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127 쉬엄쉬엄 둘러보는 북한산 둘레길

김흥만 2017. 3. 24. 23:04


2010.  10.  6.

북한산(836.5m)은 도심 속에서 사방이 웅장하고 화려하며 넉넉한 산세를 보여주는

명산으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산이다.

 

최고봉인 백운대나 인수봉의 모습이 아기를 업은 듯하다하여 부아악<負兒岳>,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3개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삼각산 <三角山>이라 불리었고,

그 밖에도 횡악(橫岳), 황악(黃岳), 화악(華岳), 화산(華山)으로도 불리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19년경에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들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에

새 나라(백제)를 건국하려고 내려와 지금의 한강이북 지역을 도읍으로 물색코자 지금의

서울인 한산(漢山)에 이른 후 부아악(負兒岳)에 올랐다고 하는 기록으로 보아,

마치 아기를 업은 어머니(負兒岳)같이 생긴 삼각산은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키는 산으로

우리의 민족사에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부아악은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인수봉(仁壽峯)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인수봉은 삼각산의 제1봉이다.

사면이 순 바위로~ 봉우리 등에 한 바위가 붙어서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부른다." 라고

하였으며, '부아(화)가 치밀어 솟아 오른 곳' '불끈 솟아 오른 곳' 또는 '남성의

성기인 불알'이라고도 하였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백제는 도읍을 웅진으로 옮기게 되고 백제 26대 성왕이

신라 진흥왕과 손을 잡고 잃어버렸던 한강유역과 '부아악'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지만 다시

2년뒤 신라에게 그 땅을 빼앗기고 만다.


삼국시대에는 전략요충지인 '부아악`에서 국경싸움이 끊이질 않아 서기 555년 신라

진흥왕이 삼각산을 국경으로 삼는다는 순수비(巡狩碑)를 비봉에 세우며,

한강 이북 지역을 행정구역상 북한산주(北漢山州)로 지명하고, 명산대천의 하나로서

소사(小祀)를 지냈다.

이렇듯 <삼각산>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산의 고유지명이다.
삼각산은 고려 성종 이래 일천년간 사용된 명칭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00년경부터 북한산이란 명칭이 혼용되었고, 국립공원 지정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강북구청등 에서는 삼각산으로 꾸준히 명칭 복원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북한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돌산에 그것도 악산이라 (嶽산 아닌 鍔산, 岳산, 惡산이라)~이름 마저도 북한과 같은 

'北漢山'이라~물론 '北韓山'은 아니지만 북한만 떠 올리면 핵 개발하며 주변국에 공갈

협박이나 하고 3대 세습이나 하는 북한 빨갱이가 연상되니 말이다.

그나마도 北漢山이 북한 거니까 입장료를 받아서 김정일, 김정은에게 보내야 된다고

주장하는 <3대 세습에 찬성하는 남한 빨갱이:한상렬이 등>놈들이 아직은 없어 다행이지만

생겨날까 걱정된다. 

 

 2010년10월 6일 08시40분

가을이 살짝 내려앉았다.

질릴 정도로 푸르렀던 진초록이 서서히 빛을 잃는다.


여름보다 길게 끌리는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인생의 무게를 헤아리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날 유혹을 한다.

북한산은 쉬엄쉬엄 산 위를 노닐고 둘레둘레 둘레길을 둘러보며 가을 정취를 느끼라고

한다.

 

산은 정상으로만 올라가야 되고 위로만 쳐다보고 정상까지 올라가 정상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해야만 되는 줄 알았다.

'등로주의'냐 '등반주의'냐를 따지며, 위로 가는 길만 쳐다보며 옆길은 아예 있는지

자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빨리빨리"에서 천천히 여유를 찾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자 북한산 둘레길에서

트래킹을 시작한다.

 

전체 70km 중 도봉산 26km를 뺀 44km를 2일에 걸쳐 끝내자는 제의를 난 거절한다.

내 체력으론 무리라 민폐를 끼칠 수도 있고 '느릿느릿'의 여유로움을 맛 보지 못하는

조급함은 싫다.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느릿느릿 여유롭게 걸으며 담소를 나눠야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와 사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15km씩 3회에 걸쳐 완주하자는 절충제의에 두말없이 길을 나선다.

  

 

'우이령' 입구에서 '백운천' 계곡을 따라 소나무 숲길 2.9km 를 시작한다.

지도상에는 약 1시간 30분 걸린다고 안내를 한다.

 

선두는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백운천에 고기가 있나 살피는 중 '이풍원 박사'가 항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꿀풀을 발견한다.

 

광덕산에서 보고 얼마 전 주왕산에선 '붉은 꿀풀'을 보았다.

꿀이 많고 고혈압, 해열, 자궁염, 임질등에 쓰이며 특히 임파선암, 갑상선암, 유방암 등에

좋다고 한다.

줄기와 화서가 6월에 말라 죽기 때문에 '하고초'라고도 불리는데 10월에 볼 수 있으니

난 참 운이 좋은 거 같다.'

지난 주 부용산 정기산행 시에는 대장암에 좋은 '한련초'도 보았지.

 

하고초(꿀풀)

  가.약효

     줄기와 잎, 전초를 <하고초>라 하여 淸肝(청간:간을 건강하게함), 散結(산결:흩어진 기와

     정을 모음) ,  消腫(소종:종기를 없앰),  이뇨(소변을 잘보게 함), 혈압강하의 효능이 있고,

     나력(경부임파선결핵),  癭瘤(영류:갑상선종 즉 암으로 추정됨), 유암(유방암),

     目珠夜痛(목주야통:안구의 병으로 밤에 아픈 증상),

     頭目眩暈(두목현훈:머리가 아찔하고 눈이  어지러움), 폐결핵, 간염, 근골동통,

     혈붕(생리불순으로 출혈이 심함). 대하(여성의 냉증으로 질에서 흰색,갈색등 이물질이 나오는

     증상)를  치료한다.

     임파선암, 임파절종양, 임파선결핵, 화농성유선염, 유방아등에 주로 쓰인다.

  나.법제

     전초를 단오부터 하지까지 채취하여 음건한다.

  다.용법

     전초 15g, 감초1g에 물 700ml를 넣어 반이 되도록 달여서 아침 저녁 2번 지속적으로 복용한다.

     또한 환으로 조제하여 10알씩 아침, 저녁 2번 지속적으로 복용한다 .

     외용으로는 짖찌어 환부에 바른다.

     비위가 약한 증상에는 삼백초를 같은 비율로 쓴다.  <이풍원 박사의 글에서> 

 

호젓한 길에 이어 동네 어귀로 들어서며 골목길을 지나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서니

애국지사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당구를 좋아하는 구당(아홉九 칠撞) 구명환 박사가 손병희 선생과 많이 닮았다. 

차라리 공球자 칠撞자 즉 구당(球撞)선생으로 바꿀까? 

 

애국지사의 묘가 참 많다.

묘 자리로서 북한산의 혈이 좋은가 보다.

대통령 출마할 놈들의 선친묘소는 보이지 않으니 천만다행이다.

얼마 전에도 대통령 출마하는 몇 놈이 제 조상의 묘소를 이장하고 대통령될 꿈에

부풀었겠지.

 

각종 기묘한 모양의 소나무들이 피톤치드를 뿜어내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이런 솔밭 공원의 수백 년 된 멋진 소나무가 태풍 '곤파스'에 의해 뿌리채 뽑히고

두 동강이가 났다.

태풍 '곤파스'의 영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가지의 모양이 우산처럼 넓게 펴져 있어서 눈이 내리는 날에는 그 무게를 지키지

못하고 가지가 쉽게 끊어지는데, 이 소나무는 바람에 아예 뿌리까지 뽑혀 넘어져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푸른 솔잎은 독야청청(獨也靑靑)과 절개의 대명사인데

눈도 아닌 바람에 넘어졌으니 절개는 대가를 수반하여야 하는 모양이다.

 

늙어 가면서도 기품을 더하는 소나무를 항상 닮고 싶었는데,

얕게 넓게 퍼진 뿌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소나무의 나이 들어 쇠락하는 모습이

바로 내 육체의 쇠락과 품격을 말 하는가 보다.

 

어느 산에 가던지 푸른 소나무를 바라다 보면,

나이 먹는 내 아픔이 조금이라도 안심되고 평안을 찾았다

 

육체의 쇠락을 한탄하지 말자.

점점 나이가 들수록 저 소나무처럼 기품이 더해 가야겠지.

 

푸른 소나무 가지위에 하얗게 소담스럽게 쌓인 눈은 겨울 풍광을 대표한다.

흰색과 녹색의 배합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지.

 

누구의 시(詩)더라? 

<춘수만택     春水滿澤~   봄의 풍광은 사방의 연못에 가득찬 물이요,

  하운다기봉  夏雲多寄峰~여름에는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구름이요,

  추월양명휘  秋月揚明輝~가을에는 밝게 빛나는 달이요,

  동령수고송  冬嶺秀孤松~겨울은 산자락에 있는 외로운 소나무.> 라고 했기에

한참을 바라본다.


초록의 윤기를 잃은 소나무 숲은 오히려 푸름을 자랑하는 여름 산보다

소중하게 다가온다.

 

젊은 시절에는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광이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정상엘 서둘러 올라가고, 정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시간을 재며, 무용담에 조급하기만 했지.

이제야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서두르지 않고 오르고 내리니 보이기 시작한다.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는 1구간인 소나무 숲 구간을 45분만에 주파한다.

주마간산(走馬看山)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재영 회장이 준족의 속도를 내니 따라가기가 힘들다.


<순례길>구간이다

혁명의 희생자 260위를 모신 4.19 국립묘지에 정중한 거수경례로 예의를 표한다.


 

 

이준 열사, 이용문 장군, 양일동 선생, 이시영 선생, 김병로 선생, 서상일 선생, 김도연 선생,

신숙 선생, 조병옥 박사 등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의 묘소가 있어 <순례길>인 모양이다.

우이령 입구엔 <연산군>의 묘도 있다고 안내서에 나와있다.

 

탐방센터 앞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담배를 물던 <球撞 구명환선생>에게 지나는 아주머니가

담배피지 말라고 짜증을 낸다.

 

2구간 순례길 2.3km를 45분만(예정시간 1시간 10분)에 끝낸다.

 

마을길을 이리저리 돌아 3구간 '흰 구름길'로 들어선다.

식수를 보충하며 잠시 쉬는 중 비둘기 한 쌍이 홀례(Sex)를 한다.

 

인수봉 위에 흰 구름과 검은 구름은 쫓고 쫓기는 듯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리며,

하늘을 휘 젖고 다닌다.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다.



온도가 많이 올라가 덥다.

손목 고도계에 달린 온도계는 27.7도를 가리킨다.

 

<범의 꼬리>가 화사하게 피었다 .

 

다년생으로 꿀이 많고 한방과 민간에서 통경, 지사, 지혈등 에 쓰인다.

 

쉴 틈도 없이 강행군이다.

흰 구름길4.1km 소요시간 2시간을 1시간20분에 끝내고 솔샘길이 시작되자 마자 된비알이다.

 

현재고도 260m,

저 위에 올라가면 310m 정도 될 거 같다.

 

막걸리 한잔에 숨이 깔딱이며 정릉을 지나 2.4km 구간의 명상길로 접어든다.

 

형제봉 갈림길 큰 바위 앞에서 정상을 통과하자고 유혹을 해도 합의가 되지 않아

둘레길로 진행하기로 결정을 한다.

 

휴! 첫날.

<사색의 길>을 마치고 오늘 일정을 끝낸다.

13.8km에 5시간 10분 걸렸다.


예정 소요시간인 6시간 50분에서 무려 1시간 40분을 단축시켰으니 '느림의 미학'을

실천한 것일까?

내일은 이곳에서부터 시작해 15km 정도가 예정되어 있다.

 

 2010년 10월 6일 08시 40분 2일차

400m 시멘트 오름 길을 헉헉대며 올라간다.

오늘은 희천, 찬문이가 합류해 6명이다.


집사람이 주먹밥 5개를 싸줬는데 한 개가 모자란다.

김밥을 샀으니 해결되겠지.   

 

3km가 넘는 시멘트골목길이다.

이리저리~ 꾸불꾸불~ 급경사 오르막길~ 내리막길~좁은길~말 그대로 아름답지 못한 길이다.

뙤약볕 아래 꽤나 힘들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웬만하면 다 호화주택이다.

 

길 가던 이는 말한다.

이곳엔 연예인이 많이 살고, 세금도 별로 안내는 도둑? 부잣집들이 많다고 한다.

으리으리한 집, 디자인이 독특한 집 등 각양각색이다.

옛날엔 이곳과 세검정이 자두밭과 과수원이 많은 농촌동네였는데,

어느새 성북동, 한남동과 더불어 서울의 3대 부자동네가 되었다.

 

난 이곳에 아련한 추억이 있다.

1968년이니 42년 전인가?

여름방학 때 진천 집에 내려가던 중 시외버스가 광혜원을 지나며 타이어에 펑크가 나

논바닥으로 구른다.

 

난 별로 다치지 않아 재빨리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탈출했다가

옆에 앉아 있던 (설정순)누나를 안전하게 구출해 업어서 길가로 대피시킨다.

청주 친척집 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으니 많이 놀랐나 보다.

손수건을 적셔서 흙 묻은 내 얼굴을 닦아주고 유리에 찔려 피 흐르는 내 다리를 싸매준다.

 

이 사고가 인연이 되어 평창동에서 자두 과수원을 하던 누나 집에 자주 놀러가고,

누나는 금호동의 내 자취방에도 밑반찬을 가져다 는 등 인연을 이어간다.

취업 후 부산으로 전근이 되고 다시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곧바로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졌다.

 

당시 백색전화는 집 한 채 값이라서 내 자취하는 주인집엔 전화가 없었다.

물론 누나 집에도 없었고 군 제대 후 찾아 가니 그 과수원은 이미 주택지로 바뀌었다.

그 아름답던 누나는 지금쯤 60대 후반이 되었으려니 세월의 무게를 다시금 느낀다. 

 

'오색딱다구리'를 추적해 카메라에 담았으나 어느새 숨어 버렸다.

너무나 빨라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청설모가 잣을 입에 물고 전깃줄과 전봇대에서 묘기를 부리며 재빠르게 도망간다.

 

봉우리 정상에 깃발이 있는데 무슨 봉우리인지 이름을 모르겠다.

 

사자능선이다.

족두리봉~향로봉~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하늘 금을 그린다.

'비봉'은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곳으로 신라 백제가 맞부딪친 곳이다.

 

평창마을 길 5km 구간을 1시간40분 <예정 소요시간 2시간 30분)만에 끝내고,

이어 옛 성길이 이어진다.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3호인 '탕춘대성 암문'이 나온다.

이틀째 트레킹에서 유일하게 통과하는 성문이다.

 

 

구름정원길 에서 바라 보이는 북한선의 주능선이다.


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나월봉~나한봉~문수봉~보현봉으로 이어지며,

하늘 금을 이뤄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동양화에서 산이나 바위의 질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법을 준법(峻法)이라고 하는데,

20가지가 넘는다.

 

도끼로 찍어 갈라진 듯한 바위의 날카로운 질감을 나타내는 부벽준 斧劈峻

비가 내리는 것 처럼 점을 내리찍어 황토 암석을 나타내는   우점준 雨點峻

가로로 긴 선을 긋다가 수직으로 내리꺽는                       절대준 折帶峻

산의 전체적인 형상을 귀신의 얼굴처럼 험상궂게 그리는     귀면준 鬼面峻

말의 이빨처럼 그리는                                                 마아준 馬牙峻 등

모두를 갖춘 해동 제일인 명산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하늘길>은 숲 위로 데크를 많이 설치해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느낌을 주나 워낙 빨리 진행해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널찍한 암반에 비단같이 흐르는 계류와 골짜기가 여기저기 보인다,

2시가 다 되어서야 전망대에 도착 주먹밥, 김밥을 안주로 하여 막걸리 한잔을 한다,

세종대왕의 아홉 번째 왕자인 화의대군 묘가 있어도 너무 지쳐 지나친다,

군데군데 묘비가 조그만 내시들의 묘가 있다는데 숲을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다,


진관사 입구를 지나

<마실길>에 수령 200년이 되는 느티나무가 당산목으로 서 있다,

둘레가 2.8m 나 되는 노거수가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  오고 떠남을 묵묵히 지켜본다,


마을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기품어린 모습으로 서 있는 당산목은

은평 뉴타운 사업으로 허허벌판이 이곳을 지키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은평뉴타운 지역을 개발하느라 온통 쓰레기더미다.

그 과정에서 염습을 한 상태의 시신도 많이 발견되었다는 설명도 듣는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 동원되었던 연인을 기다리다 연못에 빠져 죽은 기생의 흔적인

'여기소'터도 있다는데 워낙 빨리 진행되어 볼 수가 없다.

 

구름 속에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섬처럼 떠있다.

 

2일차 총14.1km를 5시간 55분(오늘구간 총 예정 소요시간 7시간 25분)만에 끝내고

다음 구간을 기약한다.

 

흙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꽤나 많이 걸었나 보다.

발목이 아프고 발바닥은 화끈거린다.

내일 아침 다리 컨디션이 어떨까.

 

방패교육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 일정을 끝내면서 둘레길이 품고 있는

오랜 시간을 가늠해 본다.

 

                                2010.  10.  6~7. 북한산 둘레길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