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495 장성 입암산(笠岩山 641m) Are you happy?

김흥만 2019. 11. 4. 19:10


2019.  10.  23.

황금빛으로 출렁거리던 들녘은 미용실에서 바리캉(barikan)으로 머리를 밀듯

트랙터로 추수하는 농민들이 반듯한 무늬를 만들며 텅비어간다.

초록으로 꽉 찼던 산은 구린내 나는 사람들이 설치한 태양광 집열판으로 채웠고

한쪽은 캐다만 나무뿌리황토 사이로 흉물스런 모습을 보이며 배를 내밀었다.


세상과 자연의 법칙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우주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함으로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고 변한다.


따라서 자연은 생육성쇠멸(生育盛衰滅)이란 과정에서 쇠(衰)를 향해 달려가고,

인간세상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세상의 법칙을 모르는 자들이 태양광 사업의

이권에 악귀(惡鬼)같이 대들어 국민이 낸 세금을 빨아먹고 있으니 정권이 바뀌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적폐청산 및 척결대상이 되어 감옥에 갈 것인가.


문득 '바다이야기'와 IT의 위장된 벤처로 사업자를 행세하며 온갖 세금을 빼먹다

감옥에 간 사람들이 생각난다.


11;00

금년엔 태풍이 많이 와 채소농사는 망쳤지만 대신 과일농사가 대풍이라고 한다.

사과는 현지에서 작년의 10/1~3/1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대추·감·밤이 풍성하게 열렸으며 산에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요란하다.


감의 고장 정읍·장성으로 들어서며 주렁주렁 열린 감 냄새를 맡는다.

감은 명태와 같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덜 익었으면 땡감, 나무에서 익으면 홍시, 따서 익히면 연시, 소금물에 담가 익히면

침시, 말리면 곶감, 덜 말리면 반건시, 잘라 말리면 편시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감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붉은 피를 흘렸다.


산이 비어가고 들판이 비어가면 나도 비어가야 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비우려 노력했던가, 나는 비어졌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행 작가 '손미나'가 KBS TV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담담하게 말한다.

어느 여행지에서 만난 가이드 할머니가 "Are you happy?"라고 묻는 바람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슴속 내면에 깊이 감춰 두었던 행복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고 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행복에 대해서 나는 이 나이가 되었어도 정확히 말을 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노년(老年)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어느 때는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사는 게 행복이라 했고, 아프지 않고 신나게 지내는 것도

행복이라 했다.


젊은 시절 꿈을 제대로 쫒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다보니 어느새 머리가 희끗한 황혼이

찾아왔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 되니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이 순간에도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멈추지도 더디게 흘러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금대봉~매봉산 구간을 종주할 때 친구가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애 가장 젊고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방송에서 손미나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요즘 행복의 타이밍(timing)을 고쳤다.

그동안 노년의 행복을 희원(希願)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살았는데,

이젠 현시점에서 행복을 찾고 현재의 행복을 누리려고 행동을 하는 거다.

물론 어느 게 맞는지 인생엔 정답이 없겠지.


11;20

따라서 지금의 행복을 찾으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입암산(笠岩山)을 찾았다.

산행 기점이 남창골이라기에 문득 적상산 서창(西倉)이 생각나 관리소 직원에게

예전 창고가 어느 곳에 있어 남창(南倉)골이냐고 문의를 하니 우물쭈물하며 답변을

하지 못한다.


호남은 곡창지대임과 동시에 많은 산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덕유산, 지리산, 모악산, 진악산, 회문산, 장안산, 금원산, 기백산, 삿갓봉,

백아산, 무등산, 방장산, 백운산, 천관산, 조계산, 안수산, 강천산, 변산, 백암산, 내장산,

두륜산, 마이산엘 올랐다.


전라도 지방의 알려진 산 중에 웬만한 산은 거의 다 오른 셈인가.

나는 호남에 있는 산에 오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호남은 강원도보다 더 험한 산세에 걸맞게 걸출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탁 트인 들판은 호남평야로 불리고 어쩌다 나오는 산은 기골이 장대하다.


이런 지세를 타고 호남에선 많은 인물이 나왔고, 사상도 나오고, 동학혁명도 나오고,

11·3 학생의거도, 계급투쟁도 나왔다.


예술혼이 뛰어난 고장이라 예로부터 예인(藝人)이 많이 태어났고,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뛰어나와 목숨 걸고 피로써

항거를 하고 나라를 지킨 곳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의병을 일으켜 처절하게 구국항쟁을 했던 호남,

이들은 규모나 활동범위에서 다른 지역과는 큰 차이를 보여 주었다.


대부분의 의병이 자기고을을 기준으로 지키고자 활동한 반면 전라도 의병은 전라도뿐만

아니라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를 막론하고 국가방위를 목표로 하여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직전에 발생한 기묘사화와 정여립의 반역사건으로 '반역의 고장'이라는

오명을 낙인(洛印)받았는데 지금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어 안타깝다.


인문학 강의에서 강사가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을 논한다.

일본이 쳐들어오자 의병들은 조총을 가진 일본병사의 기에 눌려 소극적으로 활동하였는데,

곽재우 장군이 본보기로 일본포로의 심장을 꺼내 구워먹으면서 일본병사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용기를 준 사례를 보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용기를 낸 의병들이 봉기하기 시작하였다고

강사는 말한다.


이를 계기로 광주에서 태어난 고경명(高敬命) 의병장이 6천여 의병을 거느리고

전주를 지나 금산성에 주둔한 왜적을 공격하다 아들 고인후와 함께 순국하였으며,


나주 사람 김천일(金千鎰)은 수백의 의병을 이끌고 수원에서 강화도로 진군하였으며,

이후 진주성을 사수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장렬히

순국하였다.


광주에서 출생한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은 담양에서 3천 의병을 일으켜 장문포, 의령

등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나중에 동학란과 관련이 있었다는 충청도 관찰사 종사관

신경행의 밀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사를 당했다가 현종 2년에 명예가 회복 되었다.


화순 출신 최경회(崔慶會) 의병장은 금산으로 달려가 고경명이 전사하자 나머지

의병을 수습하여 장수, 진주, 개령에서 왜적을 격퇴하였고, 이후 진주성을 사수하다

함락되자 김천일 장군과 같이 남강에 몸을 던졌다.


또한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는 아버지와 동생이 금산성에서 순국하고 진주성이

함락되자 최경희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순천 출신 장윤(張潤)은 300여 명의 의병으로 진주성에서 들어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순국하였으며,

남원 출신 황진(黃進)은 수원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고부 출신 김제민(金齊閔)은 정유재란 때 해남에 상륙하는 적을 무찔렀고,

보성 출신 임계영(任啓英)은 하동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남원 출신 변사정(邊士貞)은 순천에서,

나주 출신 임환은 순천에서 공을 세웠으나 무고로 파직되었다.


장성 출신 변이중(邊以中)은 의병 수천 명과 무기를 동원하여 수원, 경기도 지방, 양천에서

전과를 올렸으며 특히 화차 300량을 만들어 그중 권율 장군에게 40량을 보내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도왔다.


호남은 많은 인재와 호국의 장재(將材)를 배출한 고장이건만

기묘사화와 정여립의 반란으로 후세까지 반역의 땅으로 찍혀 보수정권에서 호남 인사들이

홀대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현 정권의 요직은 다 차지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죄인들은 평안도 강계가 아니면 으레껏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

당시 죄를 지었던지, 사색당파 싸움에 모함을 당해 귀양을 갈 정도라면 우수한 인재임엔

틀림없다.


이들의 후손이 지금도 반골정신을 가졌음을 타 지역 사람들은 이해를 하여야 하나

타 지역과 여론조사 결과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는 나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11;40

입암산은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숨겨졌던 입암산의 존재를 2011년 2월 23일 백암산

(白巖山)을 등산할 때 처음 알았다.


꽤 오래전 어느 책에선가 내장산 단풍에 대해 평(評)을 쓴 글을 읽었다.

그 필자는 내장산 단풍은 인위적인 요소가 많고, 백암산은 식생구조가 가장 다양한 산이며,

자연스런 단풍은 입암산이 단연 뛰어나다고 평을 쓴 글로 기억된다.


지도상에서 우측 상단은 내장산이요, 중앙 하단은 몇 년 전 산행을 했던 백암산이고,

우리가 오늘 오를 입암산은 좌측상단이다.


입암산 정상인 갓바위까지 5.5km요, 하산길은 4.8km로 10.3km나 되는 긴 거리라

제법 발품을 팔아야겠다.


갓바위 코스 탐방인원을 하루 400명으로 제한하였으나, 오늘은 인원이 많지 않아

인적사항만 기재하고 통과를 시킨다.



산은 정적에 쌓였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까마귀가 까악 대자 직박구리가 덩달아 운다.


지난달에 올랐던 문경 황장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침묵의 산'이라

표현했는데 오늘은 소리가 들린다.


그때는 조국 법무장관 임명 건으로 가슴속이 답답해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오늘 위선(僞善)의 천재인 부인 정교수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에 속이 후련해지며 이제

자연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동안 겉으로는 초연물외(超然物外)한 척을 했지만 국민이 양분되는 소동을 겪으며

멘탈(mental)이 붕괴되었기에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진실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현실앞에서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는 나쁜 것인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하는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이 길을 걷는 나는 누구인가 다리를 건너며 천천히 생각해본다.


나는 2.5cm짜리 뇌종양을 달고 산다.

물론 악성이 아니고 종양의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진행이 되지 않아 정상생활을 한다.


오늘 구속된 정경심이라는 교수가 정형외과에서 '뇌종양 진단서'를 발급받아 건강상의

이유를 댔다는데, 이를 북한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은 소대가리도 웃겠다.'


어느 정형외과 의사는 MRI를 찍어도 뇌종양 판독을 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정말 정형외과에서 진단서를 발급 했다면 이 의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의사이거나

아니면 전지전능한 슈퍼맨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였으니 분명 노벨의학상 수상감이다.


위선도 모자라 거짓으로 포장하여 언제까지 국민을 우롱할 것인가.

이런 뉴스를 안보려해도 전 매스컴이 보도를 하니 안볼 방법이 없다.


11;45

계곡 중간에 사각형 바위가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산판일을 하던 일본인 '소심소삼랑'과 우편국장이던 '송정행삼랑'이

자신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생긴 불망비(不忘碑)라는데 글을 확인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암행어사 박문수와 이건창을 기리는 불망비를 송파대로와 모도(矛島)에서 만났는데

뜻밖에도 일본인 불망비가 이 산속에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

굳이 읽으려 하면 못 읽을 리 없건만 불망비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아 그냥 산길을

오른다.


조선시대 암행어사 중 가장 인기를 끈 암행어사는 영조시대 박문수, 정조시대 정약용,

고종시대 이건창 등이 꼽히는데 불망비는 대개 백성들이 감동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뜻밖에도 일본인 스스로 만들고 새긴 불망비를 처음 접하니 다소 당황스럽다.



조국 부부의 행태를 보며 요즘 사람에 대해 혐오증이 생겼는데, 하늘을 찌르며 서있는

'삼나무'가 피튼치드를 내보내며 마음을 다스리게 한다.


장성은 편백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축령산의 편백나무, 방장산의 편백나무숲이 그리워진다.


일본은 자기네 나라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피톤치드를 많이 방출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측정해보니 대관령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훨씬 더 많이 피톤치드를

뿜어낸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학자들은 입암산과 2011년에 올랐던 백암산의 식생구조가 매우 다양하다고 했다.


불과 20여분 오르며 서어나무, 산딸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말채나무,

검팽나무와 쭉쭉 뻗은 삼나무를 만났는데 계곡에 걸친 다리를 건너면 또 어떤 나무를 만날까.


태풍을 거치며 꽤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계곡은 말라 물소리가 사라졌다.

산속에선 크고 작은 폭포수가 귓전을 어지럽게 해야 제격인데 물소리는 들리지 않고,

허공에서 들리는 까마귀 소리에 만족해야할 모양이다.


산에서 산의 소리는 특별한 게 아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면 그게 바로 자연의 소리이다.


나는 요즘 하늘의 소리, 구름소리, 나무들의 소리, 가을꽃 피는 소리를 들으려 애쓴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는 나무의 소리요, 까마귀는 새소리요, 구름소리는 바람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데 바람이 없는 날이라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12;11

최근 조국 법무장관으로 인해 인간과 사람의 품위가 현격히 떨어졌다.

조선시대 3대 간신을 유자광, 임사홍 부자(임숭재), 김자점을 꼽는다.

주지훈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간신'을 OCN채널에서 최근 다시 보았다.


간신(奸臣)들에게 휘둘려 흥청망청하는 연산군을 시해(弑害)하려다 실패한 여인이

국청(鞠廳)에서 연산군이 친국(親鞠)을 하며 고문 하자,

임금에게 "왕은 못돼도 제발 인간이 되어다오"라고 피를 흘리며 절규를 한다.


우리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인간'이라는 말과 '사람'이라는 말 두 가지로 표현한다.

인간이라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라는 말보다 딱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도덕과 양심이 있고 최소한의 윤리적인 존재이면 사람이라고 한다.


역사소설이나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 희대의 3대 간신 중에서도 단연 임사홍·임숭재

부자를 꼽는데, 연산군 재임 11년 동안 채홍사, 채청사인 그들 부자는 1만 미녀를 바쳐

왕을 쥐락펴락했고,

흥청망청(興淸亡請)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했던 연산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나게

만들었다.


요즘 이 나이가 되어서도 많이 배운다.

폴리페서, 앙가주망, 조로남불, 아니다, 모른다 등으로 일관하더니 위선(僞善)의 대가답게

20분 만에 서울대 복직 신청을 해 염장 지르기는 세계 최고 수준인 인간을 보며 충신 대신

충견(忠犬)의 길을 걷는 간신을 본다.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대깨문' 세력이 판치는 나라,  

이들은 586운동권과 함께 시커멓고 두껍다는 후흑(厚黑)철학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베네스웰라 같은 민중주의-전체주의-독재-홍위병 세상이 들어섰으며

민중주의 혁명이 90% 이상 완성돼있다고 한다.

깨어있는 국민만이 이를 저지할 수 있다고 해서 10월 국민저항운동이 시작되었고,

나도 여러 번 동참을 했으며 계속 동참할 생각이다.


온갖 비리와 특혜 의혹을 가진 사람을 엄정하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에

임명하던 날 매스컴을 통하여 '국무위원에 임명함, 법무부장관에 보함'이라는 임명장을 보며

경악을 했다.


촛불로 탄생했다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남의 잘못은 추상같이 비판하고,

입으로는 각종 개혁을 외치면서 실상 자신은 각종 탈법을 저지른 의혹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무슨 개혁을 하겠는가.


이들이 이러고도 공정하고 공평한 나라를 소망한다고 MBC라디오 여성시대에 전화로 출연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절망을 했다.



사람들은 66일의 비상식이라고 하는데 그 비상식은 지금도 계속된다.

민심과 소통하지 않은 오기(傲氣)와 불통(不通),

사퇴 결정 시기를 놓친 오판(誤判)과 실기(失機),

온갖 궤변으로 자기포장을 하고, 자기만이 할 수 있다는 광기(狂氣),

상황판단에 대한 오류로 야기된 국론분열을 야당과 언론 탓이라며 이들은 분노와 분열을

남긴 66일의 비상식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학자인 윤선도는 당시 임금인 효종에게 진시무팔조소(陳時務八條疏)를,

즉 임금이 급선무로 해야 할 8가지 조목에 대하여 상소를 올렸다.

하늘을 두려워하라는 외천(畏天), 마음을 다스리라는 치심(治心),

그리고 인재를 잘 살피고 다스리라는 변인재(辨人材) 등인데 요즘 우리나라 실정에 딱 맞는

말이다.


정치는 사람에게 달렸다(爲政在人)라는 공자의 말을 빌릴 것도 없다.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성군(聖君)이 되는 법이라 누가 충신이고 간신인지 구분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간신은 누구일까,

간신은 작은 간신이 있고 큰 간신(大奸臣)이 있다.

임금이 주색잡기와 살인에 능하고 크게 어두우면 악랄하고 음험한 간신이 세(勢)을

얻었고, 덜 악랄하고 덜 음험한 간신이 있으면 임금이 덜 어두웠다.


즉 신하의 패악질만 가지고도 그 시대가 난세인지 치세인지 분간을 할 수 있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실정은 치세(治世)일까 아니면 어지러운 난세(亂世)일까.


역사가들은 당 태종 이세민이 통치하던 시기를 정관의 치세라 평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인의 치세인가.

나라에는 항상 어려운 일이 있지만 나는 동의 할 수 없어 난세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미국 백악관 NSC의 유럽 안보담당관인 육군중령 '알렉산더 빈드먼'이 

의회 출석을 말라는 백악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연방하원의원의회에 출석하여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통화내용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직접 영향을 끼칠 중대한 사유임에도 불구하고 휘장을 단

정복차림으로 당당하게 의사당으로 들어가 청문회에서 10시간 동안 증언을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대깨문' 세력에 의해

난도질을 당했을 텐데 이 군인은 나랏일에 앞장선 애국심으로 찬사를 받았다.  

대통령에게 충성하지 않고 국가에 충성한 이 군인은 충신일까 간신일까.


춘추전국시대의 묵자(墨子)라는 사상가는

부국강병과 무한경쟁을 주장하던 난세에 유학과 맞섰고 겸애(兼愛) 즉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고 전쟁을 반대한 이상주의자였는데,

주변에서 무한경쟁을 하는 시대에 사랑과 평화만 외치다가 나라도 빼앗기고 국민은

굶어죽는다고 반박을 했다.

사물의 한쪽 측면만 보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 세상에선 충신이 나오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원균에 대해 험담이 많았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고 통분할 일이고 이것이 다 원균 때문이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원균은 무능하면서 공을 탐내 무고한 양민의 머리를 베어 왜적으로

허위 보고를 하고, 거짓공문을 돌리고, 술주정이 심하고 근처 아낙들과 화간을 했다고

썼으며,


체찰사인 이원익은 음흉한 사람의 무고하는 행동,

징비록(懲毖錄)을 쓴 서애 유성룡은 사람됨이 음흉하고 야비하다고 평했다.


또한 이순신의 전기에서 원균은 희대의 간신이고 성웅 이순신을 괴롭힌 성격 파탄자이며

국가를 위태롭게 만든 불충의 인물이라고 주장했고,

어느 학자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들어 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벗어나고자 원균을

악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원균을 달리 해석한다.

이순신과 많은 관리의 미움을 받고 비록 패전 장수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그는 결코 간신이

아니며 전투에서 패배하여 셋째 아들 원전과 함께 장렬히 죽음을 택한 충신이다.

육전(陸戰)에서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하여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우리의 통념대로

말한다면 간신이 아니고 만고의 충신이었다.


비록 패전으로 죽었지만 원균은 전투에서 반드시 선봉(戰必先登)에 섰고,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싸워(忘身奮戰) 선무공신(宣武功臣)을 제수 받았으며,

이순신, 권율과 함께 당당하게 세 명의 1등 공신에 들어갔다.


영웅은 역사에서 만들어진다.

영웅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영웅을 만드는 것은 만고(萬古)의 진리인데,

어쩌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영웅은 나타나지 않고 간신들만 나대 나라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 가지 않은 길을 위태롭게 간다.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 내가 잘못한건 상황 탓, 환경 탓, 다른사람 탓만

하는 세상, 전 정부 탓, 날씨 탓  인구구조 탓, 외부영향 탓, 통계 착오 탓, 내로남불,

문로남불,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대중화된 나라,


남의 잘못은 추상(秋霜)같이 나무라고,

자기의 잘못은 앙가주망(engagement)이라는 말로 해괴하게 피해 나가려한 사람이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났어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만 생각하는 권력자의 자기중심적

편향의 광풍이 세상을 어지럽히니 국민들은 그 폐해의 중심에 서서 고통을 받고 있다.


틈틈히 생각날 때마다 기록한 메모를 본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대한민국을 세웠고,

'박정희'는 세계 최빈국이라는 악조건에서도 중화학에 집중 투자를 하고 제철, 자동차,

조선, 전자로 나라를 키웠으며 농업혁명으로 보릿고개에서 탈출을 하여 배고픔을

해결하였고, 김대중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숱한 치적을 쌓았다.


'전두환'은 물가를 잡고 깡패를 소탕하는 등 치안을 확실하게 잡아

지금도 우리나이 대 사람들은 전두환 시대가 가장 살기 좋았다고 회자(膾炙)한다.

'노태우'는 북방외교로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맺었고,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공항과

고속철도를 추진하였으며 문민정부로 평화롭게 정권을 넘겼다.


'김영삼'은 하나회라는 군부 파벌을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하여 우리

경제의 기초를 건실하게 만들었으나 외환위기로 몰락을 했고,

'김대중'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IT 산업의 진흥을 도왔으나 부정부패로 세아들이 다

구속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노무현'은 한·미 FTA를 체결하고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였으며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국익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퇴임 후 정치보복 등 우여곡절 끝에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는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명박'은 세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플러스 성장을 하여 무역액 1조 달러를

달성하고 국제 신용등급을 일본보다 상위로 올려놓았다.

또한 G20에 들어가 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동계올림픽 유치,

UAE에 원전 수출, 녹색기후기금 유치, 4대강 사업으로 해마다 여러 개의 태풍을

얻어맞고도 큰 피해 없이 홍수· 가뭄을 해결하게 하였다.


'박근혜'는 공무원 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을 시작하였으나 문재인 정권이 어렵게

만든 개혁을 다 무산 시키고 있다.

또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F-35 스텔스전투기 도입을 결정하여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하여 게임체인저(game changer) 기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최순실 등

국정농단 시비에 말려 탄핵을 당해 감옥에 들어갔다.


10월 9일 광화문 시위에 나갔다.

어느 연사인지 시민인지 '문재인이 2년 동안 제대로 한 일 있으면 하나만 알려 달라'

열변을 토하는 소리가 광화문 광장에 찌렁찌렁 울려 퍼졌다.


적폐청산 명분으로 치욕을 받은 이재수 3성(三星) 장군과 검사 등 4명이 자살하고

조양훈 회장 등 1명이 죽었으며,

전직 대통령 두 명을 다 감옥에 집어넣은 것도 모자라 사법적폐라며 전 대법원장도

감옥에 처넣었다.


이들에게 합계 100년이 넘는 징역형을 때리고, 전(前) 정권 인사에 대하여 온갖 사람 사냥,

3.1운동 기념사에서 빨갱이 타령, 21세기에 배 12척과 죽창가 타령, 희대의 위선자 조국을

법무장관에 임명해 66일 동안 전 국민을 우습게 만든 거도 부족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내로남불을 만들었다.


북한의 김정은 대변인 소리를 들으며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도 웃는다는 모욕을

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한·미훈련 폐지. 재앙(災殃)이 된 탈 원전, 해괴한 소득 주도성장으로 경제는 망가져

1%대로 추락하였고, 수십조 원으로 세금 선심, 공공 개혁 역주행, 폭력의 대명사인

민노총이 나라의 주인 행사를 하고, 국가채무는 급증하고, 그동안 쌓아온 의료기금 등

각종 기금을 고갈시키고, 사노맹 활동을 했던 사회주의자를 법무장관에 기용해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30-40대 일자리는 줄고 노인 알바만 늘어나는데 고용지표가 좋아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54조 일자리 예산은 하늘로 증발이 되고, 태양광 마피아가 좀비가 되어 나라

세금을 제 돈처럼 마구 파먹는 나라, 이게 나라인가, 이것도 나라인가를 묻고 싶다. 


최근 공직사회에서는 보수· 진보를 따지기보다 충신과 간신을 따진다고 한다.

현대의 간신(奸臣) 기준은 무엇일까.

자신의 사적인 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고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인 지위를 오용· 남용· 악용하는 자야말로 현대의 간신이다.


나라의 경제를 망하게 하고, 나라의 곳간을 비게 만들고,

친구 나라는 사라지고, 북한에게 망신을 당하게 하는 공직자.

입으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해대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물(妖物),

국민의 분열을 만드는 사람들이야말로 대간신(大奸臣)이라는 생각이 든다.


NLL지역 함박도에 북한이 군사시설을 확충하고 무장을 강화하였는데

계속 별일 아니라고 평가절하 하는 정경두 국방장관이 충신인가,

아님 함박도를 초토화 시킬 계획을 세웠다는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이 간신일까,

기준을 국민은 안다.


하도 답답하고 억울해 광화문 집회에 두 번이나 나갔는데 내가 조국이 하나 파면시키자고

나간 건 아니다.

조국은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나를 포함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인 건 위태로운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이다.

반성 없는 오만한 사회주의 추종자가 나라를 뒤흔들고 법을 앞세워 민주자유를 유린하는 걸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금방 자르지 못하다니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소설 삼국지에서나 나오는

말이고 현실세계에선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자가가 하는 건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 더 없이 훌륭하고 더 없이 선하다며,

남이 하는 건 잘못이라고 꾸짖던 희대의 위선자에 질려 자유와 저항공간이 된 광화문에

나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누려오던 한 줌 자유라도 지키기 위해, 자유를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사회주의자에게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거창한 명분도 아니다.

단지 위선자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광화문으로 또 나간 거다.

  

계속 나가 지금 대통령의 눈이 밝아져 간신들을 쳐내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나의 지나친 욕심이겠지.


12;45

인생길에는 수많은 깨달음이 있다.

스치는 바람에도 빨갛게 익어가는 단풍에도 분명 깨달음이 있다.

또한 세상 모든 만물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지금 저항하는 게 이 시대의 내가 만난 인연의 깨달음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여기 전라도 장성까지 오는 동안 스쳤던 산들이 많이 망가졌다.

어느 산은 태양광 시설로 울창하던 삼림(森林)이 사라지고 흉물만 남았는데

태양광 비리는 얼마나 진행이 되었을까.

문득 벤처와 바다이야기 등 정권과 결탁되었던 비리가 생각난다.


정권이 바뀌면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을 명분으로 세금을 마구 빼먹은 태양광 마피아

세력이 얼마나 많이 구속될 것인가.

나라는 재정으로, 한전은 적자로, 산은 태양광 패널로 골병 들어간다.


요즘 하는 짓거리가 제나라 시대 선왕(宣王)이 피리 합주를 좋아해 반드시 3백 명이

함께 불도록 하였다는데, 가짜 악사로 머릿수를 채우고 능력이 없는 자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는 남우충수(濫竽充數)의 우(愚)를 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국민의 마음을 읽는 정치가 최선의 정치요, 국민과 다투는 정치는 최악이라 했다.

위정자가 마음을 고요히 하고 깊이 새겨야할 말이다.


이순신은 배가 12척만 남았을 때, 배만 가지고 싸우라고 부하에게 지시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승리하기 위해 최적의 작전을 짜고 실행한 사람이다.

최근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치르며 죽창가와 이순신 장군 배 12척을 거론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다.



12;50

방장산과 입암산 사이에 있는 갈령, 입암산과 내장산 사이의 장성새재와 순창새재는

옛날 호남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그 길목과 함께 입암산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기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하여

입암산성(사적 제384호)을 축조하였는데, 후백제 견훤이 요새로 이용했고,

1256년 고려 고종 때는 6차로 침입한 몽고와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높이 3m, 길이 5.2km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돌을 정갈하게 쌓았고, 총면적은

1,069,255㎡라니 약 32만평이 조금 넘는다.


원래 포곡(苞穀)이란 옥수수 알을 말하는데, 언제부터인가 包谷式으로 바뀌었다.

산성은 산곡대기를 평평하게 다듬고 산기슭을 수직으로 깎아내린 테뫼식과 골짜기를

둘러싼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식이 있다.

지난번 백두산 여행 중 스쳤던 오녀산성이 테뫼식이요, 들렸던 환도산성은 포곡식이다.


남한의 포곡식 산성으로는 증평 도안의 이성산성, 하남의 이성산성, 백제의 도성이었던

부여의 부소산성, 칠곡의 가산산성, 고성의 거류산성 등이 있다.


1593년 선조 때 현감 이귀가 포와 식랑창고를 쌓았고 효종 4년인 1653년 지금처럼

성벽의 폭과 둘레를 늘렸다고 기록이 남았는데, 

임진왜란 때는 관군과 승병, 의병들이 힘을 합쳐 왜장 소서행장과 맞서 싸운 곳으로

이 석문을 거쳐야 남문(南門)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 내가 도착한 입암성 남문은 산의 지형상 가장 낮은 지대로 산성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이다.


성벽은 안팎에서 돌을 쌓고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어 축조하였으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 점판암 등을 사용하였다.


입암산은 참 편안한 산이다.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거친 길이 없고, 대체적으로 난이도(難易度)가 평범한 산이다.


안수산 같이 숨은 절벽도 없고, 덕유산같이 장쾌한 능선도 없다.

산성안쪽의 산길을 걸으며 붉게 물드는 산릉을 바라보고 나 스스로 숨은 명산이라고

평(評)을 한다.


호남 백성들은 시련을 많이 받았다.

몽골침략 때는 이곳에 성을 쌓아 항전을 하였으며,

이순신 장군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 판단, 

호남의 수군을 기반으로 왜군을 격파하였고, 동학란 때는 수많은 호남사람이 살육을 당했다.


동학란 때 전국적으로 약 30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하는데 그중 전라도 사람이 20만 명이나

죽임을 당했다고 하며,

전봉준의 고향인 고창에서는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70여 집안 가운데 62개 집안의 문중이

해체되는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13;10

팥배나무 빨간 열매를 보며 편안한 고원을 걷는다.

정상의 높이는 불과 641m에 불과하지만 1500m가 넘는 고지대의 고원을 걷는 기분이 든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보니 일행은 멀치감치 사라졌다.

호젓한 산길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이곳 산성에서 민초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는데 지금 위정자의 모습과 대비가 된다.


한때 30호 115명이 살았다는 성내마을 터를 걷는다.


집터는 페허로 변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문득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한데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는 길재의 옛시조가 생각난다.


길숲에 핀 '이질풀'이 바람에 흔들린다.

봄꽃은 생동감, 여름꽃이 화려함이라면 곧 스러질 가을꽃은 어딘가 모르게 처연(悽然)하다.


한동안 위선과 거짓에 대한 분노로 마음을 상했다.

정민교수는 세설신어에서 분노를 잠재우는 방법으로 칠극(七克) 중 식분(熄忿)이라 했다.

이질풀을 바라보며 마음이 고요해지니 굳이 참고 또 참는 습인책노(習忍責怒)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대부분의 산성은 식수가 풍부한 계곡을 중앙에 두고 양쪽 산릉에 성을 쌓아 방어막을

쳤는데 해자(저수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을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샘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문득 '성문앞 우물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꿈을 꾸었네.♬♪♩~'라는

가곡 '보리수'가 생각난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엔 물이 많고 좋아야한다.

수많은 민초와 항전을 하던 병사를 먹여살린 맑은 물이 발걸음을 잡으며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고 한다. 


집터 남겨진 돌절구에 세월이 쌓였다.

이곳 일원은 공자의 유교(儒敎)를 다시 밝힌다는 갱정유도(更正儒道)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이 광복 전까지 8가구가 부락을 이뤄 살았다고 전해진다.


산은 쉼표이다.

풀숲에 핀 한 송이 쑥부쟁이를 바라보니 마음이 한가롭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자 쑥부쟁이 옆에 슬그머니 앉는다.


풍경의 깊이는 산의 높이와 관계가 없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위치는 해발 500m에 불과하지만 1,500m가 넘는 고산의 고요함과

묵직한 공기가 깔렸다.


물이 습지의 이곳저곳에서 나오니 병사들이 물 걱정은 없었겠다.

집터를 뒤로 하고 물가로 다가가 가재를 찾는다.


일행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산이 좋이 늘 산으로 나돈 지 10여 년, 누군가의 추억과 피와 땀이 깃든 곳에서

민초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전봉준과 입암산성의 이야기 안내판을 읽으려 발걸음을 멈춘다.


손무는 손자병법 제3편에서 모공(謨攻)을 말하는데,

전쟁에서 최상의 전법은 적을 모략으로 깨뜨리는 벌모(伐謨)이며,

그 다음은 적의 외교를 끊어놓는 벌교(伐交)이고,

다음은 적의 군대를 치는 벌병(伐兵)이요,

최하의 방법으로 적의 성(城)을 공격하는 공성(攻城)이라 했다.


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많은 병사가 희생되었겠지.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입암산성과 전봉준 장군'의 안내판을 읽으며 잠시

고개 숙여 영령을 위로한다.


현역 육군대장을 공관병 갑질로 모함하여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헌병대 지하 영창에서

적국 포로와 같은 굴욕을 준 나라,

불과 2년 반 전만해도 우리 군(軍)은 세계가 인정하던 강군(强軍)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병대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박찬주 대장의 인터뷰를 보며

경악을 한다.


굴욕을 받은 박찬주 대장은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있지만 군 통수권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며, 적폐청산의 미명하에 군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불순세력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무너진 성벽의 흔적을 보며 고단했던 병사들의 노고를 떠올린다.

이 땅에 다시는 포화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하고 민초와 병사들이 두번 다시 이런 산성에

갇혀 처절한 항전을 하며 피를 흘리지 않야 하는데 걱정이 크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존재는 군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측근이다.

지금 기업과 상인, 일반서민들이 못살겠다고 난리다.

귀를 조금만 열어도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떠도 하늘을 찌르는 원성이 쉽게 들리련만

청와대에선 경제가 좋고 안보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억지를 부린다.


지금 힘든 건 통계의 착시와 외부환경 탓이요, 야당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아 나라 망하게

생겼다는 핑계를 대니 이는 권력자의 책임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충언 한마디 하지 못하는

간신들의 농간인가.

허물어져가는 해자와 성벽을 바라보며 다시 충신과 간신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이 길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세상사람들이 모르고 나만 볼 수 있는 유토피아가 나오려나. 


끊기지 않고 이어진 호젓한 산길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나무 사이로 이어진 산길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딱딱했던 마음이 금세 동심으로 돌아간다.


13;30

분지의 안쪽을 30여 분 걷다가 북문을 만났다.

돌로 된 계단을 오르다가 쑥부쟁이도 만나고 구절초도 만난다.


지도상에선 이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석문이 나온다고 했다.


석문을 통과하자 정면으로 정상인 갓바위가 나타나 서둘러 포커스(focus)를 맞춘다.


45도 경사에 가까운 나무계단을 올랐더니 숨이 가빠 초점은 팥배나무 열매와 맞춰지고

정상은 흐릿하게 아웃포커스(out of focus)가 되었다.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거북바위를 만난다.

거북바위는 입암산성의 수호신이라는데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르며 한숨 몰아쉬고,

다시 올라 일행의 무사산행을 빌며 거북바위에 목례를 보낸다.



정상인 입암(笠岩) 즉 '갓바위'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풀로 만든 갓(草笠)과 닮았다고 해서 갓바위라고 하는데,

혹자는 잔뜩 발기된 남근(男根)을 닮았다고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다.


14;00

10m 정도의 철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20m정도의 철 계단과 30m길이의 철 계단을 올라

입암산 정상(641m)에 올라섰다.


나는 지금 비행기를 탔다.

마치 비행기 창문으로 보는 듯한 산릉은 나를 흥분하게 한다.


박무 속에 입암면의 산골짜기와 들판에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철길이 실낫처럼 직선으로

그어졌다.


지도상으로 동쪽으로 망해봉, 연지봉, 신선봉을 가진 내장산이고,

남동으로는 2011. 2. 23일 올랐던 백암산 상왕봉과 사자봉이요,

서쪽으로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산이 2011. 2. 24일 올랐던 방장산이라고 한다.


방장산에서 도적놈한테 잡혀간 여인이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자 애통하며 애절하게

노래한 '방등산가'가 생각난다. 

방등산가는 '하늘 끝 땅 끝 어디 사방을 둘러봐도~~방장산 오거들랑 중턱에 술 한잔

따라주게나'로 끝난다.


은선골 쪽으로는 시루봉, 장자봉 능선이요 병풍산이라는데 초행이라 분간을 할 수 없다.


오늘 묵을 방장산을 기준으로 파노라마로 찍는데 박무(薄霧)로 선명하지 않다.


정상 데크에 앉은 많은 산객들은 정상에 올랐다는 행복함으로 가득찼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만이 누리는 환희의 웃음소리가 바로 천상의 소리구나.


내장산 6봉, 백암산의 3봉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을 이룬 입암산은 내장산·백암산

못지않은 묘한 매력을 가졌다. 


7~9월에 피는 '고들빼기'가 10월 하순 입암산 정상에 피었으니 여긴 상당히 따뜻한

남쪽이다.


이번 입암산 산행 중 마지막 만나는 꽃으로 맛이 써서 고채(苦菜)로도 불리는 고들빼기가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사직제, 기우제를 지내던 정상,

봉수대로도 사용하였으며 제석암 또는 제석봉이라는 별칭도 가진 입암산 정상에 다시 선다.


각양각색의 기암괴석, 작은 소(沼)와 울울창창한 숲으로 천연의 신비경을 감춘 입암산을

오르며 참 아름다운 산이라고 했다.

하늘빛은 여전히 우울하고 금세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분위기다.


하산방향을 남쪽의 시루봉 방면으로 정하고 가파른 길을 내려선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바위를 올려보다가 아래를 보니 깊고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혹시라도 기상이 악화되면 대피장소로도 쓸 수 있겠으며 이 산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동면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보인다.



1km를 내려오니 3.8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국립공원이라 이정표와 안내도는 비교적 정확하고 분명하다.


입암산과 백암산엔 아기단풍, 당단풍, 털참단풍, 네군도단풍, 신나무, 복자기, 고로쇠 등

13여 종의 단풍나무가 있고 '내장단풍'이라는 고유의 수종도 있다는데 때를 맞추지

못한 탓인지 많은 단풍을 만나지 못해 서운하다.


15;22

주차장까지 30여 분이면 도착한다.

하산의 여유로움 속에 화제가 경제로 돌아간다.

우리가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 오늘 같은 선진국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피땀을 흘리고 뼈품을 팔았던가.


지금의 권력자들은 국민의 피땀으로 일으킨 대한민국의 경제를 무너뜨리고,

태양광 등으로 국민의 세금을 빼먹는 것도 부족해, 온갖 인간 기생충이 일을 하지 않고

국민의 등골을 빼먹게 한다.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빠진 나라,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경제는 어렵고 국민은 분열되고

정권은 신뢰를 잃었다.

우방국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남 탓만 하고 자기편만 챙기는 고집불통의 대통령을 둔 국민은 퇴로가 없다.


단톡방에선 서로 말조심을 해야 하고,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 지역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어느 친구는 친구와 쪼개져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6;00

주차장을 출발점으로 산성골~남문~북문~정상 갓바위~은선골~산성골~주차장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다.


처음 전남대 수련원으로 잘못 들어갔다가 제대로 산행을 했으니 약 11km에 4시간 정도

걸린 건가.


어딘가에 있을 행복을 찾아 떠난 길,

산에서 단풍을 많이 보지 못하고 평범한 주차장에서 불타는 단풍을 보며 행복을 찾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땅바닥에도 단풍잎이 떨어져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을은 비움의 계절이다.

비우면 또 채워질 거고, 나도 비우면 비로소 내가 보이겠지.


18;00

빗방울이 떨어진다.

일기예보에는 비소식이 없었지만 나는 비가 올 줄 알았다.


새벽 여명이 밝아올 때 아침노을이 지면 낮에 아무리 맑았어도 그날 중으로 비가 올 확률이

높다.

오늘 새벽에도 여명 빛이 유난히 붉어 비가 오리라 예상을 했고,

자연은 그 법칙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란 완벽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기에

술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련다.


                                  2019.  10.  23. 입암산 산행을 끝내고 방장산 휴양림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