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510 달무리

김흥만 2020. 1. 13. 21:00


2020. 1.  13.  06;00

달빛 교교(皎皎)한 새벽,

영하 4도로 떨어진 추위는 얼굴과 종아리를 썰렁하게 만든다.


갑자기 산길 가로등이 꺼진다.

타이머가 고장 났는지 산속은 암흑(暗黑) 세상으로 변하고 된서리 내린

산길이 많이 미끄러워 등산용 스틱에 의지하고 천천히 오른다.

가로등 꺼지는 시간이 매일 1분씩 빨라지면 오늘은 7시 정도에 꺼져야

정상인데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찬바람 몰아지는 새벽,

산속에 숨어사는 강아지들이 어둠이 두려워 짖어대고, 나뭇가지 앙상한

숲속을 뚫고 달빛이 내려온다.

도시의 불빛 사라진 산꼭대기에서 보름 갓 지난 만월(滿月)을 바라본다.

한기(寒氣)서린 달이 저렇게도 처연(悽然)했던가.


검은 계곡이 선명하게 보이는 달,

달이 서슬 퍼런 한기를 뿜어내도 올망졸망 뒤를 따라가는 샛별은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문득 이승에서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는 입구에 있다는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 나오던 사랑나무가 생각난다.

부여 성홍산에 위치한 높이 20m의 거대한 느티나무에 달빛 내리던 정경이

드라마에선 참 황홀했었지.


떠돌이 귀신이 저승문으로 들어가기 전 머물고 가는 델루나 호텔 사장 장만월,

스페인어인 델(del)과 라틴어인 루나(luna달)가 합쳐진 호텔사장 이름이

만월(滿月)이라 그가 저승에 들어가는 날도 꽉 찬 달빛이 매우 맑고 밝았다.


우리에게 달은 풍요와 길조를 의미하는데,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보름달을 불길함과 우울함, 흉조로 여겨 달에 대한 사상이

우리와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낮은 신(神)이 지배하고 밤은 악마가 지배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달빛을 많이 받으면 미치광이 정신병자가 되고,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도 나오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인 드라큘라

백작이나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의 전설이 생겼을까.


로마신화에서는 달의 여신을 Luna에서 비롯된 '미친 사람'이라는 뜻도 되고,

달(moon)에서 얼빠진(moony), 실성한(moonstruck)이라는 파생어도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moon)대통령은 어디에 해당될까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달 주변에 테두리가 생기고 달무리가 시작된다.

오늘 비가 오려나.

옛날부터 자연현상으로 햇무리나 달무리가 생기면 눈비가 내려 날씨가 좋지

않다 했고, 저녁노을이 생기면 다음날 날씨가 좋고 아침노을이 생기면 비가

온다고 했다.


높은 하늘의 구름은 온난 전선과 함께 저기압이 다가오는 것을 알려주는 전조라,

고리가 선명할수록 비가 올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더 빨리 온다고 하며

세 번에 두 번 정도는 12~18시간 내에 강수가 시작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달무리가 엷어지고 꺼졌던 가로등이 다시 들어왔다.

도시의 불빛이 숲속으로 다시 들어오자 나의 사유(思惟)는 끝난다.


달무리를 쓰고 있는 이 시간 제주도부터 시작한 비가 남부지방까지 올라왔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여기는 비가 아닌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2020.  1.  13.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