,

"누군가 부를 때에는 따지지 말고 무조건 응하자."라고  결론을 낸다.


내일은 봉화의 청량산으로 이동하여 이틀 연속 산행인데 내 체력이 감당할까.

밤하늘엔 별들이 난무한다. 


                                  2010.  9.  16  오지의 산 통고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