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1.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
영면하소서!
난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감리교회를 다닐 때 하필이면 그 교회 목사가 종말론자였다.
1960년대 후반은 휴거(携擧)론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이 성행할 때였지.
휴거론이란 예수가 재림(再臨)할 때 구원 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말 하는데, 그 목사는 세상에 종말이 오면 돈도 필요가 없으니 몽땅 교회에 헌금을 하라고
강요를 한다.
이후 난 종교를 멀리 하지만 종교인 세 분만은 정말 존경한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누더기 가사장삼 만을 남긴 '성철 스님 '
다 떨어진 내복과 20년 입은 코트를 남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
그리고 이번에 각막까지 기증하고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까지 세 분이다.
선종하시니 지난 주 등산했던 천진암의 주봉인 앵자봉이 불현듯 생각나 다시 앵자봉을
찾는다.
산행 들머리 뒤로 '관산'이 조망된다.
여긴 퇴촌이다.
퇴촌은 조선 개국공신 '조영무장군'(원래 이성계장군 말잡이를 하던 조무라는 소년이 훗날
명성을 날린 장군이 됨)이 은퇴한 뒤 이곳에 내려와 살아 그의 호를 딴 지명이며,
뒤의 관산(冠山)도 이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퇴촌에서도 '천진암'!
원래 천진암은 단군영정인 천진(天眞)을 모시고 산사제, 당산제, 산신제등을 올리던 '천진각' 혹은
'천진당'이라는 작은 초가 당집이 있었다한다.
훗날 천주교의 이벽, 이승훈,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권일신, 권철신, 같은 이들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이곳에서 여럿이 모여 함께 강론을 하며, 천주교 진리를 탐구하던 곳으로 천주교의
성지 중의 성지이다.
꾀꼬리가 알을 품듯이 천진암을 품은 산세 모양을 따 앵자(鶯姿)봉이라 지었다.
산의 높이는 낮지만 당시만 해도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찾아들 만큼 심산유곡이었는데
지금은 술집, 카페, 모텔 등이 많이 생겼다.
무갑산~관산~ 소리봉~앵자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는 약 10여 시간 걸리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앵자봉만 등산하기로 한다.
오늘 메뉴는 막걸리 7통과, 삶은 계란 14개, 골뱅이무침 및 찹쌀파이 등이다.
청소년수련원을 끼고 15분 정도 비탈길로 올라서니 등산로 초입이다.
이제부턴 전형적인 육산으로 낙엽과 눈 덮인 흙길이다.
계속 비탈길을 올라가니 관산과 앵자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능선이 나온다.
눈이 약 2cm 정도로 많이 쌓이지 않아 아이젠은 차지 않고 편안하게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현재고도 250m.
숲은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활엽수 천국이라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간혹 황벽나무,
노간주나무가 보인다.
드디어 이 산의 유일한 바위인 '거북바위'다.
눈이 쌓여있어 엉금엉금 긴다.
사실은 이름 없는 무명바위인데 지난 수요일 초행길에 내가 '거북바위'라 이름 지었다.
천천히 오르자.
출발 시 영하 7도였는데 현재 기온은 영하 10도로 내려갔다.
산에선 100m 고도를 높일 때마다 약 1도~0.65도 정도 떨어지기에 등산 시에는 항상 온도를
의식해야한다.
너무 춥다 보니 친구의 정수리에 상고대가 형성되었다.
덕유산 상고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앵자봉에선 볼만하여 슬그머니 촬영한다.
소리봉을 뒤로하고 2열종대로 내려오는 모습이 산악훈련을 받는 거 같다.
백석고개를 지나 소리봉에서 고도를 200m 이상 내려 왔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깔딱이다.
깔딱이라 표현은 했지만 다른 산에 비하면 아주 부드럽다.
벌나무가 보인다.
찍어야지 하다가 선두와 벌어져 그냥 간다.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보다 흰 띠의 간격이 아주 좁으며, 헛개나무보다 간에 더 좋은 나무로서
간염은 물론 간암까지도 고칠 수 있다는 아주 귀한 나무이다.
무념무상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다.
머리에선 잡념이 사라졌다.
climber's high ~ 상태이다.(일본작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쓴 '클라이머스 하이'란 책에
잘 묘사가 되어있다.)
마라토너들이 느끼는 runner's high와 같다.
아마 몸이 완전히 풀리니 모든 순환계가 술술 돌아가고, 정신적으로도 행복한 상태로 몰입되니
몸과 마음은 결국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진리를 산행에서 배운다.
드디어 '앵자봉 정상'이다
정상석엔 667m인데, 표지판엔 670.2m이니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린다.
'지방자치'하면서 이것도 틀리니 한심하다.
멀리 양자산(709.5m), 천덕봉(630m), 태화산(644m), 무갑산(581.7m), 백마산(464m),
관산(555m), 검단산(657m), 예봉산(683m)이 하늘 금을 그린다.
천주교 성지인 천진암이구나.
이제 한잔해야지.
흰 눈 위에 자리를 깔고, 봉길이 힘들게 지고 온 막걸리 7병을 마신다.
건배다!
양자산 방향으로 가지 않고 천진암 성지로 바로 내려선다.
소리봉을 거쳐 앵자봉까지 2시간 10분이 소요됐으니 천진암 방향으로 하산 시에는
약 1시간 20분 정도면 된다.
청소년수련원의 화장실이 잠겨있어 단체로 노상방뇨를 하며 영역표시를 한다.
약 4시간 정도 산행 후 천진암주차장에 들어선다.
천진암 성인묘역이다.
이승훈, 정약종, 권일신, 권철신, 이벽 등 5인의 묘소인데 103위 성인 책봉 시
고문을 당할 때 두 번인가 천주교를 부인하고 배교하였다고 이벽 선생은 빠졌다.
정조가 재위 24년에 의문사하고 <요즘 편지가 발견 공개되어 이 사실이 뒤집힐지도>, 정권을 잡은
정순왕후는 순조를 시켜 사학엄금교서를 내려 천주교 대박해의 문을 열었으니, 이 때 순교한 이가
정약종, 정철상, 이가환, 이승훈, 권철신, 홍낙민 등 수많은 순교자가 생긴다.
외부의 선교가 아니라 내부에서 수용했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였다.
따라서 이런 주체적 수용의 정신과 순교의 피가 한국 천주교를 건강한 민족종교의 반열로 올려 논
거름이리라.
역설적이지만 '正學(성리학)'과 '邪學(천주학)'이라 주장하는 양반네들과 싸우지 않고,
양반들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평등사상을 잠시 접고, 또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수용해
토착화가 되었으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 텐데, 그들은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왕조와
양반들한테 끔찍한 죽음을 당한다.
내려오는 길에 샘에서 목을 축인다.
여기는 천진암 대성당의 역사를 만드는 곳이다.
대지 30여 만 평, 1,000억 원 예산, 매년 10억 씩, 100년의 대공사로 역사를 만드는 곳이다.
현재 철 기둥과 주춧돌까지 1979년부터 20년이 걸렸고, 2079년에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우리
생전엔 못 본다.
서유럽, 동유럽 여행 시 본 성당들이 참 부러웠는데 우리도 그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려는지
기대가 된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슬퍼하며 앵자봉 산행을 마친다.
2009. 2. 21. 천진암 앵자봉을 등산하며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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