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9.
오늘 안과진료라는 강동 성심병원의 문자메시지 알림이 요란하다.
안과에 다녀 온지 벌써 3개월이 되었으니 세월 참 빠르다.
은퇴 후 어느 날 독서를 하던 중 책의 중간에 뭉텅뭉텅 글자가 사라진 걸 느낀다.
하늘을 보니 까맣게 날파리가 몰려오는데 기분이 묘해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다시 보니 하루살이들이 사라졌다.
나에게 비문증(飛蚊症)이 온 걸까.
병원에선 '습성 황반변성'이 와 나쁜 혈관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황반변성이라는 병명을 처음 알게 되었고 이 병은 불치(不治)라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들으며 난감해진다.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간수치 등 모든 항목이 수치상으론 걸리는 게 하나도
없이 정상인데 눈(眼)만 사물의 형태를 구별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거다.
벽지의 곧은 선이 굽어보이기도 하지만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 공백이 생기는 건
예사고, 심지어는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기도 하며 사물의 가운데가 빈 부분으로
보이는 경우도 생겼다.
주치의는 담배를 끊은 지 30년이 넘었고, 혈압· 당뇨 등 다 정상이라도
나이가 들면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 수가 있다며 주사요법을 권한다.
이후 레이저로 '얼레이저응고술'을 세 번 받았으며,
눈동자 안쪽의 황반에 주사를 맞는데 워낙 고가라 10여 명씩 팀을 만들어
시술을 받는다.
처음엔 1회 300만 원씩이나 하던 주사시술비가 의료보험이 적용되자 20여만 원으로
줄었고, 1인당 6회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었다가 나중엔 횟수제한이 없어졌는데
'루센티스', '아바스탄' 주사요법을 11차례나 받아도 호전이 되지 않는다.
2015년 4월 주치의는 새로 나온 '아일리아'를 선택하여 12번째 시술을 권한다.
시술을 받은 후 '아일리아'가 나한테 잘 맞았는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5년째
현상유지가 되고 있다.
오늘도 눈에 산동제를 넣고 시력검사, 안압검사, 형광안저혈관 조영검사를 거쳐
빛간섭단층촬영, 인도시아닌 그린혈관조영술을 한다.
눈 ct검사결과를 본 주치의는 잘 관리되고 있다며 약 처방을 하는데 주치의가
컴퓨터로 사진을 볼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휴!
나이가 들면 약병이 늘어나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하는데,
오늘도 주사요법 없이 무사히 넘어가고 약병은 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약장(藥欌)을 정리하며 내가 몇 가지를 먹는지 세어본다.
눈에 좋다는 비타민 A, C, D와 포도씨를 원료로 한 엔테론, 오큐바이트 등 5가지가
되는데 언제 약병이 줄어들려나 참 난감하다.
에필로그)
약병이 늘지 않는 게 행복하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공감이 되어
줄지 않는 약병에서 늘지 않는 약병으로 제목을 바꿉니다.
2020. 1. 9.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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