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40 사랑이 이루어지는 가평 연인산<1,068m>

김흥만 2017. 3. 21. 20:49

2009.  3.  11.  07;30

사실 '연인산'은 봄에 아름다운 산이라 지금은 산행을 하기에 약간 어중간하다.

 

이번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7시40분 가평행 버스를 타고,

9시 30분에 백둔리 연인산행 버스로 갈아탄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니 탈 만하다.

창밖을 내다보며, 겨울 끝자락의 산야(山野)를 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젖는다.

한 달만 지나면 이 산과 들판이 온통 연두색과 초록색으로 원색의 향연을 펼치겠지.

 

계곡 건너 산자락에 거대한 금불상이 보여 얼른 한 장 찍는다.

부처님은 '공수래공수거'를 주창하셨는데, 저렇게 황금을 좋아했을까?


무소유의 삶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길 원했을 텐데,

저 어리석은 중생들이 부처님에게 황금 옷을 입혀 욕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음나 역시 속물근성이 남아있어 욕을 하는 걸까? 

 

10;00

버스에서 하차해 배낭과 장비를 챙기고 연인산 들머리인 백둔리로 들어선다.

 

관광버스 한 대가 들어오더니 조용하던 등산로가 소란스러워진다.

시끄러움과 주말의 번잡을 피하고 호젓한 산행을 원했던 우리의 소박한 꿈은 깨졌다.

 

 

지도가 필요해 찍으려니 저 못생긴 여편네가 피해주질 않아 그대로 찍는다.

못생긴 것들은 행동도 어딘지 모르게 짜증난다.

우선은 예쁘고 봐야겠지.

여담이지만 민항 858기 폭파범인 김현희도 못생겼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가 선택한 등산로는 소망능선으로 장수능선, 연인능선보다 훨씬 가파르며 힘이 든다.

손을 잡고 연인산을 등산하며, 소망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누가 사기를 쳤을까?

손을 잡긴 커녕 워낙 경사가 급해 호흡을 조절하며 오른다.

 

벌나무라고 착각하기 좋은 물푸레나무를 만난다.

벌나무는 가지에 벌들이 집을 잘 짓기 때문에 봉목(蜂木)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높고 추운

산골짜기에서 자라며, 잎은 오동나무처럼 넓고 어린줄기는 녹색이며 목재는 희고 잘 부러진다.


민속의학에서는 간질환 등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거의 무분별하게 채취와 벌목을 해

멸종되다시피 했다고 하는데 어리석은 나한테 등산로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

 

연인산은 이름 없이 1,068봉, 또는 '우목봉', '월출산'으로 불리다가 가평군에서 연인산으로

이름을 짓고 봄에는 철쭉제도 지내며, 산 꾼들에게는 연인 이상으로 사랑과 아낌을 받는다.

 

경기 가평 북면 백둔리와 하면 상판리 경계를 이루는 산인데,

명지산(1,267m) 남봉인 1,199m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뻗은 능선은 아재비고개에서

가라앉았다가 다시 고도를 높이며 우람한 산봉우리를 들어 올리는데 이 봉우리가 바로 연인산이다.


연인산은 수도권에서 첫 손에 꼽는 아름다운 비경과 명소들이 많은 산이며,

그중 제일 비경은 '용추구곡'으로 타 국립공원 계곡에 뒤지지 않는 청정함을 간직하고 있는데

오늘 산행코스에선 볼 수 없다.

우정능선과 장수능선 가운데 있으니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들리기로 한다.

 

소망능선까지의 가파른 등산로는 장난 아니다.

미처 녹지 않은 눈과 얼음까지 있으니 로프를 잡으며 올라도 힘이 든다.


다들 잘 올라가는데 나만 힘든 기색이다.

오늘 등산이 신경 쓰여 어젠 술도 별로 마시지 않았는데 맛이 간 나이 탓일까?


왼쪽 사면에 두릅나무가 보이며 다래나무도 보인다.

작년에 누군가 베어 놓았던 '헛개나무'는 없어졌고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이제 900m 남았다.

양지 바른 곳은 진창이다.

등산화에 진흙이 달라붙으니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샘 주위에 얼레지 꽃이 많아 '얼레지샘터'라고도 하는 '연인샘'에 내려서니 물이 말랐다.

한여름에도 콸콸 솟아져 나오는 샘이 말라 버렸으니 어지간한 가뭄이다.

  

정상(1,068m)이다.

조망이 360도 막힘없이 터진다.

 

북으로는 아재비고개 위로 이 산의 모산(母山)인 명지산이 귀목봉과 함께 시야에 와 닿으며,

명지산에서 오른쪽 백둔봉 뒤로 '화악산'이 하늘 금을 그린다.


동으로 백둔리 분지와 장수능선, 노적봉 뒤로 계관산 줄기가 펼쳐지며,

우정골 위로 매봉을 넘어 깃대봉, 야수봉, 대금산 줄기가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운악산이 돋보이며, 우리가 내려 설 상판리 건너로는 청계산 줄기가 성곽처럼 보인다.


 

'길수총각'과 '소정낭자'의 슬픈 전설이 깃든 '아홉 마지기' 평원에 무인산장이 있다.

 

봄부터 얼레지, 철쭉, 양지꽃, 투구꽃, 은방울꽃, 동자꽃, 하늘말나리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이곳은 연인골 김 참판 댁의 종이 아닌 종 같은 '소정낭자'를 사랑한 길수총각이 <조>백 섬을 바치고

결혼하기 위하여 이곳 아홉 마지기 평원에서 '조'농사를 짓다 죽었다 라는 슬픈 전설이 깃든 곳이다.

 

산장엔 지키는 사람은 없고, 누구든지 불을 땔 수 있는 연료도 있고, 화장실 등이 구비되어있다.

 2년 전 봄의 환상적인 이곳 풍광을 가슴에 간직하고 다시 이곳을 찾았는데

군데군데 식재한 구상나무가 오히려 멋있는 평원의 모습을 망친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1030봉 방향으로 하산하여 상판리로 내려서려다 이내 포기한다.

아이젠 없이는 북사면 직벽의 얼음과 눈길이 위험해, 헬기장을 경유하여 생수공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정상주인 막걸리와 떡, 과자 등으로 맛있게 요기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봉길이 막걸리를 다섯 통 짊어지고 올라왔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니 견디기 힘들다.

얼음과 눈 쌓인 하산길이 무지 어렵고 위험하고 힘들다.

보조 자일을 잡고 조심하며 내려온다.

 

 

경사진 하산 길 두 시간 만에 삼거리로 접어든다.

위에는 매서운 겨울, 산 아래는 따사한 봄이니 불과 한 두 시간 사이에 겨울과 봄의 두 계절을

겪는다. 

 

16;00

드디어 큰길이다. 


현재시간 오후 네시

버스가 네 시 반에 오니 30여 분을 기다리며 덕근이 배낭에 있던 복분자술을

마저 해치우고, 발렌타인 한잔을 더 마신다.

 

정확히 제 시간에 온 버스를 타고 현리방향으로 가는 중 가까이에 '운악산'이 조망된다.

2년 전 영등포시장역 지점의 내 후임 여자 지점장이 운악산등산 중 실족 사망한 사건이 상념으로 

떠오른다.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연인산.

약 6시간 정도 걸리는 연인산의 산행에선 손도 잡을 수 없이 경사가 급하며 위험한 등산로에선

많이 조심하여야 한다.

장수능선과 연인능선은 부드럽다고 하니 다음 기회엔 그쪽으로 가보기로 하자.

 

                                         2009.  3.  11.  연인산 종주를 하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