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17,
숙소의 난방온도를 너무 올린 탓인가?
너무 더워 뒤척이다 밖으로 나온다.
심미골의 우렁찬 물소리에 별빛은 지천으로 쏟아지고 내가 아는 별자리는 다 보인다.
통고산 새벽의 찬 기운에 잠시 몸서리를 친다.
이틀 연속 산행에 자신이 없어 안동 하회마을 관광으로 때우려 해도,
청량산 산행을 고집하는 친구들을 꺾을 수 없다.
내일은 고향 친구들과 검단산 산행을 잡았는데 3일을 연속 등산하면 체력이 바닥 날 거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파란 하늘 아래 울창한 소나무, 수려한 절벽과 어우러진 '왕피천'이 여울져 흐르며
한 구비 휘 돌아친다.
산자락의 절벽 위엔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소나무들이 기개를 뽐내고 있다.
술꾼들은 얼큰한 찌게와 갖가지 재료로 만든 호남 음식을 제일로 치며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맵고 깊은 맛이 없다고들 하지만,
어제 저녁 죽변항의 잡어회와 오늘 새벽 휴게소의 산채비빔밥은 정말 감칠 맛 난다.
친구들은 거대한 남근을 만지며 무슨 생각을 할까?
[ 꿈
"쮸비 쮸비 쮸르르르"~~
동박새의 울음소리
나를 고향에 오라고 졸른다.
동네 연못가 느티나무에 기어 올라
동박새랑 놀고
집앞 개울가에서 송사리 붕어 잡으며
고추 내놓고 뒹굴다 깬다. 석천 흥만]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차체 진동에 화들짝 놀라 잠이 달아난다.
꿈속에선 변하지 않은 옛 모습 다 그대로이건만,
아스라이 옛 추억이 떠오른다.
찻 속에서 잠시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08;30
산굽이 굽이 휘 돌아치던 안개는 어느새 사라지고, 9월의 태양이 작렬 한다.
선학정~청량사~뒷실고개~하늘다리~자란봉~선학봉~장인봉~하청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택하지만 난이도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도엔 자소봉,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융봉등 12봉이 청량산을 이루고 있어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기암괴석이 많다.
어느 책에선가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청량산 (淸凉山 870.4m) 비경을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뿐이나
강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이 석벽에 둘러있고, 모두가 만길이나 높으니 험하고 기이
한 것이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라고 경탄을 했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30도 이상 되는 급경사 시멘트 포장길이 정말 힘들다.
2일 연속 1,000고지대 고산등반에 내 체력이 견딜까?
올라온 길 뒤돌아보니 옛날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이 살짝 절묘한 풍광을
보여준다.
휴!
30여 분만에 청량수 한 모금으로 기운을 차린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청량사의 고즈넉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경사진 산 중턱에 기막히게 안정된 배치이다.
09;15
청량산의 본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이곳 청량사 주위의 경치가 빼어나 조선시대에
청량산으로 바뀌었다.
이정표는 여기서 부터 하늘다리까지 40분 걸린다고 예고를 하고,
소 여물통같이 통나무를 판 물길에 물이 졸졸 흐른다.
보이지 않는 정상을 바라보며 올라갈까, 내려갈까?
망 서리다 오르기로 합의한다.
감정과 욕심을 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서도 다가갈수록 정상은 멀리 도망간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멋있는 풍광을 쳐다본다.
세월의 흔적 속에 단청이 퇴색된 '유리보전'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는데 특이하게도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며,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이다.
숨을 고르고 청량사를 바라본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니 세월이 무상한가?
벌써 1,400여 년이 흘렀구나.
휴! 쉬자.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린다.
5층 석탑 앞의 소나무 '삼각송'은
'원효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기르던 뿔이 셋 달린 소가 준공하기 전날 죽는다.
이후 소를 묻은 자리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 후세 사람들이 '삼각우송'이라 부르는데'
영화 '워낭소리,' 드라마 '선덕여왕', '동이'를 촬영했다 한다.
내가 보기엔 수령이 300년 미만으로 보이는데, 원효대사가 617~686년까지 살았으니
1,100여년을 허구로 계산했나?
이상한 계산법이로다.
힘든 너덜길이다.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오른다.
퇴계 이황 선생의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라는 시문이 걸려 있고,
<책 읽기는 산을 노니는 것과 같다고 말들 하는데,
이제 보니 산을 노니는 것 이야말로 책 읽기와 같네.
온 힘을 쏟은 다음에 스스로 내려 오는 것이 그러하고,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야 하는 것이 그러하네.
가만히 앉아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면 묘미를 알게 되고,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원초를 깨닫네.
그대들 절정에 이르기에 힘쓸지니,
늙어 중도에서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 할 따름이네. >
나무 밑둥에 돌을 끼웠다.
예전에는 나무들이 크면 결혼을 시킨다 하여 나무의 갈라진 틈새로 돌을 끼우는
풍습이 있었다.
스님들이 장난을 쳤을까, 아님 지나던 과객이 끼웠을까?
10;30
청량사를 지나며 뒷실고개까지 침목을 깐 가파른 계단이다.
시멘트포장길에 이어 너덜 길과 계단에 넌더리 친다.
경사도 80도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르면 연적봉~탁필봉~자소봉으로 가는 길인데,
우린 청량사에서 가운데 지름길을 택해 바로 뒷실고개로 올라왔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개선이 되어 우리의 경제가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잠시 화제가 된다.
외환위기 당시,
주택은행에선 단 한 푼의 달러($)라도 구하고자 국민들의 대단한 관심을 받으며
KBS와 공동으로 '금 모으기 행사'를 한다.
많은 이들이 장롱 깊숙히 간직하였던 '금'을 가지고 주택은행 창구에 늘어선다.
백일반지, 돌반지, 목걸이, 행운의 열쇠, 금거북이 등등 상상 속의 모든 금붙이들이 내 눈을
황홀케 한다.
난 금에 관해 문외한이라 인근 금방에 협조를 부탁해 같이 접수를 한다.
창구에서 직원들을 도와 한창 접수업무를 하던 중,
단단한 체격의 노신사가 지점장실이나 상담실에서 면담을 하고 싶어 한다.
창구도 워낙 복잡하고 바빠, 무슨 일인가 하고 재차 물으니 밀폐된 공간에서의 상담을 원한다.
노신사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행운의 열쇠, 금거북이, 반지, 목걸이 등 금붙이를 꺼내며
마지막으로 육군소장 계급장인 별 두 개짜리 세 개를 꺼낸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볼까 경계하며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보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도 굳이 국가에 헌납한다고 의사표시를 하길래,
이름을 자세히 보니 전두환 대통령 당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이XX 사령관으로 후일
국방부 장관까지 지낸 고위인사이다.
이런 애국자들과 나라의 장래를 근심하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어 외환위기를 넘기는데,
정치하는 한심한 놈들은 김대중이 공적(功積)이란다.
자란봉(紫鸞峰 795m)으로 올라가는 길에 침목을 깐 계단이 매우 급하다.
자줏빛 새를 보기는 커녕 고난의 길이라 통곡해야 할 산인데. 하늘로 통하는 통천길이라 그런가.
11;00
드디어 '하늘다리'가 나온다.
해발 800m 지점에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연장 90m, 다리 폭 1.2m, 높이 70m의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이다.
최첨단 신소재인 pc 강판 케이블과 복합 유리섬유 바닥재를 사용하여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21억 원을 들여 설계 시공되었다.
하늘다리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홍건족의 난을 피해 온 고려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가 은신하였다는
청량산성의 '축융봉'이 진초록의 바다에 빠졌다.
돌로 쌓은 산성의 둘레가 1350척이고 안에는 우물 7개와 2개의 계곡이 있다고 한다.
국가의 상징인 임금이 도망을 갔으니 남은 백성들은 얼마나 핍박을 받고 희생이 되었을까?
6.25전쟁 초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미 대전을 지나 대구로 도망가면서도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사기방송을 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과 희생을 당한다.
합바지들이 나와 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놈들, 출세한 놈들은 다 도망갔다.
물론 '헐리우드 영화'의 과장이겠지만 최근에 본 재난영화나 액션영화 등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절대 도망가지 않는 수퍼 맨이다.
항상 '부통령'을 피하게 하여 다음을 기약하고 침몰하는 배에서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선장'의 모습으로 본인은 국민들과 최후를 맞이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 '공정한 경쟁' '공정한 공동체
건설'을 주제로 연설을 하자 여야 국회의원, 정부에서 '공정한'이란 말이 대유행이 된다.
지난여름 삼복의 무더위 속에서 국무총리, 장관, 대법관의 청문회를 지켜 면서
더운 여름을 더 덥게 보냈다.
군대 안 갔다 온 놈, 세금 떼어 먹은 놈, 위장전입한 놈들이 총리, 장관하겠다고 청문회에서
개망신을 당한다.
외교장관은 자기 딸을 특채로 채용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며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낙마한다.
이제는 진짜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하며대충 넘어가선 안 된다.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낸 신임총리 후보자도 먼지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인구가 5천만이 넘는데 이렇게도 깨끗한 사람이 없을까?
물론 도덕 선생님을 뽑는 건 아닐지라도 어지간 해야지.
군대 가기 싫어 오른손 검지를 자른 놈도 도지사에 선출되는 나라니
이 대목에선 할 말이 없어 두 손을 든다.
"나라에 전란, 내외우환이 있으면 장관, 국회의원 등 권력자들부터 앞장서야 하며.
대통령, 총리, 장관, 국회의원들의 자녀부터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의 장관, 국회의원들이 과연 몇 명이나 군대를 다녀왔을까?
반(伴)이나 되려나?
아마도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외국으로 도망갈 놈들이겠지.
이제는 군대를 기피하며 공부해 출세한 사람들을 공직사회에서 영구 제명하여야 되지
않을까?
너른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며 갑자기 가슴이 막막해진다.
어디론가 탁 터질 것 같은 곳을 찾는다.
솔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이고 절벽이 층을 이루고 있다.
안개가 걷히지 않았더라면 초록의 수목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되었으련만,
수백 길 절벽이라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곳에서 나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된다.
하늘이 구름을 슬슬 풀어 놓으며,
하늘과 땅의 경계 위에 있는 선학봉 소나무는 아프도록 빛난다.
시간을 낭비하는 삶은 위험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친구들이 즐겨 치는 당구를 "그 놈들은 할 일 없어 시간 때우느라."라고 폄하 한다.
그러면 골프 치는 놈들은 시간이 없어도 돈이 많아 돈지랄 하는 건가?
산이던 당구를 치던 삶의 가치는 최선 속에 있는 것이 진리인데,
강하고 높아질수록 낮음을 배우고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선학봉(820m)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또 내리막길이다.
청량폭포로 내려서는 삼거리의 현재고도 760m, 정상까지 300m 남은 거리에 110m나
고도를 올려야 하니 산술적으론 약 30도 경사인데,
어떤 난(難)코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11;30
휴!
청량산의 정상인 장인봉(의상봉 870m)에 오른다.
사방이 잡목으로 가려져 있어 아무 것도 조망이 되지 않는다.
어른 장(丈)자를 쓰는데 처의 부모인 장인과 관련된 전설이 아니고,
성리학자인 '주세붕'이 중국 태산의 '장악'을 본떠 '의상봉'을 '장인봉 (丈人峯)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1495~1554)'은 조선 연산군 시절 성리학자로서
그는 청량산록(淸凉山錄)에서
"해동 여러 산 가운데 웅장하기는 두류산(지리산)이고, 청절하기는 금강산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가야산이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작기는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곳은 바로 청량산이다". 라고 하며 최고의 언어로 청량산을 기린다.
이 큰 산속에 오로지 우리 일행만 있으니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산'이 맞나 보다.
나는 정작 통곡을 해야 할 통고산에선 웃고, 통고산이 아닌 이곳 청량산에선 너무나
힘들어 마음속으로 통곡을 한다.
서쪽으로 100m만 가면 낙동강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는데,
삼거리에서 친구들이 기다리니 잠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다.
힘들게 올라와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내려가려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산에 오르기는 힘들어도 오래 머무르기는 더욱 어려운 모양이다.
우리네 인생은 산행과 많이 닮았다.
누구든지 인생의 정점에 서서 오래 있지는 못한다.
정점에 있을 때 베풀고 주변을 아울러야 되지 않겠는가.
직벽에 가까운 철 계단을 내려서며 바짝 긴장한다.
자칫 헛디디면 최하 중상이다.
한 시간 여 내려오니 누군가가 치는 벌통들이 땡볕에 한가롭다.
초록에 지친 나무들이 떠날 차비를 하는 모양이다.
마음을 쉬어가게 편안히 해주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물가에 '보풀'이 청순가련함을 자랑하고,
여리고 청초한 꽃에 독이 있다는데 남부, 중부의 물가에서 잘 자란다.
12;30
산의 곳곳에 해동서생으로 불리던 신라의 명필 김생과 공민왕, 주세붕, 최치원의 전설이
스며있고 하청량으로 내려 서기 전 날머리에 '퇴계 이황' 선생의 시문이 또 있다.
환가 還家
산을 유람하여 무엇을 얻었나
농부에게 가을 수확이 있는 듯 하네
전에 있던 서실로 돌아와
조용히 향연을 마주 했네
그래도 산사람이 되어서
요행히 속세의 우환을 당하지 말았으면
퇴계 선생이 말한 유산(遊山)이라!!
서둘러 정상에 이르고 헐떡이며 봉우리를 밟아 나가선 안된다.
도를 닦는 선인(仙人)이 되어 정상에서 막걸리 한잔했으니 주선(酒仙)도 되어보고,
재촉하지 말고 천천히 걸으며, 구름과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초목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너무나 청량산을 사랑한 이황 선생은 '퇴계'뿐만 아니라 호를 청량산인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으며, 자기 혼자서만 청량산을 가까이 하고 싶어 다음과 같은 '시'를 <퇴계집>에 남긴다.
<청량산 육육봉(12봉우리) 아는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떠벌이지 않겠지만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흐르지 마라 어부가 알까 하노라.>
즉 자기와 흰갈매기만 알자며 대놓고 청량산을 사랑한다.
겸손한 걸까, 인간적일까?
혼자만 즐기고 싶은 욕심이겠지.
난 청량산이 계단만 많고 힘들어 별로 매력이 없는데,
골이 깊은 골산(骨山)이니 눈 내린 깊은 겨울에 다시 올라와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숨어 있는 산,
청량산은 몸소 다가오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은둔의 산이다.
이틀 연속 오지의 산 '통고산'과 은둔의 산 '청량산'에서 산사람이 되었으니,
우리도 퇴계 이황 선생의 말대로 속세의 우환을 당하지 말자.
2010. 9. 17 은둔의 산 청량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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