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30. 04;41
머피의 법칙은 여행의 마지막 날에도 이어져 총무를 보는 친구의 장모 별세
부고가 들어온다.
여행 중 가족의 부고(訃告)는 황당하다.
별세소식이 들어오는 순간 본인은 들떴던 여행의 분위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07;30
대륙에 태양이 솟았다.
산 하나 보이지 않은 광활한 대륙의 벌판,
군데군데 네모꼴로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된 논엔 물이 가득찼고 논 가운데 해오라기
한가롭다.
여행사 직원의 폰에 실시간으로 백두산 천지의 눈보라 치는 동영상이 뜬다.
5일 연속으로 기상악화인가.
지금 내가 달리는 곳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니 정녕 하늘의 뜻을 모르겠다.
나는 광개토대왕비를 만나러 광활한 대륙의 벌판을 달린다.
비류수인 혼하에 박무(薄霧)가 스며들고 어제 백두산 천지에 오르지 못한 서운함에
밤새 뒤척였어도 몸은 가볍다.
08;55
여행엔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이 있다.
자유여행은 말 그대로 자유지만 몸소 먹거리, 숙소, 교통 등을 직접 준비하고
실행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반해 패키지여행은 여행사에서 모든 편의를
제공해준다.
패키지여행을 하다보면 유럽, 중국, 동남아 등 어느 곳을 가도 쇼핑센터를 들려야한다.
외국어에 자유롭지 못하니 패키지여행을 할 수밖에 없어 답답할 때가 많고 의무적으로
쇼핑센터에 들릴 때에는 고역을 치른다.
최근 10년간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 여행사 직원의 눈총을 받으며
민망할 때도 많았는데 오늘은 보이차와 죽세공점포에 들어간다.
앞에서 강의하는 사람은 자기네 물건이 최고요, 만병통치라고 하지만 물건에 대한
욕심도 믿음도 없으니 난 먼산바라기로 시간만 때운다.
이젠 조금 비싸더라도 노옵션, 노쇼핑으로 방향을 바꿔야겠다.
쇼핑백에 물건을 가득 담아 나오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음부터 꼬인 여행이라,
오늘도 쇼핑센터의 날카로운 문고리에 상처를 입어 응급조치를 하는 작은 소동도
벌어졌으니 내일까지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날까 걱정이 된다.
때로는 자연의 법칙에서, 머피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
12;20
하늘이 어둡다.
깎아지른 절벽에 난 길로 혼강(渾江)의 절경을 보며 차는 달린다.
비가 예보되었는데 아직 비는 오지 않는다.
좁은 국도에 비마저 내린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오늘도 백두산 천지가 열리지 않았으니 이젠 버킷리스트에서 지워야겠다.
항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의 관광객 사고 소식을 들으며 가슴이 철렁하다.
10년 전 나도 그 배를 타고 항가리의 야경을 즐겼는데, 7명만 구조되고 26명의
실종 소식에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탄 비행기가 랜딩을 하지 못해 불안에 떤 게 불과 며칠 전인데 내가 달리는 곳의
지구 대척점(對蹠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어가고 하필이면 내가 지금 이용하는
참좋은여행사를 이용하는 한국관광객이 희생되고 있다니 안타깝다.
참 묘하다.
지난번 크로아티아 등 발칸반도를 여행할 때는 세월호 참사로 수백명이 희생을 당했고,
이번 백두산 여행 중에는 항가리 다뉴브강에서 수십 명이 죽고 실종되다니 우연치곤
사고가 필연이 되었으니 마음속으로나마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역사학자로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하여 정약용 실학박물관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역사에 대해 간결하게 정의를 내리는데 혹시 잊어버릴까 얼른 메모를 서두른다.
논과 가로수 사이로 안개 피어오르고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다.
들판의 지평선 끝나는 곳에 아주 작은 산이 하나 솟았고 인구 15억의 대국인데
들판에 사람이 없다.
비소식이 있었는데 하늘은 푸른색이니 기상예보를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알기론 우리보다 우주강국인데도 기상예보가 맞지 않으니 이 사람들은 누구 탓을 할까.
.
중국의 풍경이 달라졌다.
무질서의 극치였던 교통도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가고,
고용효과를 위해 길거리에 버리던 쓰레기도 없어졌고,
군데군데 경운기와 이앙기 등 농기계가 보이니 대규모의 인력을 동원하여 노동력으로 짓던
농사도 서서히 기계농이 되어간다.
중국은 수년 전보다 확실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88올림픽을 치른 후 민도(民度)가 높아졌는데,
중국도 2008년에 올림픽을 치루고 민도가 높아지는 단계에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국민들이 지도자에 대해 절대 지지를 하고 있다니 이들은 미래가 밝다.
13;11
여행을 하며 밥을 먹는 것보다 자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언가를 마시는 일이다.
참 많이도 마셨다.
부담 없이 술을 참 많이 마셨다.
여행 중 밥보다 더 자주 입에 대는 음료는 단연 술이다.
맛이나 가격, 성분은 부차적인 문제다.
친구들과 그냥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요, 우정을 마시는 거다.
술을 마시며 품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냥이라는 말일 것이다.
인삼을 장뇌삼이라고 우기는 중국 장애인 행상에게 1인당 1뿌리씩을 먹이려고
친구가 지갑을 연다.
광개토왕비가 서있는 건너편 북한땅이 지척이다
중국쪽은 원시림인데 북한쪽은 벌거벗었다.
쉽게 구별이 되는 두 나라의 땅, 북한 땅은 하늘에서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삼대세습의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은 물론 대자연까지 힘든 세상이 되었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이 묘지에 누워 저 꼴을 보며 속 편히 영면(永眠)을 하겠는가.
건너편 북한 땅을 망연(茫然)히 바라본다.
14;10
통화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집안(集安)의 광개토왕비를 바라보며 대왕의 리더십이
궁금해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장된 공정, 불균형을 균형, 적(敵)은 포용하고, 국민에겐 위장된
포용으로 성장은커녕 역성장을 하고 있으며 위정자들이 모든 원인은 전 정권과 국제기조의
탓이고, 정책부진은 공무원 탓이라며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을 한다.
유리관속에 있는 광개토왕릉비(好太王碑)를 바라보며 대왕의 리더십은 어땠을까를
상상해본다.
많은 장군과 병사들을 질타하며 대륙의 벌판을 달렸을 대왕의 모습이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해봤어? 라는 정주영의 끝없는 도전정신,
세계는 넓다고 포효하며 모험을 가치투쟁으로 여기던 김우중,
제철소를 성공 못하면 포항앞바다에 같이 빠져 죽자라던 박태준의 분투,
인재육성이 모든 것의 답이라던 최종현 같은 인재를 거느렸을까,
대왕에게 강감찬, 이순신, 김유신, 계백 등 탁월한 장수가 있었을까?
아니면 제일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따르라(follow me)라는 호령으로
질타를 하였을까 온갖 상상을 한다.
대왕은 18세에 왕위(王位)에 오른 후 군사작전, 정책, 통치방식을 통합적으로
10년 후, 100년 후를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렸는데,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왜국 등의 관계는 디테일(detail)하게 보았고,
한민족의 미래를 초원의 지평선을 달리는 기마민족으로,
바다의 수평선을 향하여 향하는 해양국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12세부터 임금 교육을 받으며 원조선을 국가의 모델로, 주몽을 통치의 모델로
삼았으며, 하늘의 피를 받았다는 자의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찾았다.
무예, 정치, 학문, 종교, 철학 등에 관해 멀티플레이어로 시간 관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50보는 처진다며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100보를 걸어 나가며,
늘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깝게도 39살에 세상을 떠났다.
10년만 더 살았어도 더 큰 벌판을 호령하였을 텐데 아쉽다.
광개토대왕은 전장(戰場)을 누비며 영토를 확장했는데,
서쪽으로 북경(北京), 북으로는 오늘날의 몽골을 넘어 러시아의 네르친스크를 한참
지난 곳까지,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톡 부근의 우수리스크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대왕(大王)의 호칭을 받은 왕은 두 명으로 고구려 19대 왕인
광개토대왕과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뿐이다.
왕의 명칭으론 부자지간 또는 조손지간에 왕위가 계승되었으면 종(宗),
형제나 친척 간에 왕의 계승이 되었을 대는 조(租)를 붙이며,
재임중 반란이나 탄핵을 받아 왕위(王位)에서 쫓겨난 경우에는 군(君)을 붙였다.
중학교 때 역사를 담당했던 구관서 선생님은 전쟁과 반란, 사화(士禍)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때의 임금에게도 조(租)를 붙였다는 설명을 지금도
기억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는 더 이상 도전하지도, 모험하지도, 분투하지도 않는
세상이 되었고, 균형, 공정, 포용이라는 위장된 이름으로 발전지향적은커녕
발전저항적인 세상이 되어간다.
세월호 리본을 달고 진상조사를 외치는 사람이 애국자가 되었고,
탈원전 공약은 미생물 전공 학자가 주도해 만들었으며
원자력안전위원장을 사회복지를 전공한 관료 출신으로 임명하였고,
첫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가 전체 경제를 보는 거시경제를 전공한 게 아니고
기업의 재무상태와 주가를 연구한 경영학자요,
새로 임명된 정책실장은 도시공학자다.
청와대 첫 경제수석과 현 통계청장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고,
경제부총리 또한 거시경제 전반이 아니라 예산만 다뤄온 사람이라고 한다.
청와대 안보실장은 안보외교가 전문이 아니라 경제외교로 경력을 쌓은 사람이고,
안보실 2차장은 안보전문이 아니고 FTA를 주로 다뤄온 통상전문가이며
외교부 장관은 안보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반미, 친북의 대명사인 리영희를 스승으로 모신 대통령,
이젠 나이가 들어 철날 때도 지난 80년대 운동권인 비서진은 시장과 대기업을
적폐로 보고 삼성 등 대기업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들에 의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일 수사를 받고 또 받고, 한진의 조회장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숙환(宿患)으로 죽었다.
경제, 외교, 안보분야에 베테랑이 많은데도 "주류 교체가 숙원"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반공(反共), 산업화, 보수 세력은 친일파의 잔재인 주류로
청산하고 교체해야할 대상이 되었다.
각 분야의 정통 전문가를 적폐로 몰아세우는 지금의 대통령과 광개토대왕의 리더십을
비교해본다.
기원 414년 호태왕의 아들인 20대 장수왕에 의해 세운 비는 높이가 6.39m에 이르고
무게는 37톤에 이른다.
방추형의 자연석으로 만든 비석의 배면 너비는 1.46m, 1.35m, 2m, 1.48m로 각 면이 다른
크기와 문양을 지니고 있다.
비신에는 총 1,775자의 비문이 음각되고, 개석(蓋石) 즉 덮는 돌이 없는 고구려 석비
특유의 형태이다.
한자 예서체로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 보다.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었다."
는 내용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요, 가장 위대한 고구려 왕으로 칭송받는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가 비각(碑閣)의 유리건물 속에 잠들어 있고,
고구려 특유의 호방한 필체로 쓴 비문은 한, 중, 일 학자들에 의해 약 1,500자 정도가
해석 되었는데, 크게 고구려 건국과정, 대외 정복사업과 업적, 수묘 체계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해동 제일의 고비(古碑)라는 별칭을 가진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비를 떠나며 다시 한 번 뒤돌아본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인 담덕은 서기 374년 고국양왕의 장자로 태어나 12살의
나이로 태자가 되고, 6년 후 고국양왕의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다.
나면서부터 허우대가 컸으며 뛰어나고 활달했다는 '담덕'은 고구려를 대대로 크고
부강하게 이어 나가자는 뜻인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쓰며 요동지역 전체를장악하여 동아시아의 최강국이 되었는데 왕릉이 너무 황폐하고 초라하다.
그는 남북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일생동안 64개의 성(城), 1,400여 마을을 차지하여
막강 고구려를 건설했다.
"나는 그대들의 조국 고구려의 대왕이다.
그대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고구려에서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면 풍족히 먹고 살 수 있도록 땅을 나누어 줄 것이다.
백성이 있고 난 후에 임금이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은 지금도 최고의 명언으로 지금의 정치가와 지도자들이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생각한다.
백두산 여행길에서 고구려의 유적을 만났으니 이번 여행은 수학여행이다.
맞다 인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수학여행일 수도 있겠다.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무엇인가를 깨닫는 거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랄 수 있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늘 무엇인가를 배우며 살기
때문이다.
호태왕인 '광개토대왕릉'을 오르다가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잠깐 선다.
꽃들이 꼬물꼬물 피기 시작한다.
장군총 주변 돌 틈사이로 에 '개돌나물'이라고도 불리는 '바위채송화'가 노랗게 피었다.
황폐해진 왕릉을 오르며 "임금은 칼이 아니라 마음"이라던 대왕을 추모한다.
광개토대왕은 칼과 마음 모두로 대륙을 정복해나가다가 39살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스러진 것처럼 그의 무덤은 엄숙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도굴을 하고 지금은 관광객으로
부산하고,
그의 땅이었던 북한 땅이 헐벗은 모습으로 빤히 보이니 영면하기는 틀렸겠다.
대륙에서 밀려나 반 토막 난 대한민국과 독재 공산국으로 멸망직전인 북한 땅을 바라보며
오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려나.
시간이 멈춘 능(陵)에 '흰제비꽃'이 피어 대왕의 혼을 어루만진다.
15;00
장수왕릉에 도착한다.
기원 5세기에 세워진 왕릉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석구조 능묘로 20대 장수왕의
능묘이다.
705년의 고구려 역사 중 28명의 왕이 있었다.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길림성 집안(集安)의 동구 옛 무덤군에 18기의 왕릉이 있는데,
그중 가장 잘 보존된 곳이 지금 내가 오른 고구려 제20대 왕인 장수왕의 능묘로 알려진
장군총(將軍塚)이다.
일설에 의하면 청나라 말기 재해민들이 이곳에 들어와 웅장한 이 무덤을 발견하여
변방을 지키던 장군의 묘로 여기고 장군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외곽은 뾰족한 방추형으로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미명을 얻을 정도로 걸작이라고 하며
능묘는 계단식 돌방무덤으로 길이는 31.58m, 높이는 13.1m이다.
묘지 위 거대한 돌은 무려 50톤이라 하며,
무덤의 주변에는 10여 톤에 달하는큰 바위가 11개나 된다.
능원묘총(陵園墓塚)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다.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요,
원(園)은 재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와 빈, 후궁이면서 왕세자의 생모,
종실에 들어와 즉위한 임금의 친부모의 무덤을 말하고,
임금에서 군(君)으로 강등되면 묘(墓)로 불리고, 또한 빈(嬪), 왕자 등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을 묘로 부른다.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친구는
총(塚)에 대해 무덤의 주인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발굴된 유물과 규모로 보아
왕릉, 왕비의 능으로 짐작이 되면 총이라고 명쾌한 설명을 한다.
이밖에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고, 능이나 묘로 단정하기도 애매하고, 토된 유물도 없어
총(塚)이라고 부를 수 없어도 옛 무덤으로 추정되면 고분(古墳)이라고 한다.
동양의 피라미드로 불리는 장군총은 화강암을 가공하여 7단의 스텝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기단(基檀)의 한변 길이는 31.58m에 달하며 1,100여 개의 돌을 22층으로
12.4m로 쌓아 올렸다.
안내자는 근처에 돌이 없어 여기서 22km 떨어진 오녀봉(五女峰)에서 굴리고 끌고
왔다고 한다.
돌을 쌓아 올린 무덤이 빗물이나 외부압력에 의해 밀려나가고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각 면에 15톤에 달하는 거대한 돌로 세 개씩 호분석을 세웠다
왕릉 옆을 걸으며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생각해본다.
외교는 도처에서 코리아 패싱을 당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일본 방문길에
한국에도 들려달라는 우리의 요청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일본 군함에 올라 동해를
일본해라 부를 정도로 우리의 국력은 하락세다.
경제 활력이 사라지고 성장 동력은 위축되었으며 미래는 불투명한데 또 증세(增稅)를
들먹인다.
국가채무비율 40%를 무너뜨리기 위해 세금을 풀생각부터 하는 정부,
소득주도 성정이라는 해괴한 이론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는데도 수정할 생각이 없는
나라이기에 외교, 안보, 경제, 산업 기술 어느 하나 잘나가고 좋은 게 없다.
민노총은 경찰을 두드려 패며 활개를 치고, 참여연대는 권력을 잡아 득세를 하고,
좌파 이념으로 무장한 운동권 출신과 얼치기 전문가들이 경제 운영의 중심 세력이
된 나라,
탈원전 대못은 세계 최강의 한국 원전 생태계를 붕괴시켰다.
촛불 혁명으로 혁명적 권한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들이 국정운영, 적폐청산
등의 명분으로 마구 칼을 휘두르는데,
하필이면 6·25전쟁에서 전사하고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수많은 영령이 잠든 국립
현충원에서 김원봉 같은 전범(戰犯)을 국가 독립 유공자로 내세우자는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전쟁으로 전사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치졸(稚拙)함의 극치다.
11만 명의 무명용사를 비롯해 17만9000여명의 장병과 순국선열의 호국영 령앞에서
김원봉을 불러내다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정권이 바뀐 후 이 사람은 역사의 법정에서 어떻게 하려나, 두려울 뿐이다.
하긴 천안함 폭침과 연평해전 희생자 가족이 포함된 보훈 가족 초청 오찬에서
문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과 손을 맞잡은 사진이 수록된 책자를 유가족에게 나눠줬고,
한 참석자는 충격으로 급체를 하는 상황도 발생하였다고 한다.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기는커녕 상처를 더 후벼 팠으니 때와 장소를 모르는 사람이다.
2년이 20년보다 더 긴 시간 같은데 앞으로 3년을 어떻게 참으며 보낼까,
5년 후에 완전히 망가진 내 나라의 모습이 황폐한 무덤 위에 그려진다.
7년만의 경상수지 적자는 외국인에 대한 배당금 탓이고,
저소득층 격감한 소득은 통계착시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월 50만원씩 현금을 지급한다는 구직촉진수당의 소요예산은 계산하기 어렵다며 총액을
밝히지 않는다.
올 초 취약 계층 빚 95%를 탕감해주면서도 들어가는 예산을 밝히지 않았으니
5년짜리 정권이 국가운명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다.
일명 장군총이라 불리는 장수왕릉이 나의 절규에도 못들은 척 침묵을 지킨다.
6·25전쟁의 영령들 앞에서 전쟁의 원흉이 광복군의 뿌리와 국군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하는 대통령,
북한정권을 수립하고 북한 정권의 요직에 있었고, 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김일성으로부터 최고훈장인 노력훈장을 받은 김원봉,
대통령이 6·25침략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을 국군의 뿌리라고 태연히 연설하는 모습을
현충원의 지하에서 영면하는 호국영령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친일잔재, 적폐청산, 독재자 후예, 반헌법적이라고 편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고
빨갱이론을 펼치더니 느닷없이 편가르지 말자고 국군 통수권자가 호국영령들 앞에서
연설을 하니 국군장병들이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나.
15;17
장군총 1호 배총(陪塚)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무덤은 9.2mX4.6m로 순장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6;00
고구려 초기와 중기의 수도였던 위나암성(환도산성)으로 이동한다.
환도산성(丸都山城)이 외롭고 하늘에선 금세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태세다.
산세의 흐름에 따라 축조된 6947m의 성곽이 보일듯말듯 가물거린다.
국내성의 군사 수비성이니 외성(外城)인가,
고구려 시대 두 번이나 수도로 정해졌넌 성안을 걷는다.
불규칙하고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삼태기' 모양이라는 환도산성에 오르는 길은
통제로 오르지 못한다.
옵션 상품으로 비용을 지불하였는데 못 올라가니 중국에서 한국 사람은 이래저래 봉인
모양이다.
환도산성에 오르며 핑크아까시를 만난다.
전국의 산을 다니며 나무에 관심을 가졌지만 핑크아가시는 처음 만난다.
여기만 해도 남한과 위도가 많이 차이가 져 북방계식물인가 아리송해
자료를 찾아보니 진천과 괴산 등 여러 곳에 있다는데 전혀 몰랐다.
아카시아는 아프리카에만 있고 우리나라에 있는 아카시아는 아카시아가 아니고
북아메카산 아까시가 맞다.
18;00
통화와 집안의 일정을 끝내고 단동으로 향한다.
차창을 때리는 소낙비를 바라보며 며칠간의 일정을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한다.
20;00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행에서 비가 내리면 추억이 된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분위기는 감동을 준다.
대화는 가볍게 이어지고 나는 내마음속에 있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거다.
나이가 들었어도 인생에서 한번쯤은 충전이 필요하다.
한번쯤은 쉬어가는 인생의 쉼표에선 멈춤도 필요하기에 빗소리를 들으며 서로에게
집중을 한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행사로 종심(從心)잔치를 하는 날이다.
케잌에 불을 붙이는 순간 콩 볶는 듯 빗소리가 요란해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소나기가 양철지붕에 마구 떨어지며 마치 양철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친구들의 함성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내 코에서 코피가 주루룩 흐른다.
50명이 넘는 대형행사를 치루며 흐르는 코피는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건가.
그동안 험한 세파를 헤치며 살아온 노고에 서로 감사를 드리고 케잌 커팅을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르고, 삶의 환경이 서로 달라 각자 자기의 인생길을
달리다가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 만난 50여명의 동창들,
인생의 삼대 인연(因緣)인 학연(學緣), 지연, 혈연 중 학연인 친구들의 종심을
악기 대신 빗소리가 축하를 해준다.
어느 철학가는 인생의 99%가 비극이며 1%는 희극이라고 말했다.
나는 1%의 친구와 함께 한다면 100% 전체가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여생을 즐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어느새 우리 나이가 종심이 되었구나.
케잌의 불이 꺼지며 칠십년 세월이 사라졌다.
아쉬움 속에 선구자의 노래를 부르며 환희의 밤은 사라진다.
이 비가 그치면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
먼 훗날 또 온다면 백두산에서 기필코 별을 보리라.
2019. 5. 31. 12;43
인천공항에 착륙하며 여행 첫날 대련에서 두 번이나 랜딩에 실패한 일과
기내에서 며칠 만에 보는 조선, 동아일보의 항가리 다뉴브강 참사소식이 오버랩되며
가슴이 섬뜩하다.
우리 탄 비행기가 세 번째 랜딩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으면, 우리도 항가리
사건과 비슷한 재난을 만날 수도 있었겠다.
14;20
T1에도 공항버스가 오는데 왜 갑자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T2로 갔을까.
순간의 혼동으로 T2로 가서 헤매다 T1으로 다시 돌아와 16;10분 버스를 탄다.
두 시간을 허비했으니 머피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한국의 하늘은 파랗게 빛난다.
여행 마지막 날,
오늘도 그렇게 지나간다.
2019. 5. 31.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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