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94 이별 연습 <하남 객산 301m>

김흥만 2017. 3. 26. 16:30


2015.  10.  3.  09;00

밝았던 추석 보름달이 시간에 휩쓸려 떠나간 줄 알았는데,

남은 하현달이 새벽에 천지를 밝히며 시간의 틈새를 촘촘히 메우더니 서편 하늘에 걸쳐

앉았다.

강렬한 아침 태양빛도 기울기 시작한 하현달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구나.

 

봄은 바다에서 건너오고 가을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지.

떠나간 여름을 아쉬워하는 장미꽃이 또 피기 시작하니 자연의 섭리(攝理)를 거스르는 건가?

길바닥엔 영글어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이틀 전 늦더위를 한 방에 날려 보내는 가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창문을 사정없이 때리는 빗줄기를 보며 창가에서 서성였지.

 

                   <        단비

 

                       10월의 첫날

                       단비가 내리네.

                       지독한 가을가뭄 속

                       단비가 내리는 10월의 첫날.

 

                       무슨 좋은 소식 있을까

                       비 때리는 창가에 서성이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사랑의 행복에 들뜬

                       새파란 청년의 설레는 얼굴일세.                   석천   >



10;40

봄은 느릿느릿 슬그머니 왔다가 가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성질 급한 여름은 봄이 가기도 전에 갑자기 와 계절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가을과 맞교대 한다.

가을은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온다.

 

가을로 접어들면 초가을, 늦가을은 만추(晩秋)로도 불리며,

가을은 묻어난다 또는 들어선다 깊어간다 머무른다 식어간다고 온갖 표현을 하는데,

봄과 여름 겨울에 대해서는 다양한 표현을 하지 않지.

 

그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각자 제 나름대로 계절의 향기가 있다.

엊그제 가을비가 한바탕 쏟아지더니 썰렁한 소슬바람이 온몸을 흔들리게 한다.

 

기세 사나운 겨울이 닥치려면 아직 멀었지만,

성급한 겨울이 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산행을 할 욕심으로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객산을

오른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계단은 몇 개일까.

100까지는 세었는데 그 다음엔 까먹었다.

오 분정도 헉헉대며 오르면 나오는 유순한 산길에 가을빛이 영글어 간다.

 

거친 길이 없는 객산의 반듯한 산길에 가을은 서서히 묻어간다.

뜨거웠던 여름의 열정이 사라지자 초록은 힘을 잃고, 숲 속의 표정은 바뀌기 시작한다.

 

'넓은잎쥐오줌풀'의 흰 꽃이 소금을 뿌린 듯 산길가를 채우고, 그 사이로 쑥부쟁이 감국 산국이

틈새를 메운다.

 

지난여름 나는 나다운 꽃을 피웠던가.

나는 무엇을 쌓았을까?

 

오로지 두 발로만 걸어야 오를 수 있는 산길에 보폭을 맞춰서 느리게 올라간다.

느리게 간다는 것은 주변의 속도랑 맞추는 거지.

자연의 속도에 맞추는 것도 좋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올라야 고독도 이겨낼 수 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상념(想念)들,

오늘따라 마음이 뒤숭숭하니 내면에 충실하지 못한 모양이다.

 

며칠 전 검단산 호국사 약수터에서 만났던 스님의 해몽이 마음에 걸린다.

"삭발한 머리에 모자도 쓰지 않고 아주까리 8알을 손에 쥔 채 영주 태백산 부석사에

올라가다 뉘 부르는 소리에 손을 털고 뒤돌아섰다"라고 하니,

 

그 스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중병(重病)에 걸린 지 4년이 지났으니 앞으로도 4년이

더 지나야 승화(昇華)가 된다고 하며, 4년 이내에 인연이 다하면 단명(短命)할 수 있다."

라고 한다.

 

찰나에 불과한 삶의 짧은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

주어진 행복은 무엇일까.

 

백제시대 옛 토성이었다는 객산의 능선은 부드럽기만 하다. 

 

11;00

그 사람 성도 모른다.

그 사람 이름도 모른다.

뇌종양수술을 하고 귀촌하였다는 그 사람.

2014년 9월 24일 장성 축령산 어귀에서 만나 동행을 했던 그 사람.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던가,

산행 내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버리지 못해 유심히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뇌종양수술 후 귀촌까지 하며 삶을 이어 가려 했던 그 사람은 세상의 삶이 허무하기만 했겠지.

축령산이 그에겐 세상과의 이별 장소였던 모양이다.

 

왜 그럴까,

스쳐 지나간 인연밖에 없고, 축령산을 다녀온 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의 별세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해지니 말이다.

 

이별은 삶을 맥 빠지게 하는데 특히 황혼의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별거 아닌 거 가지고도 가깝던 친구와 우정 이별.

나이가 들어 정든 직장을 떠나는 퇴직 이별.

사랑하는 애완동물과 하는 동물의 이별 등등 숱한 이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이고,

세상을 하직하는 이별은 가장 힘들고 무서운 이별인데도 사람들은 사랑 이별을 더 아쉬워하고

애달퍼 한다.

 

사람들은 이별(離別)이란 말이 무서워 별리라는 말로 에둘러 쓰기도 한다.

별리(別離)란 사귐이나 맺은 관계를 끊고 따로 갈라 섬이고, 장별리(長別離)는 영원한 이별이다.

 

지혜로운 선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여기고 극복했다 한다.

자기가 언젠가 이승을 떠날 때 입을 수의(壽衣)를 미리 지어 놓고,

죽으면 들어갈 나무관을 내 집으로 생각하고 미리 정성스럽게 만들어 옻칠을 하기도 하며,

그 관에다 옷가지를 넣거나 곡식을 넣어두고 먹기도 했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양지바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광 좋고 건조한 곳에 가묘를 만들어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며 생활을 했다.

그들은 죽음을 무섭고 두려워하거나 흉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수의와 관, 가묘를 활용했으니 죽음도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며 극복을 한 거다.

 

요즘은 화장(火葬)이 대세라 가묘(假墓)를 만들기도, 관(棺)을 미리 만들어 놓기도 모양이

좋지 않다.

또한 수의도 평상복으로 대체하는 분위기라 미리 만들어 놓기도 어색하다.

 

나는 어떻게 이별 연습을 해야 할까?

사랑의 이별과 세상과의 이별을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까.

 

내 인생을 굽이굽이 더듬어보며, 내면을 들여다보며 서서히 이별 연습을 해야 하는데,

나에게 시간이 있는가,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문득 나 역시 시간적인 존재임을 느낀다.

 

모진 바람이 아니어도 목덜미를 충분히 서늘하게 스치는 소슬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이 가을에 무슨 꽃이 피었을까.

무덤가에 핀 감국과 쑥부쟁이가 국화향기를 날리며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맑았다가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슬프고 기쁘고 만나고 헤어지는 게 자연의 섭리(攝理)가

아닌가.

쑥부쟁이 한 송이에 희망과 사랑을 얻고 살면 되는 거지.



쓸쓸한 오솔길에 내 그림자 따라온다.

                

                <         솔바람

 

                     솔바람 지나가며

                     그 바람 떠나가듯 

                     난 왜 살고 있는지 한숨 쉰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

                     하늘은 내 마음을 들어줄까.

 

                     이대로 살아야 하나,

                     슬퍼도 살아야 하나,

                     이 삶이 다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냥 곧 잊어질 이름 석자(三字)

                     고작 남기고 가는 것도

                     이 세상을 다녀간 이유가 될까.

 

                     나 가고나면 기억이나 할까.

                     나 가면

                     허공(虛空)으로 흩어지는 구름처럼

                     내 아픔도

                     아픈 기억도 바래지겠지.                        석천   >

 

등 뒤에 짊어졌던 배낭을 평상에 두고 빈 몸으로 정상을 향한다.

어깨와 등판이 홀가분해진 나는 자유인이다.

인생의 짐, 삶의 무거운 짐, 이별의 무서운 짐도 이렇게 훌훌 벗어놓을 수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는 물 한 병이면 족하다.

 

정상엔 허망하게도 변변한 정상석조차 없는데,

정상에 무엇이 있기에, 무엇을  보려 빈 몸으로 오르는 걸까.

그냥 마음을 비우며 오르는 거겠지.

 

구름의 그늘에 그림자마저 잃어버린 오솔길에서 15분만 오르면 정상이다.

 

11;30

산길의 끝이 아닌 곳.

남한산성 벌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작은 봉우리인 객산 정상은 고작 301m에 불과한 낮고

작은 산이지만 나에겐 아픔을 달래주고 씻어주는 큰 산이다.

 

매주 이 산을 오르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지. 

 

박무속에 터진 조망은 그림이 되어 펼쳐지고, 산자락은 누렇게 익어가는 하남의 들판을

품었다.

햇살이 검단산에서 여기 객산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옮겨가는 중에 정상의 외로운 벚나무

이파리는 붉은색으로 변해간다.

 

정상은 과묵하고 진중하다.

이제는 가을산 위를 흐르는 햇빛처럼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정상의 안내판에

[옛날 마귀할멈이 한양의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을 떠서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다가

힘이 들어 이곳에 놓고 그냥 가버렸다]라는 전설이 있어 객지(客地)에서 온 산이라는 뜻을 가진

'객산(客山)'이라고 설명을 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승을 떠날 객(客)인데, 산마저도 객산(客山)이니 이 산은 나와 닮았다.

 

소슬바람 불어오니 귀청을 울리던 매미소리 간데없고, 낮게 떠 비행실력을 자랑하던

잠자리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크게 울부짖던 직박구리, 개개비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무슨 연유일까.

등판을 썰렁하게 하는 가을바람에 묻힌 걸까?

 

텃새라 따뜻한 남쪽으로 벌써 날아가지는 않았을 텐데,

검단산과 예봉산 자락으로 눈길을 돌려도 날아다니는 새가 없다.  

 

이젠 세상사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쉬려면 한적(閑寂)한 곳에 멈추어 서서 쉬어야 한다.

숲 속에 핀 가을꽃 한 송이를 보며 인생의 허망함 고독함 외로움을 날려야겠지.

 

'넓은잎쥐오줌풀'이 숲 속에 새 하얀 눈을 뿌렸다.

 

봄에서 여름내내 피었던 노란 애기똥풀이 또 피었고,

넓은잎 쥐오줌풀에 묻혀 핀 '개당귀' 하얀 꽃의 수줍은 모습에 눈길이 간다.

 

꽃은 하얗고 순수하지만 내면에 비수를 품었기에 '개'자가 붙은 걸까.

고운 꽃을 피워도 뿌리는 전신마비를 일으키는 독성을 품었기에 사람들은 개당귀에

'개'자를 붙였다.

 

비단 이 꽃만 '개'자가 붙었을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도 개감채, 개곽향, 개망초, 개박쥐나물, 개황기, 갯기름나물, 갯까치수염,

개갈퀴, 개불알꽃, 개쑥부쟁이, 개여뀌, 갯쑥부쟁이, 개별꽃, 개쑥갓, 갯장구채 등등 수없이

많고, 대화중에도 남을 욕을 할 때는 개망나니, 개새끼 등을 많이 쓴다.

 

사람에게 가장 충실한 동물인 '개(犬)'

개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사람에게 복종을 한 대가로 먹이를 얻기에 사람들은 '개'란 이름을 붙였는가.

 

식물에 '개'나 '물'이란 이름을 붙이면 비슷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좀 부족하다는 뜻인데,

사람들은 '개'란 이름을 붙여 부정적인 요소를 만든다.

 

12;40

꽃이 피기 직전인 억새가 하늘거리고, 비수리는 말라 비틀어져 간다.

차량들이 어디론가 무한질주 하는 고속도로의 소음을 뚫고 '기름새'의 빗겨진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12;45

샘재 길 가운데 홀로선 졸참나무 한 그루,

차마 날 두고는 떠나지 못해 수액주머니 주렁주렁 차고 한여름 이 자리를 지켰으니,

나 떠나도 수백 년을 이어 더 지키겠지. 

          

                 [             당산나무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인생을 알게 되느냐고

                          당산나무에게 물었더니 

                         

                          내가 살고 다녀간 이유를

                          몰라도 된다고 

                          당산나무가 말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 너이기에

                          부디 먼 훗날

                          기억을 하지 말라

                          당산나무가 당부를 하고

                         

                          하늘엔

                          흰 구름 솔바람이 무심히 흐른다.                     석천  ]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채플린이 말했다.

이제는 자신의 고통을 멀리서 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고통 속에서도

을 수 있어야겠지.

 

남은 삶이란,

어차피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이별 연습을 하다 마감하는 인생이리라.

 

                                                2015.  10.  3.  객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