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3. 06;30
언제부터인가 창문을 열고 집안의 환기를 시키는 게 내 담당이 되었다.
지난밤 마신 술에 취해 6시가 넘어 기상을 했으니 두시간반이나 늦잠을 잔셈인가.
서둘러 창문을 연다.
어디선가 사각대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길게 내밀어 보니 경비 근무자가 울타리 아래를 비질한다.
아버지께서도 새벽이면 늘 싸리비로 마당을 쓸었는데, 어깨가 약간 꾸부정한
아저씨의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옛 모습을 발견한다.
07;00
기온은 12도까지 떨어졌고 찬 공기가 밀려와 폐부(肺部)로 들어온다.
물러갈 줄 모르던 폭염이 사라진 자리에 일엽지추(一葉之秋)가 어느새 자리를 차지했다.
추석이 지나고 기온은 가파르게 내리막이다.
여름 숲의 무성함, 찔 듯이 뜨거워 무서웠던 폭염도 지나간 전설이 되었다.
풀이 마르고 나뭇잎과 꽃잎들은 넓은 순서로 시들며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뜰의 몇 잎 남지 않았던 목련의 잎사귀도 다 떨어져 나목(裸木)이 되었고, 메타쉐콰이어도
윤기를 잃어간다.
벚나무도 붉게 물들었고 까마중 열매도 까맣게 익어간다.
난 귀가 밝고 또한 후각도 예민하다.
특히 시끄러운 소리와 담배냄새엔 신경질적인 반응이 무의식중에 표출이 된다.
이 나이에 귀 관리가 잘된 모양인지 청력검사를 할 때 가장 낮은 단계도 들린다.
TV드라마 '보이스'에서 골든타임 팀장으로 근무하는 강권주 경감이 절대청력으로
범인을 잡는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소리에 예민해 대중교통, 식당이나 당구장 등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옆에서 시끄러우면 짜증이 난다.
07;10
숲으로 들어선다.
통 보이지 않던 '검은등할미새'가 뽀르르 날아가고, 직박구리 애절하게 울어댄다.
한 송이 남은 '유홍초'가 바람에 흔들리고,
선탈(蟬脫)을 한지 겨우 보름 남짓 산 매미들이 일제히 사라진 자리에 귀뚜라미,
여치가 한껏 목청을 높인다.
후드득 거리며 도토리가 떨어지고, 유난히 크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밤송이도
떨어진다.
산속에 있는 모든 동식물이 바삐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나는 귀를 기울여 집중을 한다.
귀뚜라미, 어치, 콩새, 할미새가 쉼 없이 울어대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구름소리도 묻었다.
이래서 가을 산속은 무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베토벤은 빈 근처에서 귓병으로 요양을 할 때 그곳 자연에 감명 받아 전원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귀머거리기 되기 직전이니 그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기의 귀 운명을
예지하였는가 보다.
한 아주머니 폰에서 뜻밖에도 '김연우가 부른 오페라의 유령'이 흘러 나온다.
이 산속에서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불렀던 노래가 풀벌레들의 노래와 어울리기에
혹시나 유령이 나타날까 숲속을 응시하니 약간 쉰 목소리를 내는 어치가 목의 먹이
주머니에 도토리를 잔뜩 넣고 먼 하늘로 날아간다.
코스모스도 떼 지어 와글거리고, 흘러가는 구름도 바람을 통해 소리를 보낸다.
아~세월이 무상(無常)하다.
가을은 울긋불긋한 색깔보다 '소리'로 먼저 익고 하늘은 높아진다.
2018. 10. 3.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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