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9.
어제 새벽 동편하늘은 핏빛 아침노을로 물들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아직 10월이 남았고 가을은 더 있으려 하는데 촉촉히 내리는 비가 겨울을 재촉한다.
어느 여행 작가가 TV에서 말한다.
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가야하고,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도 해야 된다며 해맑은 웃음을 보낸다.
여행이란 참 묘한 맛을 준다.
특히 기차를 타면 설렘이 듬뿍 실린 울림이 온다.
칙칙폭폭♪♬ 기적소리도, 덜커덕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차는 미끄러지듯
왕십리역에 도착하고 열린 문으로 꾸역꾸역 승객들을 토해낸다.
하릴없이 기다리던 열차를 타니 승객들로 빼곡했던 열차 안은 한가해졌다.
옥수역부터는 한강물을 따라 내려간다.
왕십리, 옥수, 서빙고, 이촌동 예전엔 참 익숙한 지명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내 뇌리 속에서 사라졌다.
한강물은 출렁거리다 스며든 태양빛에 윤슬이 되어 반짝이고,
수천수만의 보석이 살아 숨 쉬듯 일렁거리는 풍경을 보며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10;50
8월 파주 심학산에 이어 다시 파주지역의 감악산을 찾았다.
이러다 파주사람 되는 게 아닌가.
하늘 높이 솟구친 전파 송신탑을 가진 감악산,
감악산은 관악산, 운악산, 화악산, 개성의 송악산과 더불어 경기 5대 악산(惡山)이라
하고, 치악산, 설악산, 화악산과 더불어 4대 악산(岳山)이라고도 한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산으로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군사 요충지였던
감악산.
6.25전쟁 당시 영국군과 중공군 3개 사단이 이 산자락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영국군과
중공군이 거의 전멸할 정도로 치열했던 '설마리 전투'로 유명하다.
책에서만 보았던 설마리 전투 현장이었던 감악산을 이제야 찾다니 호국영령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1951. 4. 22~4. 28일 벌어진 설마리 전투,
영국군 제29여단은 4월 22일 감악산(675고지) 좌측 설마리에 글로스터(Gloster) 대대를,
중앙 전방인 장현리 일대에 퓨질리어스(Fusiliers) 대대를, 도감포 일대에 벨기에 대대를
배치하여 방어 중이었는데,
임진강의 심한 굴곡으로 병력에 비하여 방어면적이 지나치게 넓어 각 대대 및 중대가 상호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중공군 제63군이 4월 22일 임진강을 도하하여 영국군 제29여단을 공격하자 벨기에 대대가 고립되고, 퓨질리어스 대대는 후방 257고지로 철수했다가 중공군에게 피탈되었다. 글로스터 대대도 235고지로 철수를 했다가 후방으로 침투한 중공군에 의해 완전 고립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영국군 제29여단은 설마리 전투에서 1,09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글로스터 대대는 850명의 대대원 중 장교 21명과 병사 509명이 포로가 되었을 정도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처참한 결과가 나왔지만, 29여단이 적진에 고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전분투하여 감악산 일대와 도로를 3일 동안 방어하고, 중공군 제63군에 대하여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고 공격 기세를 둔화 시켜 미국 제1군단의 주력부대가 델타선으로 철수하여 서울 방어를 준비할 수 있었다. 온창일 육사 군사학과 교수 등 8명이 집필한 6·25 전쟁 중 벌어진 '60대전투'를 떠올리며 감악산 출렁다리에 오른다. 일년에 160만명이나 찾는다는 150m 길이의 무주탑 산악 현수교에 오르자 묘한 떨림이 온다. 사진을 찍는 아낙네들의 하이톤(hayton) 목소리가 허공으로 사라지고,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다리 건너 소실점(消失點)이 사라진 곳에 어떤 가을모습이 기다릴까. 연간 160만 명이나 찾는다니 매일 4천~5천 명이 되는 셈인가. 감악산 출렁다리 위에 선다. 허공에서 아래를 보는 기분은 비행기 창문으로 지상을 내려다 보는 느낌을 준다. 파주, 연천, 양주 3개 지자체가 28억 원을 들여 3년간 공사 끝에 2016년 9월 완공한 무주탑 출렁다리 위에 서서 그동안 올랐던 다른 지역의 출렁다리를 생각한다. 작년에 건넜던 200m의 소금산 출렁다리, 2010년 9월 오른 청량산의 90m 하늘다리, 남해 지리망산의 61m 출렁다리, 대둔산의 50m 구름다리, 해발 510m에 설치된 월출산 구름다리, 강천산 기암절벽에 세워진 78m 현수교를 올랐고, 이밖에도 화순 백아산에 올랐으나 강풍으로 다리에 접근하지 못했고, 진안 구봉산의 100m 구름다리 등 출렁다리를 건너며 내 사유(思惟)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범륜사가 그윽한 자태를 뽐내고 좌측엔 2층 팔각정이 자리를 잡았다. 헬리콥터가 정상부근의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굉음을 낸다. 11;20 범륜사에 도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범륜사로 사라지고 오롯이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오른쪽 산길을 향해 오른다. 1970년대 옛 절터에 재 창건한 범륜사, 천년고찰이 아니라도 백옥으로 만든 관음상이 있다는데 스쳐 지나간다. 산이 익어간다. 노랗게, 빨갛게 나뭇잎들은 제각각 다른 색으로 변해간다. 어느 나무에 매달린 단풍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떨켜층의 압력에 밀린 단풍잎은 힘없이 발밑으로 떨어진다. 세상만물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자연스럽게 쇠(衰)의 과정을 지나 멸(滅)로 가는 여정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나무는 또 다른 생(生)을 위해 깊은 겨울잠에 빠졌다가 봄이 되면 생(生)의 환희를 노래하겠지. 아직도 남은 초록 사이로 붉은 빛이 점점(點點)이 찍힌 계곡, 이 그림은 동양화의 무슨 기법으로 그린 걸까.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수묵으로 색채를 넣어 그린 몰골법(沒骨法)인가, 아니 선(線)을 쓰지 않고 점(點)을 찍어 그린 점묘화(點描畵)의 기법이라 표현하는 게 더 잘 어울리겠다. 빨간 단풍잎 하나 미끄럼 타고 머리 위로 떨어진다. 날씨 탓인지 새빨갛지 못하고 약간 색이 바랬다. 자연은 때를 귀신같이 안다. 아주 빨갛든 조금 빨갛던 그게 무슨 대수인가. 암튼 단풍잎이 빨개지던 노래지던 다 자연의 조화니 굳이 우주의 만물을 만든 신(神)인 조화옹(造化翁)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숯가마터에서 숨을 몰아쉰다. 감악산의 숯가마는 사라졌지만 내 고향 진천 백곡의 숯공장은 지금도 성업 중이다. 오늘 왕십리역에서 국철로 환승을 하자 기차는 옥수역부터 한강을 끼고 달린다. 승용차로 강북강변도로를 달리며 느끼지 못했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튀어나왔지. 한강과 옥수동, 금호동 꼭대기를 보며 50년 전으로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한 달동네, 1967년 서울에 유학을 와 군대를 갈 때까지 자취생활을 하던 곳이다. 금호동에서 5만 원짜리 전세방, 기름을 먹인 루핑(roofing)지붕으로 비가 오면 방의 여기저기에 빗물받이 그릇을 펼쳐 놓아야했던 판잣집, 울타리는 엉성해 사생활이 다 엿보이고, 연탄을 지고 오르고, 물지게를 져야했던 금호동 산마루를 보며 참 오랜만에 추억에 젖는 호사를 누렸다. 이 순간에도 나는 그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때 그 사람들, 그 친구들 일부는 연락이 되지만 잊어진 그리운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5대 악산(惡山)의 명성답게 산길의 너덜은 그치지 않는다. 노추산의 너덜, 비슬산의 너덜보다 긴 너덜길, 자칫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민폐를 끼질 수 있기에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12;35 등산객이 확 줄어들었다. 이젠 우리뿐으로 조용하고 운치 있는 단풍숲길을 호젓하게 오른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르면 멀리 높이 올라갈 수가 있기에 더 천천히 오른다. 산길을 오르며 귀를 기울인다. 사람에겐 육감(六感)이 있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칠감(七感)도 있다고 한다. 혹시 빨간 열매가 있을까 두리번거려도 산삼이 내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코스에서 마지막 나오는 깔딱고개를 오르면 오른쪽으로 장군봉이 나오고 왼쪽으로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이런 악산을 힘들여 오르면 신령스런 힘이 작용하는 느낌을 받는다. 옛날 치악산의 지루한 너덜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진급을 하였기에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고갯마루에서 분명 감악산의 정령(精靈)이 나를 기다리겠지. 12;58 정상까지 12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갑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언제부터인지 산에 오르면 산이 좋았고, 책을 보면 책이 좋았다. 술을 보면 술을 마시고 싶었고, 막걸리를 보면 갈증을 푸는 음료수로 생각하여 입맛을 다시며 마셨고, 가까운 사람을 보면 얼굴 보는 게 좋았다. 삶의 낙(樂), 즉 삶의 즐거움을 주변에서 찾은 거다. 어쩌면 자연스런 황혼의 생존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날 위한, 내가 원하고 내가 찾아서 하는 행위에서 얻는 즐거움은 내 삶을 버터낼 활력을 가져다준다. 특히 땀 흘려 산에 오르다가 이런 고갯마루에 도착하고 다시 정상에 오르는 길이 보이면 내 가슴은 소년의 첫사랑같이 퐁당퐁당 뛴다. 장군봉의 거대한 암벽을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한다. 정상에 오르면 지금까지 느꼈던 즐거움이 무디어지려나, 즐거움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일생의 과제니까 그냥 묵언(默言)으로 올라야겠다. 거대한 바위절벽 위에 선다. 紺岳(감색 紺자, 큰산 岳)을 이름으로 가진 감악산, 생각보다 산세가 약한데, 어떻게 치악산, 설악산, 화악산과 더불어 4대 악산(岳山)이라는 멋진 이름을 얻었을까. 자료에 의하면 바위 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올라오며 바위다운 바위는 처음 보니 조금 아리송하다. 겨우 한번 올라오고 옛 선인들의 지혜를 내가 어떻게 평(評)을 할 수 있을까. 요즘 대통령을 욕하더니 욕을 하면서 나도 그 인간을 닮아가고 또한 오만방자한 인간이 돼가는 모양이다. 13;07 감악산 정상(675m)은 운동장처럼 넓다. 축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배구장 서너 개의 넓이는 되겠다. 군용시설인지 거대한 송신탑으로 북쪽의 조망이 완전 막혔고 사방의 조망이 시원치 않다. 감악산비(紺岳山碑)가 외롭다. 일명 당나라 장수 설인귀비(薛仁貴碑)라고도 하고, 진흥왕 순수비로도 추정을 한다. 글자의 완전 마모로 판독이 안 되어 몰자비, 빗돌대왕비로도 불린다는데 현대과학으로도 풀 수가 없는 건지 아쉽다. 높이 170cm, 두께 15~19cm, 너비 77~79cm 규모의 일명 몰자비를 보며 안내판을 읽는다. 고양이가 산신령이 되어 나를 지켜본다. 음식을 잘 먹었는지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주머니에 초콜릿밖에 없으니 나눠줄 수가 없어 미안한 마음을 던지고 까치봉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팔각정에 올랐다 그리고 북쪽을 향해 소리 지르고 싶다. 무심한 흰 구름은 북쪽을 향하여 내달린다. 방향으로 봐선 저곳 어디엔가 개성공단과 송악산이 보일 텐데 엷게 낀 박무(薄霧)로 보이지 않는다. 설마리 전투현장의 방향을 향하여 머나먼 이국땅에 와 대한민국을 지켜주고 산화한 영국군의 영령에게 잠시 머리 숙여 감사의 묵례(默禮)를 드린다. 까치봉의 기암괴석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이채롭다. 서쪽이면 저 방향이라 범륜사의 위치는 알겠는데 운계폭포의 위치를 모르겠다.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굴과 한국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였던 설마 계곡 입구에 영국군 참전기념비가 있다는데 오늘은 주마간산(走馬看山)을 하느라 참배를 못하겠다. 13;30 까치봉의 소나무가 거대한 바위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고 점을 찍듯이 그린 기법인 단선점준법(短線點皴法) 으로 그린 까치봉을 향해 내려간다. 가을비가 내려 까치봉의 솔향기는 더욱 그윽해지고 상큼한 바위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고려시대 운악산, 화악산, 관악산, 개성의 송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으로 지정하여 2월과 8월 국가에서 제(祭)를 지냈다는 수덕(水德)의 산 감악산 정상을 한 번 더 뒤돌아본다. 어느 학자는 신라시대 설악산, 계룡산, 팔공산, 북한산과 더불어 국가에서 소사(小祀)를 지냈다고도 한다. 그러나 신라시대 소사(小祀)를 지내던 오악(五岳)은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은 팔공산이라 기록되었다. 어느 게 맞는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아리송하다. 까치봉 경유 하산길은 계곡 오름길에 비해 데크도 잘 정비되었고 너덜도 없지만 경사가 급해 속도를 내지 못한다. 산에서 속도를 낼 필요는 없다. 가을햇볕은 며느리도 안준다는 보약 아닌가. 옛말에 봄햇볕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햇볕엔 딸을 내보낸다고 했다. 그만큼 가을햇볕은 보약이기에 천천히 하산을 한다. 14;17 초록의 계절은 이제 다 지나갔다. 노경(老境)에 이른 산골짜기의 가을풍경은 황량해진다. 가을바람에 일제히 일어나 흔들리는 홍엽과 낙엽을 보며 추파(秋波)라는 생각이 든다. 초록이 지나가고 만산에 홍엽이 지면 올곧은 겨울이 와 순백의 미를 자랑하겠지. 소나무를 기어오르느라 벌게진 담쟁이,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붉나무의 붉은 잎 사이로 단풍잎도 이에 질세라 활활 타오른다. 이 단풍들이 언제까지 버틸까, 곧 시들어 떨어질까 속은 타들어 가는데 가을은 무심히 타고 있구나.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매미와 잠자리가 떠난 자리를 귀뚜라미가 메우더니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사라졌다. 끼륵 대는 소리가 들리기에 기러기 날아올까 먼 하늘을 바라보지만 시야에는 돌비석만 들어온다. 그냥 또 한해가 지나가는 서운함에 이번엔 무엇을 정리할까 머리를 굴린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이라도 첫눈을 기대하기엔 아직 멀었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 와도 절대 불평하지 않기에 겨울이 오기를 기다린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한자락이나마 맛보고자 오른 감악산의 출렁다리가 출렁이고 오전보다 사람이 많이 줄어 다리 위는 한가하다. 14;46 6.7km의 산행이 끝나간다. 만추(晩秋)의 산행이 끝나면 간사하고 요망하고 해괴한 주장과 정책으로 나라를 망치는 대간신(大奸臣)과 간신이 들끓는 세상으로 돌아가야겠지. 단풍 든 고운 잎을 보며 곱게 나이 먹어가려면 초야에 묻혀 살면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수렴(收斂)의 계절이다. 나무는 낙엽을 내려놓으며 나 또한 마음을 내려놓고 낙목한천(落木寒天)을 기다리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2019. 10. 29. 감악산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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