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5. 08;00
어디론가 무한질주 하는 차량들이 안개 자욱한 고속도로에서 굉음을 내며 사라지고
길게 쭉 뻗은 고속도로를 덮은 안개가 질주하는 차량에 놀라 양옆으로 갈라진다.
차들은 안개 속에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산 능선도 안개가 지웠다가 다시
그려내기도 한다.
산봉우리엔 가을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고, 황금들판엔 태풍의 영향으로
여기저기 벼가 쓰러졌는데 인적이 끊어졌다.
황장산을 향해 가는 길가 과수원에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시골집 과수원에 열렸던 홍옥, 국광, 골든 데리셔스 등의 사과가 생각나게 하는 길이다.
문경에 접어들며 개 이빨 같이 날카로운 산봉우리와 능선이 보인다.
저 산이 황장산인가 오르려면 진땀깨나 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의외로
산세가 순해 보인다.
김천 쪽의 황악산(1111m)을 여기 황장산과 혼동을 한 거다.
황장산 출발지인 문경 동로면 안생달은 마트가 없는 오지라 어렵게 물을 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산행채비를 갖춘다.
11;07
창고 앞에서 만난 순박한 아낙네가 산길에 대해 안내를 해준다.
짐을 줄이고 산행 준비를 하면서도 편안한 산세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황장산,
조금 전 기사 한 사람만 탄 마을버스가 돌아가자 안생달 동네는 돌아다니는 사람과
차량이 없어 조용하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강산에 이방인인 우리만 덩그러니 길가에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천왕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皇廷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작성(鵲城)과 봉산(封山)의 표석이 있는 산이라 울창한 계곡과 암릉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 성터와 표석을 만날지 모르겠다.
황장목(黃腸木)이 많아 황장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조선시대 1680년 숙종은 근처의 대미산(大美山 1115m)을 주령으로 이 일대를 봉산(封山)
으로 지정하였다.
봉산이란 나라에서 궁전, 임금의 관인 재궁(梓宮), 선박 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하여
국가에서 직접 나무를 심고 관리와 보호를 하는 산이다.
문경 문화관광 자료에는 '특히 이 산에서 생산되는 황장목이 목재의 균열이 적고 단단해
임금의 관이나 대궐을 만드는데 많이 쓰였으며 대원군이 이 산의 황장목으로 경복궁을
지었다'고 기록되었다.
현재고도가 얼마나 될까,
Gps 수치상으로 531m이니 500m 정도만 고도를 올리면 되겠다.
원래 문경과 이곳에 가까운 점촌엔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석탄광산이 많았다.
지금도 석탄광산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갱도는 와인동굴이 되었고
주민들은 오미자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월악산 국립공원 지역이라 이정표가 분명하다.
우리가 산에 오를 때 이정표가 없으면 총 몇 km를 걸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정표 앞에서 걸어야 하는 거리를 확인하며 에너지 소모량을 짐작해본다.
주차를 할 때 만난 동네 아낙은 이 방향으로 오르면 계단이 많지만 정상까지 거리가 다소
짧고, 묏등바위 방향으로 내려오면 원점회귀 산행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생달이라는 마을 이름이 재미있다.
산(山)과 달(月)만 보이는 오지라 '산달'로 불리다가 '생달'로 변했다는데,
다른 자료에선 '이곳 계곡에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났다'고 하여
생달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암튼 이름이 특이해 기억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겠다.
문경에서 생달리까지 들어오는 길가엔 사과나무 과수원이 즐비하였는데, 막상 생달리로
들어오니 이곳은 '오미자' 천국이다.
오미자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신맛, 단맛, 매운맛, 쓴맛, 짠맛의 5가지 맛이 모두 섞여있다 하여 오미자(五味子)라 하는데,
나무나 풀의 이름에 아들 자(子)가 붙으면 열매나 씨앗을 약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며,
대표적인 약용으로 구기자, 복분자, 오미자 등이 있다.
주인이 없어 바구니에 담긴 오미자 맛을 보지 못한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몸이 약한 부분을 보(補)하며, 보는 것만으로 눈을 밝고 맑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몇 알만이라도 맛을 보면 신장을 덥혀줘 양기를 세게 해줄 텐데,
남자의 정(精)을 돕고 음경을 커지게 하며 소갈증(당뇨)을 치료해주고, 술독(酒毒)을
풀어 준다는 오미자의 맛을 보지 못하고 아쉽지만 그냥 스쳐 지나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는 '소나무'가 꼽힌다.
몇 년 전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 결과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는 46%가 소나무로 답이
나왔고, 2위는 8%에 그친 은행나무로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산을 마주할 때 가장 눈에 띄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이기에
우리의 인생에서 소나무와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소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에서 어머니가 몸조리를 하고,
새 생명 탄생을 알리고 부정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는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둘렀다.
아기들이 자라면서 소나무 숲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땔감이 되어 음식을 만들고, 보온이 되고,
선비는 송연묵(松煙墨)을 갈은 먹물을 붓에 묻혀 일필휘지(一筆揮之)를 날리고,
한 세상살이가 끝나면 소나무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땅속에 묻힌다.
그래도 소나무와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도래솔로 무덤의 주위를 둘러치면 비로소 소나무와 함께 영겁(永劫)의 시간을 갖는 거다.
11;20
철망 옆으로 산길이 나있다.
이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풍경이 나를 맞을까.
촐랑거리는 물소리가 나를 반가워할까,
멈춘 풍경이라도 산세가 푸근하니 괜히 활기가 생긴다.
며칠간 하루 2만보 이상을 걸었더니 무릎이 피곤해 보호대를 차니 조금 편해진다.
완만한 숲길을 따라 오른다.
541m에서 출발해 어느새 723m까지 고도를 올렸다.
아직까지는 황장산(黃腸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소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고
참나무 등 활엽수가 활개를 친다.
11;44
이정표는 500m 간격으로 나오고 숲은 적막강산이다.
바람소리도 없고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흔한 귀뚜라미 등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묘하게 모든 소리가 실종되었으니 내 귀가 잘못된 걸까.
인적이 없는 산속,
까마귀라도 까악 거리면 반가울 텐데, 숲의 초록이 서서히 바래간다.
나뭇잎은 쓸쓸한 무늬를 띠기 시작하고 나무들은 휴식을 위한 단풍 되기를 기다리는
느낌이 든다.
산길이 예사롭지 않다.
계속되는 너덜지대에서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래도 대구 비슬산(1083m)의 '암괴류'나 정선 노추산(1322m)의 '너덜겅'에 비하면
약과겠지라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산에서는 원하는 등산로를 택해 걸을 수 있고 난이도 조절도 가능하다.
그러나 황장산에선 오로지 외길이라 선택의 자유가 없어 그대로 돌파를 한다.
너무나 조용한 산속이라,
산길을 오르다가 문득 내 인생에서 남은 기대수명은 얼마가 될지 생각을 한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에서 총 몇 년을 살아갈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의 비율이 1;1이라면 나는 이미 내리막의 중간쯤이 되겠지.
산행의 난이도는 조절이 가능하지만 인생에서의 난이도는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안생달에서 1.6km를 들어오니 작은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반가워 계곡 쪽으로 접근하는데 도토리가 떨어지며 왼쪽어깨를 때린다.
조금 아프다.
20m가 넘는 높은 참나무에서 5g정도의 도토리가 떨어지면 충격을 받는 수직하중은
얼마나 될까 머릿속에서 계산을 해본다.
'개회나무'에 빨간 열매가 열렸다.
봄에는 라일락나무로 알려져 한참동안 라일락 향을 뿜었지.
수수꽃다리속의 수수꽃다리, 정향나무,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버들개회나무의
향은 다 비슷해 구분을 하기 어려워 대부분 라일락으로 통한다.
12;55
거친 산길을 2.2km 올랐다.
숨은 조금 거칠었지만 고통스런 산길은 아니었다.
백두대간 길은 여기서 막혔다.
불법종주를 막기 위해 철망을 쳐놓았다.
원래도 법을 잘 지키니 내가 철망을 넘을 이유는 없다.
조선시대엔 임금의 명(命)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황장산은 들어설 수 없는 금단(禁斷)의
산이었다.
그러다가 월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되면서 출입이 금지되었던 산이 2016년 31년 만에
개방되었으나 여기서 정상을 올라 묏등바위로 진행하는 길은 열렸고 반대쪽은
백두대간의 훼손을 막기 위해 철망으로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현 위치에서 오른쪽 철망을 우회하여 산행을 하면 불법이다.
불법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백두대간꾼들의 무수한 발걸음에 답압(踏壓)이 되어
철망 사이로 보이는 산길은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지키지 않는다 해서, 가서는 안 되는 길을 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공원 직원들의 눈을 피해서 종주를 한 모양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는 말은 와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실정법을 존중하였기에 독배(毒盃)를 들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최고 권력자 대통령,
불의를 자기가 하면 정의라고 우기는 법무장관,
무능을 유능으로 아는 사람들,
자기가 하면 자진참석, 남이 하면 강제동원이라고 우기는 집권여당 사람들,
내로남불, 문로남불, 조로남불이라는 말을 명사화 시킨 사람들이 인간세상에서
파리 떼처럼 들끓고 있다.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완전히 종주하고 싶은 마음은 등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산에서마저 비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니 마음이 괜히 우울해진다.
여기에서 300m만 오르면 정상인데 300m구간이 검정색이다.
안내판에서 길 표시가 검정색이면 매우 어려운 코스라 무조건 천천히 올라야겠지.
현재 고도 1017m,
이쯤에 풍수학자가 올라 깎아지른 절벽을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산이 높다고 다 명산(名山)이 아니다.
풍수적으로 지형이 좋으면 인물이 나오는 법이고, 인물이 나오지 않으면
명산이 아니다.
예로부터 문경은 문희경서(聞喜慶瑞)라는 말로 통한다.
즉 기쁜 소식을 듣고 상서로움을 경축한다는 말인데, 아마도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기쁜 소식에 유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백두대간 길에 섰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황장목의 대명사인 황장산 중에서도 백두대간의 중간에
서서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본다.
저 절벽 위로 올라가면 새들도 쉬었다 간다는 조령(鳥嶺)이 보이려나.
기쁜 소식과 상서로운 조짐이 일어난다는 곳,
저 계단을 오르면 무슨 기쁜 소식이 기다릴까 은근히 마음이 설렌다.
이 산은 묵언(默言)의 산이다.
고도가 해발 1000m를 이미 넘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목소리는커녕 고라니 소리도 들리지 않고 비행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따라 바람도 없다.
구름소리도 들리지 않고 들리는 건 거칠게 내뿜는 나의 숨소리뿐이다.
'쑥부쟁이'도 흔들리지 않는다.
평범한 산세지만 숲은 마치 깊은 바다속처럼 고요하다.
나는 산에 들면 항상 이런 고요를 원했다.
산에 오르며 다른 잡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바로 동적명상(動的冥想)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금단(禁斷)의 산으로 묶였던 황장산,
임금의 명에 의하여 봉산(封山)으로 굳게 닫혔던 황장산의 산기슭에 핀 쑥부쟁이가
외롭다.
지도상에 가장 험한 길로 표시된 능선에서 약간 벗어나 기암절벽을 바라본다.
솔향기 머금은 바람이 살짝 다가와 얼굴을 스친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으로 봉산이 되었던 산에서 잊어진 왕실의 기품을 실은 바람을
만나는 거다.
사진을 찍느라 친구들과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헉!
용담을 만났다.
'과남풀'과 분간하기 힘든 '용담(龍膽)'을 만난 거다.
2011년 10월 20일 거창의 금원산 정상(1353m)에서 만났던 용담을 문경의 황장산에서
만난다.
뿌리는 건위· 간질 등의 약용으로 쓰는데 맛이 얼마나 쓰면 쓸개 담(膽)자를 썼을까.
용의 쓸개로 불릴 정도로 귀한 꽃을 만났으니 기쁨이 배가 된다.
가을국화에서 구절초를 빼면 안되겠지.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등과 더불어 가을국화의 대장격인 구절초의 노란꽃술과
대비되는 꽃잎은 순백의 미(美)를 자랑한다.
이 산에 곰이 있다면 이 구절초를 100일간 먹고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겠다.
문득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으로 환생되었다는 곰(熊)과 관련된 단군신화를 떠올린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은 바로 이 구절초를 먹었다는 거다.
13;13
출발한지 두 시간만에 정상(1077m)에 도착한다.
인적 끊어진 정상의 정상석이 외롭다.
자연석으로 세워진 정상석은 정겹다.
전국의 여느 산을 가더라도 오석(烏石)으로 공동묘지의 묘비같이 세워진 황량한 정상석은
별로 정감이 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자연석으로 세운 정상석을 만나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 돌에서 나온 기(氣)가
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정상에선 사방이 조망되지 않는다.
정상은 활엽수로 둘러싸이고 편안하게 쉴 장소가 있다.
바람도 없어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기엔 아주 좋은 곳이다.
묏등바위를 거쳐 작은차갓재를 지나 안생달 코스로 하산길을 정한다.
하산길 약 3.1km로 오름길 2.5km와 합치면 6km 거리라 1,000m가 넘는 고산치곤
비교적 짧은 산행거리다.
방향으로 봐선 도락산과 신선봉 같은데 초행이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국립공원이라 이 정도에서 안내판 하나 정도는 설치가 가능할 텐데 아쉽다.
정상에서 묏등바위로 진행을 하자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황장산이라는 백두대간의 거대한 등줄기를 타기까지 짧은 길이 아니었건만 의외로
소나무가 많지 않다.
지능선이 요동을 쳐도 황장목은 잘 보이지 않고 참나무가 온 산을 장악했다.
간간이 보이는 소나무도 등 굽은 소나무이고, 하늘을 향해 거만하게 솟은 소나무는
보이지 않다가 절벽에 외롭게 선 소나무가 양팔을 벌렸다.
그래도 '공부 못하는 놈이 효자(孝子) 노릇을 하고, 합바지가 나라를 지키며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쓸모없어 보이는 굽은 소나무와 아기 소나무가 묏등바위를 지키는구나.
여기서 쓸모없음이 쓸모없지 아니하다는 해괴한 이론이 들어맞는 능선을 걸으며
잠시 생각에 젖는다.
산 넘어 또 산이 있고 능선 넘어 또 능선이 출렁거린다.
첩첩산중에서 다른 산의 출렁거림을 보며 잠시 신선이 된다.
어느 산인지 모르지만 산릉은 박무속에 꿈틀거리고 피안(彼岸)의 세계를 만든다.
지도상으로는 대미산~문수봉~차갓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인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육중한 근육을 내보이는 바위산은 도락산(964m) 신선봉으로 예측을 하지만 영 자신이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육산(肉山)은 지리산이고 골산(骨山)은 설악산이다.
저쪽 도락산이 골산이라면 지금 내가 딛고 있는 황장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전문가들은 사는 것이 외로울 땐 육산을 찾아 그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처질 때는 골산(骨山)에 올라 기(氣)를 보충하라 했다.
13;55
어젯밤 꿈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을 지켜주던 주치의도 만났다.
내 곁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만났다.
도락산을 바라보며 한동안 잊었던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움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그리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서 끝이 나는 걸까.
어쩌면 그리움이란 하염없이 기다림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흘러간 세월이 그립고 떠나간 사람이 그리움이 되어 생각난다.
그리움을 그냥 두면 후회가 쌓이고 그 다음엔 무엇이 될지 두려운 나이가 되어간다.
묏등바위의 절벽으로 붙어 아슬아슬하게 난길을 걷는다.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라 조금 긴장이 된다.
산에는 정상이 있고 여느 산이든지 높이가 1,000m가 넘는 고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조심하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사고의 개연성은 확 줄어든다.
삶은 등산 같지 않다.
은퇴 후 삶의 본질적인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억울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참고 지내는 게
백수의 삶이다.
행복은 누구나 꿈꾸는 유토피아(Utopia)다.
지금 아찔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만은 편하다.
마음이 편하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행복의 이유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성취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물리적인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냥 마음 편하게 행복을 선택하면 된다.
예전에는 이 묏등바위에 설치된 고정로프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데크를 깔아 안전해졌고, 수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중국 장가계의
잔도(棧道)를 떠올린다.
장가계 잔도는 조금 길어 많이 긴장하였지만 여긴 짧아 긴장할 틈도 없다.
스릴은 없지만 하늘과 지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1,000m가 넘는 능선의 힘을 실감한다.
황장산의 이름은 원래 작성산(鵲城山)이라 했다.
무슨 사연이 있어 까치 작(鵲)자를 썼을까.
작성산은 고려 공민왕 때 작장군(鵲將軍)이 세운 성(城)이 있어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작씨 성(性)을 처음 접한다.
서기 1361년 홍건적이 2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두 번째 고려를 침공한다.
최영 장군도 무너지고 수도인 개경까지 함락되자 공민왕은 이 근처 안동까지 피신을 했다.
고려군의 반격으로 겨우 반전을 만들지만 공민왕은 안동에서 문경 어류성으로 거처를
옮기고, 2017년 4월 27일 내가 올랐던 주홀산 대궐샘터에서 개경으로 올라갈 날만 기다렸다.
공민왕은 작장군에게 명하여 황장산에 산성을 쌓아 노국공주와 비빈, 궁녀들을 대피시켜
머물게 하고 본인은 이곳에서 16km정도 떨어진 주홀산으로 갔다.
나는 지난번 주홀산을 오르며 공민왕의 사연이 담긴 대궐샘터에서 샘물 한잔을 마셨지.
어릴적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공민왕은 몽고족 처녀인 노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그가 마음을 열자 노국공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드라마나
영화의 Tema가 되기도 했다.
처음엔 과감한 개혁으로 민심을 얻었으나 노국공주가 출산 도중 숨을 거두자
정치에 흥미를 잃게 되고, 정치를 요승(妖僧) 신돈에게 맡기는 바람에 공신(功臣),
현신(賢臣)이 참살되고, 쫓겨나기도 했으며 노국공주의 영전공사를 일으켜 백성의 원성을
샀다고 역사에서 말한다.
공민왕이 쫓겨 내려와 잠시 머물렀던 황장산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의 속삭임이
한줄기 바람에 실려 온다.
황장산은 백두대간 줄기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에서 내려와 옥돌봉~선달산~소백산을 거쳐 황장산에서 다시 주홀산~속리산으로
이어진다.
반송(盤松)이 묏등바위의 한 공간을 지킨다.
산의 기기묘묘한 형상과 서서히 단풍을 받아들이는 백두대간의 정기는 영원하겠지.
14;38
춘양목과 쌍벽을 이루는 황장목이 많아 황장봉산으로 봉했던 황장산의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문경의 황장산을 지도에서 찾다가 뜻밖에도 지리산릉에도
이름이 같은 황장산(黃獐山 942.1m)이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는 붉은 소나무를 상징하는 황장산이지만 지리산의 황장산은 노루장(獐)자를 쓴다.
따라서 지리능선의 황장산은 노루와 관련이 있고 문경의 황장산은 소나무와 관련이
있는 거다.
고도 700m까지 내려오니 개활지(開豁地)가 나온다.
사실 일반사회에선 개활지라는 말을 잘 안쓴다.
개활지란 군대에서 많이 쓰는 용어인데 '앞이 넓고 크게 트인 땅'을 말한다.
작은차갓재부터 돌이 없어 발에 푹신한 촉감을 느낀다.
내려갈수록 몸의 감각이 맑아지고 마음의 위로가 된다.
산에 숱하게 다녔어도 유감스럽게 아직 금강초롱을 만나지 못했다.
금강산 상팔담을 오를 때 금강초롱을 만났으나 당시는 카메라도 없었고, 그냥
금강초롱인가보다는 생각을 하며 무심코 지나쳤다.
지금은 금강초롱을 못 만나더라도 이런 초롱꽃만 봐도 반갑다.
거의 다 내려오니 제대로 된 물소리가 들린다.
황장산은 참 묘하다.
소리가 실종된 산으로 제목을 붙이려고 했는데 묘하게 1,000m가 넘는 황장산에 사찰이 없다.
묏등바위에서 내뿜는 기(氣)가 엄청 센 거 같은데 사찰이 없는 연유를 모르겠다.
숙종 임금의 명령으로 봉산(封山)이 되었기에 절이 없는 걸까,
나의 궁금증을 어디에서 풀어야할지 또 숙제가 생겼다.
2019. 9. 25. 황장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495 장성 입암산(笠岩山 641m) Are you happy? (0) | 2019.11.04 |
---|---|
느림의 미학 492 단양 만천하스카이워크의 오자탈주(惡紫奪朱) (0) | 2019.10.08 |
느림의 미학 489 평창 발왕산(1458m)에서 천상의 소리를 듣다. (0) | 2019.09.29 |
느림의 미학 479 파주 심학산(尋鶴山 194m)의 직장연 (0) | 2019.08.28 |
느림의 미학 469 염천(炎天)이 된 춘천 금병산 <金屛山 652m> (0) | 2019.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