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8. 6;30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회색하늘은 세상을 짓누르고, 오늘은 뿌연 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다.
08;00
8시 정각이 되자 춘천 행 기차는 미끄러지듯 상봉역의 플랫폼(platform)을 떠나고,
전철차창 밖으로 조용히 흘러가는 북한강물을 바라본다.
-♬카타리나 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나치에 저항하느라 카타리나로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그리스의 젊은 레지스탕스를
기다리는 여심(女心)을 그린 노래지.
음울하고 슬픈 분위기를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나는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가 애잔하게
부르는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물가에 해오라가 서너 마리가 물속을 응시하며 도하청장(淘河靑莊)을 연출하고,
나는 세태에 찌든 몸과 마음을 다스리려 춘천의 금병산을 향해 달려간다.
11;05
기온은 30도가 넘었고 습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찜통더위가 시작되었다.
관광객이 들끓어야할 김유정 역엔 인적이 끊겼다가 한참 만에 한 사람이 들어간다.
금병산은 초행이다.
지난번엔 천재 소설가 김유정 문학관과 생가만 들렸기에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금병산을 찾는다.
11;27
1930년대 우리나라 문학사에 귀중한 작품들을 남긴 '김유정'문학관에 땡볕이 내리쏟는다.
김유정은 1935년 단편 '소나기'와 '노다지'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가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작가다.
김유정은 폐결핵으로 죽었는데, 묘하게도 천재 작가나 가수들이 폐결핵으로 많이 죽었으니
천재와 폐결핵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가수 김정호도 33살에 폐결핵으로, 28살에 요절한 이상도 폐결핵으로 사망했으니 말이다.
그는 불과 2년동안의 작가생활에서 30여편의 단편을 남겼는데 '동백꽃, 금 따는 콩밭' '
봄, 봄'등 12편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창작되었다.
후세의 평론가들은 김유정이 토속적인 어휘를 풍부하게 동원하여 언어를 구사하는
묘미를 지녔다고 평가를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는 징검다리에서 물장난을 치는 소녀와 소년의 애틋한 풋사랑을
그렸다.
소나기를 만나고 물이 불어난 도랑에서 소년은 소녀를 업어 건넸고, 소녀 네가 이사하는 날
소년은 뜻밖에 아버지로부터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는 게 줄거리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는 소년소녀의 애틋한 풋사랑을 이야기했지만,
김유정의 소나기는 황순원과 달리 노름꾼인 남편과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부인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테마로 다룬 소설이다.
노름꾼 춘호는 부인에게 돈을 해달라며 생떼를 부리고 때리자, 춘호 처는 이 주사를 만나
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돈이 생긴다.
춘호는 노름자금을 또 만들려고 아내를 고이 빗기어 돈을 받아오라고 보낸다는 것이
김유정 '소나기'의 줄거리다.
또한 김유정의 '동백꽃'에서는
소작농의 자식이 주인집 딸 점순이라는 주인공과 수탉으로 쌈을 시키는 과정을
리얼(real)하게 묘사 하었다.
은행이라는 직장에 들어와 근무를 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등 지인의 청탁을 들어주는 게 고역일 때가 많았다.
전집을 반강매 월부매입으로 권유받는 건데, 당시 상당한 거금으로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주인공인 '대야망'과 '한국문학전집'을 통째로 구입하여 서가에 꽂았다가 8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작은 글씨로 인쇄되고 낡아 헤진 책은 소장하지 않고 다 버렸다.
길을 걸으며 그중 한국문학전집에서 단편으로 쓴 김유정의 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본다.
11;36
'실레이야기 길'을 한참 걷고 나서야 등산로 들머리를 만난다.
이정표엔 거리표시가 없고 주변에 산악회 리본도 보이지 않는다.
실레이야기 길을 걷다보면 금병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오겠지.
'실레마을'이란 '산에 묻힌 마을의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라는 뜻이라 하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시루 증(甑)자를 써 '증리'라고도 한다.
모퉁이를 돌자 진딧물과 벌레들이 많이 꼬인다는 무궁화꽃이 벌레 한 마리 없이 청초하게
피었다.
우리나라에서 강릉 사천 방동리 무궁화와 함께 단 두 그루뿐인 천연기념물 무궁화나무 중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하였던 무궁화나무가 최근 고사(枯死)
하였다고 한다.
100년이 넘은 백령도 중화동교회의 수호신인 아래 무궁화나무는 2011년 1월 천연기념물
제 521호로 지정되었다는데, 2013. 10. 16 백령도 여행 시 들린 중화동 교회에서 이 사진을
찍을 때는 뿌리의 훼손을 보지 못했다.
높이가 6.3m로 국내에서 제일 크다는 이 무궁화나무는 꽃잎과 수술이 붉은 재래종으로
섬 바람을 이겨내고 오랫동안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는데,
2012년 태풍 블라벤의강풍으로 뿌리가 훼손되고, 다시 2018년 태풍 솔릭으로 가지가 부러져
고사하였다고 전해지니 괜히 속상하고 아쉽다.
<2013. 10. 16. 백령도 중화동교회에서>
제헌절인 어제 창밖을 내다보고 깜짝 놀랐다.
태극기는 전체세대에서 우리 집만 외롭게 꽂힌 거다.
관리사무실에 태극기 게양에 대하여 권유방송을 부탁할까하다가 마음을 바꾼다.
겨우 5년짜리 문재인 정권에서는 태극기도 외면을 받는 세상이 된 모양이라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방송을 보기가 겁나는 세상,
청와대 뜻과 다르면 이적(利敵)이요, 친일 매국노라고 하는 세상,
4대 국경일인 제헌절에 태극기 한 장 걸리지 않는 세상,
이 정권에서는 태극기를 혐오하고 인공기를 좋아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천연기념물이자 나라꽃인 무궁화가 죽어도 관심이 없으면서 김정일과 김정은이
보낸 조화(弔花)를 영구보존한다는 나라,
일본과 무역전쟁을 치루면서 외교노력은 하지 않고 집구석에서 큰소리만 땅땅치는 나라,
대통령과 권력자들이 이순신의 12척 배와 죽창가, 동학혁명이나 되새기는 이 나라의
암울한 현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북한의 김정은이 보낸 조화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 차관, 박지원 의원 등 장차관급 여럿이 판문점에
직접 가서 고가미술품 운반에 사용되는 무(無) 진동 차량에 실어오더니 특수 처리를
거쳐 반영구적으로 보존한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했는데,
예전 김정일이 김대중의 빈소에 보냈던 조화는 현재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수장고에
특수처리 후 보관되어 있다는 상식 밖의 소식은 나를 또 암울(暗鬱)하게 만든다.
무릇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물 흐르듯 국민을 살리고 국가를 지키는 게 정치 아닌가.
자기들의 이념에만 매몰되고, 과거의 적폐청산에만 매달리는 권력자들에 의해 나라가
망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니 큰일이다.
무슨 매미일까,
매미가 더위에 지쳤는지 잔뜩 쉰 목소리로 울어대는데 듣기가 거북하다.
오히려 까마귀 까악 대는 소리와 동박새 쭈비~쭈비 우는 소리가 더 정겹다.
11;52
이 안내판을 만나기까지 30여 분간 여러 묘지를 만났다.
깔끔하게 정리가 된 무덤, 억새풀과 바랭이가 웃자라 겨우 형태만 갖춘 무덤,
윗부분을 평평하게 만든 이색적인 무덤 등 여러 형태의 묘지가 이 산속에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장례문화가 많이 개선되어 화장률이 80%가 넘었다는데 이젠 국토를 더 이상
훼손시키지 말고 화장률이 100%가 되어 깨끗한 자연을 후손에게 넘겨주었으면 좋겠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최근 폰에 부고(訃告) 문자가 부쩍 늘었다.
요즘에는 웬만해선 화장터까지 따라가지 않지만,
혈기왕성했던 얼마 전까지는 의리를 지킨답시고 화장터 또는 매장지까지 찾아다녔다.
경건한 마음으로 화장장의 전기소각로 앞에 선다.
관이 전기화로 속으로 들어가면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50분이 지나면 '소각완료', 또 10여 분이 지나면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안내판에 뜬다.
수년 전 소각이 끝난 후 어머니,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아 가슴으로 안았다.
냉각이 덜 된 유골함은 뜨거웠고, 불과 한 되도 되지 않는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들었고 입자가 참 고왔다.
뼛가루의 침묵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적막 속에 부모님은 세상과 작별을 하는 거다.
수십 년을 살았으면서도 막상 죽으면 한 되의 뼛가루만 남기는 죽음의 가벼움이라,
그날 나는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해보았다.
해가 떴다가 시간이 지나면 날이 저물고, 봄이 오면 여름·가을을 거쳐 겨울이 오는 건
자연스런 자연현상이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세상에서 축복을 받으며 사람이 태어나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와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
(五陰盛苦) 등 팔고(八苦)를 거친 후 죽는 거 또한 자연스런 자연현상이다.
젊은이들은 웰빙(well being)이 추세라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는 웰다잉(well dying)이
추세라, 언제 어떻게 존엄을 지키며 죽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점점 높아져 간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는데, 웰다잉(well dying)이란 간단히
생각하면 '가볍게 죽는 거다.'
따라서 그냥 일상 생활하듯 돈 들이지 않고, 주변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고, 지저분한 것
남기지 않고, 평상복을 깨끗이 빨아서 입고 가는 거라고 생각 한다.
우습지만 나는 이미 예전에 아들과 상의를 끝냈다.
머리 수술을 한 후 연명치료거부와, 장기 및 시신기증, 장지를 만들지 말고 유골을 뿌릴
장소까지 지목을 했는데 장소 또한 욕심일지도 몰라 언젠가 다시 수정을 해야겠다.
12;30
길을 잘못 들었다.
이정표가 없어 무작정 산길을 걷다보니 금병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놓쳤다.
특히 초행하는 산에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속도보다 방향이 매우 중요한데 방향표시판이 없어 이를 간과(看過)했다.
세 여인이 재잘대며 다가오기에 길을 물으니 한참이나 어긋났다는 거다.
다시 되돌아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찾기까지 1시간 정도를 허비하였으니
당초 세 시간으로 예정된 오늘 산행시간이 한참 초과되겠다.
13;10
40여분을 헐떡거리며 오르자 삼거리가 나온다.
아직도 1.6km를 더 올라야 한다는 이정표를 보며 얼음냉수로 갈증을 해결한다.
산길은 한없이 부드럽고 처음 나타나는 너덜지대이다.
너덜지대의 거친 바위를 뚫고 자란 참나무와 소나무에서 초록이 뚝뚝 떨어진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여름꽃인 '까치수염'을 보며 숨을 고른다.
금병산을 오르며 무궁화꽃과 이미 시든 '흰장구채', '애기똥풀' 이왼 다른 꽃을 보지 못했다.
더위에 지쳐 깊은 숲속을 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금병산은 야생화에 인색한 모양이다.
김유정의 작품에도 생강나무인 동백꽃만 있으니 말이다.
금병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산 기슭이 비단 병풍을 둘러친 듯 아름답다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원호 장군이 거느린 우리 군대가 왜적을 격퇴하고
이 산에 주둔하였다 하여 진병산(陳兵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정상의 넓은 마당은
수백 명의 병사가 진영을 쳐도 좁지가 않다.
이 산기슭에 진병산 전적비가 있고, 증리 고분군이 있다는데 유감스럽게 만나지를 못했고,
임진왜란과 구한말 의병항쟁으로 이곳에서 작전을 펴 핏자국이 산기슭을 적셨다는 기록을
보며 국난(國亂)이 일 때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先祖)들의 슬기와 용기는 우리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14;10
데크에서 한참을 쉬고 금병산 정상(652m)에 올랐다.
금병산 정상은 시원한 바람이 불 줄 알았는데 여기 또한 염천(炎天)의 세계라 뜨거운
기운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자연에 감응한다.
두 시간 넘게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와 나는 하늘과 산이라는 자연과 하나를 이뤘으니
천인합일(天人合一) 아닌가.
천인합일은 유가(儒家)와 불가(佛家), 도가(道家) 등 종교철학 영역에서 각자 해석을
달리하지만 복잡한 거는 모르겠고 나는 금병산의 하늘과 그냥 천인합일을 이룬 거다.
전망대에 오르니 화악산과 가덕산, 삿갓봉은 박무(薄霧)속으로 사라졌고, 용화산과
오봉산, 사명산, 대룡산(899m)이 겨우 하늘 금을 보인다.
박무속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능선의 흐름을 보며 예전에 올랐던 이 지역의 산을 떠올린다.
삼악산(652m), 봉화산(486.8m), 검봉산(530.2m), 가리산(1.052m), 삿갓봉(716m),
굴봉산(395m), 석룡산(1155m), 용화산(878m)을 올랐으니 꽤나 올랐구나.
금병산의 기(氣)를 받을 만큼 받았으니 하산을 해야겠지.
15;01
멋진 세 갈래 소나무를 만난다.
내 나름대로 삼지송(三枝松)으로 이름을 지으며 잠시 걸터앉는다.
나는 산에 들어와서 이렇게 신령스런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통해 내 삶을 통찰해본다.
사람은 살아가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서둘러 이루려하지만 나무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자연의 속도에 순응한다.
나무와 가까운 삶으로 돌아가면 나의 황혼인생은 행복해지려나,
앞서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으면서 세상의 속도에 순응하며 숲의 한구석을 지키는
이런 소나무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무는 빛을 향해 높이 자랄수록 어둠속인 땅속에 깊이 뿌리를 박는 법이라,
잠시라도 삼지송과 같은 모습을 연출해본다.
16;32
햇볕에 노출된 팔뚝의 피부가 마치 불에 덴 거처럼 쓰리다.
금병산은 초행이라 어느 쪽에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수목이 울창해도 여름 산행은 땀을 쏟아야 한다.
가을이나 겨울산행으로 적당한 산을 한여름에 올랐으니 지칠 만도 하다.
지독한 더위속에 금병산 종주를 끝내고 뭉게구름 피어나는 하늘을 본다.
더위를 이겨내고 종주를 하였으니 내가 자연을 이긴 인정승천(人定勝天)인가.
어찌 보면 사람은 참 독한 구석이 있다.
웬만하면 포기를 할 텐데 무더위라는 환경을 간신히 극복하였으니 말이다.
와!
수십 마리 제비가 전깃줄에 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긴다.
이렇게 많은 제비를 얼마 만에 보는 건가.
불볕더위에 지쳤지만 많은 제비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17;46
식사하느라 배낭에 수납했던 카메라를 꺼낸다.
더운 공기와 부딪친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려 피안(彼岸)의 세계를 연출한다.
길을 건너며 한국인의 정체성(正體性)은 무엇일까.
문씨 정권을 지독히 싫어하며 북한의 김씨 왕조를 미워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정체성이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성질을 말하는데,
함재봉 선생의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서적을 읽은 조용헌 선생은 다섯 종류의 한국사람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친중 위정척사파다.
중국에서 유래한 주자학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집단인데, 이 파는 19세기 말의 혼란기에
상륙했던 서양과 일본을 배척하고, 중국을 예외로 대국으로 신봉하였지만 최근 사드
사태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깨졌다.
둘째는 친일 개화파다.
이들은 명치유신 후의 발전된 일본을 따라가야 조선이 발전하고 중국은 별 볼일 없는
후진국가로 인식하였다.
셋째는 친미 기독교파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자 많은 식자층은 미국을 추종하였다.
이들은 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어야만 나라가 잘된다고 믿었으며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온 인사들이 한국의 주류사회를 형성하였는데,
대학과 학계, 병원, 방송국, 문화계 전반을 친미 기독교파로 보는 거다.
넷째는 친소 공산주의파다
공산주의 이념은 조선의 일부 식자층을 매료 시켰고, 소련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돈을 대주면서 조선의 독립과 조선 소비에트 건설을 지원하였는데, 유교의 선비정신과
일정 부분 맞아 떨어져 영남 양반집 후손들도 상당수 이쪽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다섯째가 인종적 민족주의파다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좋아하는 파로 재야 사학의 멤버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는데,
함재봉 선생은 한국인의 정체성은 이중 어느 한 가닥이 아니라 5개 가닥이 밧줄처럼
서로 꼬여있다고 말하는 거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 사람은 대개 완고하고, 까다롭고, 성내기 쉽고, 복수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어떻게 치루고, 어떻게 해결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 말고 조선사람 조심해라, 일본놈 일어선다라는 말이 다시
회자(膾炙)되는 세상이라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끝나지는 않을 무역전쟁에 대해 노파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다보니 공휴일 감각도 무디어진 모양이다.
7.17일 제헌절이 2008년도부터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는데 지금까지 공휴일로만
알았으니 백수생활이란 어쩌면 외계인의 생활인지도 모르겠다.
신남역에서 2004년 12월 1일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뀐 옛 역사(驛舍) 뒤쪽에 세워진
열차가 더위에 지쳐 잠시 낮잠을 즐긴다.
2019. 7. 18.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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