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344 윤슬

김흥만 2018. 3. 8. 21:54


2018.  3.  4.  01;00

무슨 소리지?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아늑하고 고즈넉하게 들린다.

창문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니 이근원통(耳根圓通)인가.

잠이 덜 깬 눈을 살짝 감고 듣는 빗소리는 쇼팽의 즉홍환상곡이구나.


이근원통이란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며,

이근원통의 마지막 단계인 반문문성(反聞聞性)은 소리를 자각하는 수행법이다.

꿈결에 들리는 잔잔한 빗소리는 오랜 겨울 가뭄속에 내리는 단비라 소리마저

맛깔스러우니 단숨에 이근원통과 반문문성을 거쳤는가 보다.


요즘은 Tv를 켜도 짜증나는 뉴스나 막장으로 치닫는 프로는 아예 보지 않는다.

시끄러운 소리, 욕하는 소리, 폭력이 난무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를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당구 등 스포츠 채널을 즐긴다.


여행 프로그램이나 좋은 음악, 자연의 아름다운 새소리 등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처럼 청각(聽覺)은 매우 영민하기에 좋은 소리를 들으면 나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염(念)이라 할까.

마음속에서 경계에 따라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 즉 마음의 조각을 말하는 염(念)이란

파자(破字)를 하면 지금(今)+마음(心)이다.

빗소리에 염(念)이 사라진 무의식 세계로 들어서며 슬며시 잠이 든다.


07;00

밤새 수북이 내린 단비는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하게 적셨다.

잠시 오락가락 하던 비가 이슬비가 되어 내린다.


파란하늘 메마른 땅을 보며 그리워했던 이슬비,

보슬비도 가랑비도 아닌 이슬비가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어느 시인은 이슬비를 세우(細雨)라 했지.

텅 빈 길모퉁이에서 나타난 세 여인이 우산을 쓰고 재잘거리며 다시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              윤슬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의 텅 빈 길,

       텅 빈 길은 가슴속 깊숙하게 숨겼던

       그리움을 꺼내게 한다.


       길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세 여인의

       빨간우산 검정우산 누드우산이 흔들거린다.

       휴일의 걸음걸이는 조금 느려도 될 텐데

       내 바람도 모른 채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무심코 사라진다.


       이슬비를 흠뻑 먹은 겨울나무는

       서투르게 연둣빛을 만들기 시작하고,

       땅바닥에선 낙엽을 뚫으려

       새 생명이 꿈틀거리며 아우성친다.


       지근(至近)까지 찾아온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 사이로 햇살이 비껴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산비둘기 솔부엉이가 제목소리를 내는구나.


       이슬비라는 생명수를 머금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꿈틀거리는 이른 아침

       물방울에 빠진 자연의 풍경이

       윤슬임을 아는지

       고양이 한 마리 고개를 갸우뚱하다

       무심한 숲속으로 사라진다.                                   >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눈 내리는 날도 좋지만 이렇게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기에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한없이 걷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굵고 세차게 퍼붓는 작달비나

굵은 장대 같은 빗줄기로 억세게 쏟아지는 장대비가 내리면 맨발로 빗속을

뛰어다니고 싶은 충동을 느끼니 아직도 청춘인가 보다.


이렇게 이슬비 내리는 날이면 가슴속에 깊숙이 숨겼던 그리움이 살아나기에

지금 내리는 비를 나는 이슬비라 부르고 싶다.


가슴 한구석에 남았던 그리움은 내 소중한 보물이기도 하지.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던 행복이 빗소리의 유혹에 슬며시 나타난다.


봄에 내리는 비로는

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안개비,

안개보다 조금 굵은 는개,

는개보다 더 굵은 이슬비,


이슬비보다 굵은 가랑비,

바람 없이 작은 알갱이로 보슬보슬 내리는 보슬비,

보슬비보다 조금 굵은 게 부슬비라고 하지만,

보슬비나 부슬비는 어딘지 모르게 처량해보여서 가슴속 보물을 꺼내게 하는

이 비를 이슬비로 지은 거다.


웅덩이에 모인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슬며시 퍼지며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자

물방울을 바라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흔들며 무심한 숲속으로 사라진다.


                                      2018.  3.  4.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