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5. 06;30
설날 새벽거리는 텅 비었다.
어쩌다 승용차 몇 대가 드문드문 지나가고 스치는 사람 하나 없다.
설날이라 새벽운동을 나가지 않고 늦잠을 즐기려 했다.
깼다가 다시 잠들어 꿈을 연속적으로 꿨는데 마치 현실처럼 선명했던
꿈을 떠올리며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산으로 향한다.
며칠 연속 꿈을 꾼다.
오늘은 76년 주택은행 입행시험을 치루며 '이노베이션(innovation)'에
대해 주관식 답안지를 작성하고,
이어진 꿈속에서 82년 책임자 임용시험을 보며 '대위변제와 삼자변제'에
대하여 기술(記述)하는 꿈을 꾼다.
어제는 눈사태로 인명사고가 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향하여 트래킹하는 꿈을 꿨으니 ABC트래킹을 버킷리스트에 추가하여야
할 모양이다.
로또복권 1등 당첨번호 1, 7, 37, 41~도 나타나고, 가수에 도전하고자 노래
연습을 하는 꿈이 옴니버스(omnibus) 형식으로 다른 주제와 마구 이어지며
VTR 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선명하니 호접몽(蝴蝶夢)은 아니겠다.
아마도 로또복권에 대한 열망에 이어 '보이스 퀸'과 '미스터 트로트'라는
가요프로를 밤늦게까지 봐서 그 잔영(殘影)이 머릿속에 남았던 모양이다.
07;00
간밤에 꾼 꿈을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자 제설 자재함 뒤에 있던 사료그릇이
사라졌다.
매일 누군가 강아지 사료로 빈 그릇을 채웠고, 그 사료를 유기견·유기묘나
비둘기가 쪼아 먹었는데 야생동물에 먹이 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치웠는가
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떠돌이 고양이나 강아지들을 위해 아파트의
구석진 곳에, 또는 산이나 들에서 헤매는 짐승들을 위해 적당한 곳에 먹이를
놔둔다.
물론 이 행위에 대하여 양비론(兩非論)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반대론자는 야생동물은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하며 구하지 못하면 도태를
당해야 하고, 찬성론자는 사람들이 버린 불쌍한 생명을 살아가게 도와줘야
한다는 거다.
사실 야외에 떠도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사람들에 의해 버려진 경우가 많다.
반려동물이었다가 유기동물이 되면 생존을 위해 산이나 들에서 새를 공격
하고 자기보다 먹이사슬이 하위에 속한 짐승을 잡아 허기를 면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유기동물(遺棄動物)이 공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는 사냥에 관한 제도가 엄격해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을
즐기는 트로피 헌터(Trophy Hunter)가 별로 없다.
즉 사냥을 오락처럼 즐기는 헌터들은 멸종위기종을 가리지 않고 사냥을
하는데 13살의 수사자 '세실'을 사냥해 물의를 빚은 치과의사 '월터 파머'
같이 동물을 과시용으로 전시하거나 기념품으로 삼는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는 사냥 가능지역으로 수사자 '세실'을 유인,
사냥하여 물의를 빚었는데 세실이 죽자 먹이사슬이 깨지고 수사자가
거느렸던 23마리의 사자 무리도 다른 짐승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아!
남한에선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이위우'가 호랑이를 잡은 사진이 있고,
북한에선 1924년 마지막 호랑이를 잡아 멸종되었다는데 문득 배우 최민식이
열연하던 '대호'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꽤 오래전 사냥을 좋아하는 고객이 경상도에서 고라니를 잡았으니 조퇴를
해서라도 빨리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고,
팔당댐에서 잡은 청둥오리의 피를 직접 가져와 역겹지만 소주에 부어 마신
경우도 있었다.
나에겐 머리 수술이 살생(殺生)에 관한 한 중대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다.
꽤 오랫동안 낚시를 즐기던 내가 머리 수술 후 먹이사슬을 걱정하는 등
남들같이 요란한 박애주의자는 못되더라도 작은 곤충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고,
산야(山野)에 피는 작은 야생화 한 송이도 꺾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야생 고양이나 떠돌이 개를 보면 위치를 기억했다가 빵 등을 슬그머니
놓고 오기도 하는데 사라진 사료그릇이 못내 아쉽다.
가로등이 꺼지자 숲속에 숨어사는 강아지들이 일제히 짖어대고 직박구리,
딱새들도 구슬피 운다.
한겨울 날씨가 영상 10도까지 오르는 이상 고온이 며칠째 계속된다.
새들이 봄이 온줄 알고 성급하게 짝짓기에 나선 모양이라, 봄이 아직 멀었거늘
다들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07;30
동편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별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로 반짝이다 서쪽의 별들이 북한산 너머로 내리꽂히고
태양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동쪽 별들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산수유 꽃망울이 먼저 터지려나, 목련도 겨울꽃눈이 잔뜩 부풀었는데,
어느 나무의 꽃망울이 먼저 터지는지 지켜봐야겠다.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臘月梅)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광덕산 설중 복수초도 지금쯤 노란 꽃망울이 터졌겠다.
2020. 1. 25. 설날 아침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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