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193 천년 세월이 내려앉은 진천 농다리<籠橋)에서 도하청장(淘荷靑莊)을 생각하다.

김흥만 2017. 3. 25. 20:45


2012.  8.  25  04;00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감미롭다.

강했다가 약했다가 북소리가 나더니 이내 피아노소리로 변한다.

빗소리가 들리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새벽에 우산 쓰고 운동하기도 그렇고, 빈둥빈둥 누워 늦잠을 즐길까?

 

09;20

시외버스는 광혜원을 지나 이월로 들어선다.

버스 유리창 밖을 무심히 바라본다.

 

논두렁, 밭두렁에 무궁화가 활짝 피었다.

무궁화(無窮花)라!

무궁화는 태극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250여 품종 중 150여 종은 우리나라에서 육성되었다 한다.

6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매일 피고 지는데, 한 그루에서 2000~3000송이의

꽃을 끊임없이 피운다.

이런 강인함을 가진 꽃이 우리나라의 국화(國花)이니 런던올림픽에서 세계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까?

 

무궁화는 국가 상징으로 나라 문장, 국가기관 기(旗), 간혹 Tv에서 비치는 대통령

집무실의 도안에도 사용되며,

대한민국 최고훈장의 이름도 '무궁화대훈장' 이지만, 쓰레기보다 못한 년놈들의

집단인 국회의원 배지 도안에도 사용된다.

 

일제 때 독립 운동가들이 민족의 표상으로 내세워 일본에게 박해를 받은 세계 유일의

꽃인 무궁화는 오해와 편견이 많다.

'몸에 닿으면 부스럼이 생긴다.'

'무궁화를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서 죽는다.'라는 황당한 이야기는 일본사람이나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세력들이 과장하는 이야기다.

 

'무궁화에는 진딧물이 많다'라는 사실은 맞다.

어느 꽃인들 진딧물이 없으랴?

대부분의 꽃에는 진딧물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지혜로운 발상을 한다.

무궁화의 많은 진딧물이 천적인 무당벌레를 불러오고, 그 무당벌레가 논밭의 각종

해충까지 없앤다는 사실을 알고 논밭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

높이 4m에 이르며, 110년이나 된 최고령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0호)는 강릉 방동리에

있다.

 

무궁화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 스치는 고향의 풍경을 바라본다.

 

09;40 시외버스 터미널

만남과 이별.

그리움과 사랑의 세월도 머물다 가는 곳.

사람들과 버스의 소음은 세월이 녹아든 숱한 세월을 말한다.

 

오가는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찾는데 내 추억과 낭만은 어디에 있을까.



 

11;00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

생거진천(生居鎭川).

 

천년 세월의 길을 걷는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태어나 일생을 보낸 길.


언제나 걷고 싶었던 고향의 길.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던 고향의 길이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니 내가 많이도 변했나 보다.

 

웬만한 다리는 미끈한 조형미(調形美)를 자랑하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니

참 못생긴 다리이다.

영락없이 지네가 기어가는 형태라서 농다리(지네 농~籠橋)인가?

농다리는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올리며, 동양철학사상 중 '28수 별자리'를 참조해

28칸의 교각을 만들었다.


그 위에 길이 170cm 너비 80cm 정도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돌들을 서로 맞물러지도록

쌓고 틈새는 작은 돌로 메워 만들었는데,

징검다리와 형교의 중간 형태로 만들어 장마시 물이 불어나면 물이 다리 위로 넘어가도록

잠수교 역할도 하게 하여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28수(宿)라는 별자리가 재미있다.

밤하늘에 떠있는 천체의 별자리를 동서남북<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사방(四方)으로

나누고, 각각의 방위는 북두칠성을 이루는 7개의 기운 즉, 일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

木,金,土)의 소우주로 구분한다.


따라서 사방(四方)의 일곱 별자리(7수)를 모두 합한 28수(宿)를 우주라 하였다.

천체를 형성한 일곱 개(일월화수목금토)의 기운 중 하늘의 섭리인 태양과 달(日月)을

제외한 화수목금토의 다섯 기운으로 모든 삼라만상이 생성되었다는 것이 동양철학의

사상이다.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의 힘이 센 남매가 죽고 사는 게임을 한다,

아들인 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어느 정도 자란 목매기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다녀 오기로 하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자 딸은 치마를 이용해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늦어 죽을까 봐 딸에게 뜨거운 팥죽을 먹여 다리공사를 늦추게 하니

아들이 먼저 돌아온다.


화가 난 딸이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그 돌이 그대로 박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약속대로 딸은 죽었고, 딸이 마지막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는데

이 부분은 장마가 지면 떠내려간다고 한다.

 

그 돌은 어디에 있을까?

 

또한

'임 장군이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물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친정을 가는 길이라 한다.

지극한 효심에 임 장군이 용마를 타고 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라는 전설도 있지만,  

 

이 다리는 재앙을 예고하는 다리이다.

큰 구렁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해는 6.25전쟁이 일어났고,

장마 때 농다리 상판이 뜨면 나라에 큰 재앙이 일어나 훌륭한 인물이 죽거나

기상이변이 일어난다고 전해지며,

고종 31년 동학혁명,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예고했다고 전해진다.

 

어릴 때 내 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때 진천지역에서 인민군이 안 들어온 지역은 백곡면의 '멍심이'와

이곳 '굴티'라고~ 진천사람들 상당수가 이곳으로 피난(避亂)을 왔었다"고 하셨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농다리는 마치 지네가 물을 건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길이는 약 100여m이며 물이 위로 넘게 만든 수월교이다.

 

물이 넘어가도록 설계한 것은 물이 넘어갈 때 다리에 놓인 돌이 덜컹거리며 흔들리는데,

돌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는 오묘한 다리이다.

 

임 장군은 누구일까?

굴티마을은 '상산 임씨' 집성촌인데 고려의 개국공신인 '임희' 장군일까?

아님 후기 무인시대의 '임연' 장군인가.

 

'임연 장군'은 요즘 MBC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무신'에서 '김준 별장'에게 아버지라

부르며 측근으로 활동하다 김준과 함께 도방의 주군인 '최의'를 죽이고 도방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왕실로 돌려주지만 나중에 임금인 원종과 공모하여 김준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다.

다시 임금의 견제를 받아 실각하지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친 공이 있다.

 

누구일까?

옛날 상산 초등학교 시절 소풍 왔을 때 당시 담임선생님은 당나라 '소정방장군'이

이 다리를 놓았다고 설명을 해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다리를 건너며 옛 추억을 회상한다.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풀인데 야생 '마'꽃이 한창이다.

 

옛사람들 삶의 일부분이던 낮은 고개를 넘는다.

 

용고개(살고개)를 올라서니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성황(城隍,서낭)신을 모신

성황당이 나온다.

 

나무와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살고개 성황당'은

현재 저수지로 수몰된 화산리가 큰 부자마을이었는데 지나던 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자

거절을 한다.


노한 스님은 "앞산을 깎아 길을 내면 더 큰 부자마을이 된다"라고 한다.

이를 믿은 마을사람들이 산을 깎아 길을 내니 피가 나왔고 마을은 망해 없어졌다는데

실제로 화산리는 저수지에 거의 수몰되고 지금은 일부만 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이 일대 용고개의 지형이 용의 허리에 해당되는데, 깍아 길을 내는 바람에 용이 죽어

살(殺)고개라고도 한다.

 

이후 마을사람들이 가을수확 후 떡과 정화수를 떠 놓고 마을의 수호와 액운퇴치,

소원성취,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돌을 쌓고 나무에는 오색헝겁을 걸었다.

 

아주 옛날 어렸을 적 어머니가 정안수를 떠놓고 부엌에서 한참을 빌더니

장독대로 나가서 또 기도를 하신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다 같이 어려울 때이지만 이웃집들보다 형편은 다소 나은 거 같고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 기도하실까?


먼 훗날 이상한 종교에 빠졌지만 나름대로 기(氣)를 수련하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을

주신다.

 

우리조상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대략 세 종류의 기도노선이 있었다.

즉, 산신기도(山神), 용왕(龍王)기도, 칠성(七星)기도이다.

 

부엌에서 정안수 한 그릇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칠성기도'이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북두칠성은 하늘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시계인데, 매일 시간대마다 6번과 7번별의 방향이

바뀐다고 한다.

북두칠성을 '시간의 신'이라 생각한 옛날 사람들 중 죽을 때가 되어 시간이 다 된 사람,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시간을 더 달라, 수명을 늘려 달라고 칠성신에게 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도 수명이 다 되자 8월 중추절 강유와 49명 갑사(甲士)를 뽑아

호위를 하게 한 후 7개의 큰 등과 49개의 작은 등을 켜고 북두칠성에게 빈다.

1기(一紀 12년)를 더 살게 해달라고 7일간 칠성신에게 빌지만,

6일째 되는 날 '위연'이라는 장수가 기도 중에 들어와 '주등'이 꺼지며 무산되고 만다.

 

가수 조용필은 '한 오백 년'에서

"백사장  새 모래밭에 '칠성단'을 세우고 님 생겨 단하고 비나이다.~~"라며

창자가 끊어지는 목소리로 애절하게 노래를 한다.

 

사람이 죽으면 관에 들어가기 전에 '칠성판(七星板)에 누인다.

'돌아 가셨다'라는 말은 북두칠성으로 되돌아가서 시간을 얻어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오라는 뜻이다.


즉, 인간의 시간이 끝나 수명이 다하면 처음 출발했던 칠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우리조상들은 생각했던 거다.

대부분의 사찰에는 칠성기도를 드리는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용왕기도'는 바다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어부, 무역상, 바다를 지키는 해군(海軍)이 주로 드리는 기도가 용왕기도인데

이 기도는 해수관음(海水觀音)기도로 변한다.

 

동해의 어느 사찰이던가, 양양 낙산사와 동해의 해동용궁사에는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바다에서 꿈틀거리는 용의 등에 올라타 서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겐 칠성기도나 용왕기도보다도 더 가까운 기도가 '산신기도'이다.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산신신앙(山神信仰)을 믿어온 것이다.

여기서 산신이라 함은 대부분 단군(檀君)을 말한다.

 

따라서 칠성기도나 용왕기도는 주로 개인이나 가족의 무병장수, 소원성취 등을 빌지만,

여기 성황당같이 산신기도는 주로 마을집단의 액운퇴치와 마을수호 등을 빈다. 




성황당고개를 넘으니 초평(草坪)저수지가 나온다.

내 아버지가 태어난 화산리(火山里)와 비끌미가 수몰되어 초평저수지가 되었다.


누구는 미호천의 아래지역이라 미호 저수지라고도 하는데,

1961년도 흙댐으로 완공되었다가 1984년인가 낚시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이곳을 찾으니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바뀌었다.

유역면적 약 50㎢ 만수면적 2,58㎢에 총 저수용량 1,400만t에 이르는 대형 저수지이다.

 

사촌형제들이 낚시좌대와 밥집을 운영해 몇 번 와본 적이 있지.

저수지는 전체적으로 ㄹ자 형태로 되어 있어 굴곡이 심하다.


저수지 가운데 에어컨, 위성 tv. 화장실 등이 되어 있는 호화좌대가 즐비하다.

물고기를 잡으러 오는 건지 연애를 하러 오는 건지 암튼 모를 일이다.

요즘도 붕어, 잉어, 뱀장어 등이 많이 나오려나.

 

산중호수가 적막하다.

나 또한 더불어 시간을 움켜질까.

 

여기는 중생대 아님 고생대에 폭발했는지 생명들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수억 년 전 지구가 만든 돌인 화산석이 지천이다.

 

영락없는 화산석(火山石)이다.

바위의 화기(火氣)와 저수지 물의 수기(水氣)가 합쳐지면서 몸속에 쌓였던 탁기(濁氣)를

몰아낸다.



데크 옆으로 아까시, 참나무, 밤나무 등이 즐비하다.

밤나무마다 밤이 주렁주렁 열렸다.

 

아깝다.

아람이 벌어지면 물속으로 다 떨어질 텐데,

옛적에 '밤나무'는 쌀과 마찬가지로 매우 귀중한 식량으로 구분되었다.

따라서 '밥나무'로 불리다가 '밤나무'로 이름이 변한다.

 

저 능선 너머에 내가 사랑하던 강아지 '토토'가 있겠지.

그냥 그렇게 보내고,

빈 마음 빈 몸으로 이곳에서 바라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내 옆에 서 있는 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으로

내 마음과 몸의 빈자리를 메꾸어야 하나?

미안해 할 말도 없다.

 

때때로 빈 마음 빈 몸일 때,

외로움과 상실감에 허탈할 때 토토는 늘 내 옆을 지키고 있었는데 내가 보냈다.

 

언제나 탈탈 털어 버리려나, 긴 세월 내가 착각을 하며 살아왔던 거다.

내가 '토토'를 기르는 게 아니고,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내가 '토토'에게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았던 거다.

 

늘 있던 자리가 휑하고 토토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인다.

저쪽 능선 너머에 있을 텐데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발아래가 허전하고, 궁둥이가 허전하고, 허벅지도 허전하다.

사료, 물, 간식, 배변, 놀아주기가 없어졌으니 갑자기 할 일이 줄었다.

반려견에게 내가 반려를 받은 모양이다.

 

이제는 어디에 사랑과 정성을 쏟을까?

먼저 가버린 '밍키'의 공백을 메꾸고도 남을 애교와 사랑.

최근엔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노래도 곧잘 부르곤 했는데,

 

갑자기 보내며,

너무 당황해 허둥대다 빠뜨린 토토의 하모니카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눈이 큰 짐승에겐 정을 주지 말아야 했는데,

갑작스런 아내의 수술로 감당하지 못해 청주로 보낸 강아지 '토토'가 그립다.

 

늘 반복되는 하루.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나는 걷고 있다.

 

                   [  한(恨)

 

                      비가 올라나

                      억수같이 쏟아지려나,

                      먹구름이 막 모여든다.

 

                           무심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호수의 물

                           恨이 서렸나

                      가슴이 막막해진다.

                      

                           뭉쳤다 흩어졌다

                      제멋대로 떠가는 흰 구름이 부러워

                           온 몸에 부딪치는 골바람을 나 몰라라 하고

                      귓가에 맴도는 매미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구름 위를 걷는다.                                            석천  ]



11;30

길은 길이라지만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물 위를 걷는다.

고향의 물을 밟으며 상념에 젖어 걷는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길.

모퉁이를 도니 또 다른 앞길이 보인다.

그 길을 벗어나 옆을 보고 뒤돌아본다.

낯설은 세상에 온듯하다.

긴 세월같지 않은데 어느새 단절되었나 보다.

 

긴장된 마음을 풀고 여유롭게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고, 걷고 싶었던 고향의 길.

고향의 길은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는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니 내가 많이도 변했나 보다. 

 

              [    시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잠시라도 잡고 싶은

                자연의 시간이 흐른다.


                삶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무심한 흰 구름은 그냥 흘러간다.

 

                눈이 시리도록 진한 여름의 녹색 위

                겹겹이 두른 구름도

                떠다니는 바람소리에 밀려 흔들린다.

               

                지나면 그리움뿐이란 걸

                시간은 알까.                                      석천  ]




물가엔 힘 빠진 배들이 한가하고 젊은이들이 수상스키를 즐긴다.

잉어가 할딱거리며 하늘을 차고 오르다 숨이 막히는지 물로 철퍼덕 떨어진다.



                    [   머무르고 싶다

 

                        머무르고 싶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 줄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

 

                        무슨 사연있어

                        무슨 그리움이 있어,


                        애절하게 숲의 허리를 치는 바람이여

                        나 또한 하나의 바람이 되어

                        초록의 숲속으로 들어간다네.

                        흔들리는 숲속으로 들어가

                        그대와 머무르고 싶다네.                    석천   ]

 

산모퉁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꽃은 영락없는 고추나물꽃인데 잎사귀가 달라 알 수가 없다.     

 

12;30

해오라기는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왜가리의 일종이다.

해오라기가 물가에 꼼짝도 안하고 서 있다가 지나가는 물고기를 고개 숙여 날름

잡아먹는다.


카메라 렌즈를 줌으로 당겨도 너무 움직이지 않기에 잘못 보았나 싶었지.

바람결에 들리는 흐미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줄 알았지.

신천옹(信天翁)으로 불리는 '해오라기'의 별명은 청장(靑莊)이다.

해오라기는 한가로우면서도 굶주리지 않는다.

 

반면에 '펠리컨'의 일종인 '사다새'의 별명은 도하(淘荷)이다.

도하인 '사다새'는 진흙과 뻘을 뒤집고 부평, 마름 등을 뒤적이며 잠시도 쉴사이 없이

먹이를 찾아 헤매지만 온종일 고기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하고 굶주릴 때가 많다.

먹이를 찾아 몸을 더럽히며 부지런히 쫓아다니면 먹이는 멀리 달아나 숨어버린다.

 

'해오라기'같이 욕심을 버리고 편안히 있으면 애써 구하지 않아도 먹이가 찾아온다.

조금만 가지고도 만족하는 마음으로 살면 마음속에 넉넉함이 저절로 깃든다.

 

선거 때가 되니 개나 소나 말까지 다 대통령하겠다고 나선다.

권력이든 명예든 쟁취하려 들면 점점 멀어진다.

설사 쟁취하더라도 4년 후면 측근이나 형제, 친인척들이 돈 받아먹고 구속된다.

즉 욕심만 부리니 먹을 것도 못 얻고 제 몸만 더럽히는 거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학문하는데 있어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도하청장(淘荷靑莊)이란 말은 비록 학문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고향길을 걷다 해오라기를 보며 잠시 옛 현인(賢人)들의 지혜를 떠올려본다.

 

                                       2012.  8.  25.

                                                        진천 농다리~초평저수지 길을 걸으며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