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4.
방장산에서 만난 '오리방'풀을 뒤로 하고 백양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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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들어가는 길이 한가하다.
단체를 태운 대형버스들이 지나가고 1.5km의 길을 산책 겸 걸어 들어간다.
어제와 달리 하늘 빛은 전형적인 가을 하늘답게 시퍼렇다.
1982년 송파지점에서 근무할 때 모셨던 지점장이 백양사 들어가는 길이 아름다워
천하제일경이라 했다.
그 말이 기억 나 2011. 2. 23일 이 길을 걸어 백암산에 올랐다.
조선팔경이라는 백양사와 백암산엘 8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변한 모습일까,
아니면 예전 그 모습으로 나를 반길까 마음이 설렌다.
대형주차장을 지나며 호젓하던 분위기는 소란으로 바뀐다.
벚나무가 갈참나무와 함께 신록을 뽐내는 봄경치가 아름다워 시인들은 춘백양(春白羊)이라
했다.
앙증맞은 아기단풍이 아직 물들지 않았어도 원색복장의 탐방객들로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700살이 넘은 갈참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진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야말로 가을의 소리가 아닌가.
백양사 들어가는 길은 갈참나무가 아름답다.
월정사나 내소사 길은 전나무가 일품인데, 여기 백양사 길은 600~700백년 이상 된
갈참나무가 천하제일경을 만든다.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와 함께 갈참나무는 참나무 6형제를
이룬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 틈이 생겼다.
백학봉 아래 자락에 자리 잡은 쌍계루가 연못에 살짝 반영을 만들었다.
학바위가 연못에 비친 모습까지 비쳐야 제대로 된 조선팔경을 볼 수가 있는데
인파에 떼밀려 보지를 못하고 쌍계루의 반영(反影)만으로 만족을 해야겠지.
사드(THAAD) 문제로 중국인 단체관광이 끊겼다는데, 쌍계루 주변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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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경내로 들어가며 마침 스님 한분이 나오기에 합장을 하고 '고불매'의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2011. 2. 23일 이곳엘 들렸다가 고불매를 촬영하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비록 청초한 매화(梅花)의 암향(暗香)을 맡지는 못하지만, 고불매의 자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천연기념물 제486호인 백양사 고불매앞에 선다.
350살이 넘은 고불매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예전에 홍매와 백매 두 그루를 심었는데 백매는 죽었고 지금 남은 나무는 홍매이다.
탐매(探梅)를 하는 사람들은 호남 5매(五梅)로 선암사 무우전매, 전남대학교 대명매,
담양의 계당매, 소록도 수양매와 함께 이곳 백양사 고불매를 꼽기도 하지만,
이곳 고불매는 천연기념물 제384호인 오죽헌의 율곡매, 제485호 화엄사 백매, 제488호
선암매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매화로 꼽힌다.
5.3m의 키와 줄기 둘레는 1.5m이며 수관(樹冠)폭은 5.7~6.3m라고 하는데
앞으로도 수백년 이상 고목의 품위와 기품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며
그동안 만났던 경복궁의 고매, 선암사의 무우전매, 연화사의 고매를 떠올린다.
서기 632년 여환이 창건한 백양사,
1500년이 다돼가는 백양사 대웅전 뒤로 보이는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백학봉의
백암(白巖)이 아찔하다.
수백수천개의 계단을 올라 저 백학봉(651m)으로 오르고 도집봉을 거쳐 정상인
상왕봉(741m)엘 올랐다가 원점회귀를 하며 2월달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계절의
맛을 다 보게 한 백암산을 올려다보며 8년 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날의 기록을 보니 영상 20도라 2월의 기온치곤 무척 더웠다는 기억이 난다.
저 거대한 암벽의 중간에 약사암(藥師庵)이 있다.
흰 양이 나타나 설법을 듣고 사람으로 환생하였다 하여 백양사(白羊寺)가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맑고 차갑던 영천샘(靈泉)의 감로수를 떠올린다.
백학봉 상공에 뜬 헬기가 하버링(hovering)을 한다.
누군가 다쳤을까, 저 위치엔 계단이 있어 비교적 안전한데 제자리 비행을 하는
헬기를 보며 괜히 걱정이 된다.
효자나무로 불리는 이팝나무는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언제든지 다시 오고싶은 곳,
물이 혼탁하여 백학봉의 반영을 만나지 못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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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졸작이지만 경치와 꽃을 보면 시심(詩心)이 일어났는데 요즘 통 생기지 않는다.
위선을 정직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불공평을 공평이라고 우기는 인간들로 사람이
싫어진 탓인지 시심도 평상심(平常心)도 다 잃은 모양이다.
그래도 마음으로 쓰려고 노력해야겠다며 백양사 일주문을 벗어난다.
2019. 10. 24. 백양사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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