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6.
왼쪽 가운데 손가락이 많이 아파 여러번 잠에서 깬다.
의사는 트리거 증후군이라 진단을 했고, 수년째 통증 마취주사로 겨우 버텼는데
주사를 맞은 지 1년이 지나니 또 통증이 오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도 이번엔 제법 오래 견딘 셈이다.
작년엔 6개월 만에 마취주사를 다시 맞았고, 이번엔 1년 1개월 만에 맞으니 면역력이
서서히 길러지는 건지 아님 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건지 모르겠다.
당구장에서 게임을 할 때나 버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통화와 대화를
하는 노인들이 상당히 많다.
나이가 들면 눈과 귀가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시력과 청력의 약화와 악화는 삶의 자긍심을 위축 시킨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밉다.
내 주변에도 눈과 귀가 어두운 친구들이 요즘 많이 생겼다.
소리가 안 들리면 많이 불편할 텐데, 어느 친구는 이야기를 할 때 귀 쪽으로 두 손을
모아 소리를 집결 시킨다.
나는 청력검사를 할 때 제일 낮은 단계도 들리니 매우 다행이다.
성(聖)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귀 이(耳)와 입 구(口)자의 합성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베토벤은 귀가 안들리는 귀머거리로 악성(樂聖)의 경지에 올랐고,
우리나라의 화가로는 화성(畵聖)의 반열에 오른 운보 김기창 화백이 떠오른다.
또한 시성(詩聖)의 반열에 오른 지는 모르겠지만 천재시인 백석선생도 귀머거리였다.
귀머거리로 기성(棋聖)에 오른 사람과, 서(書)의 최고 경지인 서성(書聖)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귀가 좋지 않으면 다른 잡음(雜音)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귀가 들리지 않으니 철저하게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자기의 분야에 집중할 수가
있어 대성을 한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사유(思惟)는 점점 깊어진다.
은퇴 후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사고(思考)의 방식을 바꾸니
얼굴의 저승반점과 주름살도 흉하게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행동의 속도를 늦춘다.
속도를 늦추니 눈으로 보이는 것도 많아지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게 더 늘어난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갈구하고, 내게서 떠나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유연해지는 마음에서 날카로움이 서서히 사라지니 세월 앞에 넉넉해지는 나이가 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김영님의 회심곡(悔心曲)이 흘러 나온다.
긴 내용을 간추리면,
이 세상에 태어나 좋은 업(業)을 많이 쌓으면 극락으로 가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와 권선징악(權善懲惡)이 주 내용이다.
폰이 부르르 떨더니 지인의 부고(訃告)가 뜬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환절기에 접어드는데, 환절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다.
이번 환절기엔 또 어느 지인이 떠날까.
세월이 쌓이면 몸에 여기저기 고장이 난다.
지금까지 버텨준 몸이 고맙기에 아픈 손가락을 꼭 쥐고 구성진 가락을 들으며 삶을
되돌아본다.
2018. 9. 16.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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