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570 의암호 둘레길에서 만난 진짜 <윤슬>

김흥만 2020. 7. 25. 09:47

2020. 7. 22. 07;30

제법 굵은 작달비가 내린다.

우장(雨裝)없이 나왔다가 집으로 도로 들어가 우산을 챙기며 일기예보를

재확인하지만 비 예보는 여전히 없다.

 

확률 20%라면 비가 온다는 건가 안 온다는 건가.

우리의 통상적인 일반상식으론 확률 50% 미만일 경우 안 온다, 안 된다,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을 한다.

 

비올확률 20%의 예보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수문이 뻥 뚫린 듯 마구 쏟아지는

빗물이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

춘천에 다녀와 확인하니 이 시간대에 무려 96mm의 강수량이 기록된 거다.

 

새벽 6시에 갱신된 일기예보가 불과 한시간 후인 7시에도 맞지않으니 이젠

기상예보가 아니라 중계도 틀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산을

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기상청 직원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방역관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길바닥에 떨어진 빗물은 작은 도랑을 만들고,

시멘트가 발라지지 않은 맨땅에 고운모래와 진흙이 뒤섞인 '명개'가 생기기

시작한다.

 

10;48

춘천 공지천에 도착하여 산과 물이 함께 어우러진 강변길을 걷는다.

바람이 없어 물결이 일지 않아도 알파음이 나오려나.

 

알파음이 나오지 않으면 어떤가,

알파음이 없어도 마음에 평화를 얻으면 족하지 않겠는가.

 

조각공원을 지나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이 나온다.

 

자료에는

1968년 춘천 공지천변에 에티오피아 참전기념탑을 건립하였고,

2004년 춘천시와 아디스 아바바시 간에 자매결연을 체결하였으며

2007년 3월 춘천시민의 성금으로 참전기념관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한국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인 에티오피아는 1,200여 명의 황실근위대로 대대를

편성, 1951. 5. 6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참전을 한다.

 

기념관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며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에티오피아에 잠시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양구· 화천· 철원 지역 등에서 253회의 작전을 수행하며 121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전상자가 생길 정도로 피를 흘려준 나라인 에티오피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참전용사와 후손에게

마스크를 지원하였다는 좋은 소식을 들으며 조금이라도 더 지원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란 참 즐거운 일이다.

그것도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백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허허(虛虛)롭다는 생각이 든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마치고 황혼 인생을 살아가며 무언가 텅 비어 있는 듯한

모습은 성급하게 굴지 않고 사리 판단을 너그럽게 하는 마음의 상태인

여유(餘裕)를 떠올리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최근 어느 동창이 타계하였다는 공지가 올라왔는데 이름은 기억나지만 졸업 후

50년간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명복(冥福)을 빌면서도 살아서 나타나지 않고 죽어서 나타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여 친구들에게 살아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죽어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

 

그런말을 하면서 내가 수굿하게 살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작은 일 큰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성질을 부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순리에 따르고 겸손하게 베풀며 살아야 수굿하게 사는 건데,

요즘 들어 가끔 뾰족하고 날카로운 신경질을 부리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 종심이 가까워지니 가급적 고개를 조금 숙인 듯, 흥분을 참고 까탈지지

않아야겠지.

 

의암호 둘레길은 처음이다.

 

지도상으론 약 6.55km에 2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데,

오늘은 둘레길 종점과 시간에 관계없이 편하게 걸어야겠다.

 

11;02

수변의 데크를 걸으며 물가에 핀 연꽃을 바라보는 중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에서 요란한 재난문자 경보가 울린다.

 

이곳에 와서까지 코로나 재난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현대 사회는 정보가 넘쳐난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면 90% 이상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심지어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버스나 전철에서 내리면서도

휴대폰을 보며 내린다.

 

앞을 안 보고 폰만 들여다보고 차에서 내리고 걷는데도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신묘(神妙)한 재주를 가졌다.

 

나도 서서히 중독이 돼 가는지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빈도가

많아져간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갈 때,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스마트폰을 들고 가야

허전하지가 않고 침실에 들어갈 때도 미리 검색을 해봐야 마음이 편하다.

 

잠들기 직전까지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도 내 뇌(腦)는 건강할까,

시력도 점점 떨어지는데 최소의 것에서 본질을 찾을 수 있는 미니멀리즘

(Minimalism)이 나에게도 필요한 때가 왔는가 보다.

 

어느 현인은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라고 했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멈추라니, 삐삐나 공중전화기를 사용하던

시대에도 멈춤이 없었는데 삶을 살아가며 잠시라도 멈추긴 힘들다.

 

그렇다면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최소한의 것만 남기면 되지 않을까.

비워낼수록 보이고 더 비워내면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

 

강변길엔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채 걷는 여인,

턱에 걸쳐 '턱스크'를 한 남자도 보이고, 나도 29도 더위에 숨이 차기 시작해

마스크를 코밑으로 슬그머니 내린다.

 

지금 우리나라는 삼재팔난(三災八亂)으로 신음을 한다.

통상 삼재(三災)란 화재, 수재, 풍재를 말한다.

 

지난번엔 이천 물류창고의 화재로 38명이 사망하는 등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는데 어제도 용인 물류창고에 화재가 나 5명이 사망하였다.

 

나는 신사재(新四災)를 말하고 싶다.

첫째는 병재(病災)로 코로나 19로 인해 1만 3천 명에 육박하는 확진자와

현재 297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니 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도 병재로 혼나는

중이다.

 

둘째는 집권여당인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로 서울시장, 부산시장, 충남

지사가 성추행으로 구속되거나 자살하는 사건까지 생겼으니 성재(性災)로다.

 

셋째는 정부의 무능으로 집값이 급등하며 전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도

부족해 이들은 양도세, 취득세, 재산세 등 세금으로 압박을 한다.

국민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는 괴롭힘을 주니 가렴주구재

(茄斂誅求災)가 아닌가.

 

차라리 무능을 인정하고 시장의 수요· 공급이라는 자율기능에 맡겨두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텐데,

공급은 없이 갖은 규제로 통제를 하려 하니 눌러놓은 용수철처럼 집값이

마구 튕겨져 나가는 거다.

 

넷째는 수재(水災)다.

비가 많이 와 홍수가 난 게 아니고,

인재(人災)인지 관리 소홀인지 깔따구 애벌레라는데, 수돗물에서 벌레가

마구 나와 국민들이 수돗물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재지옥난, 재축생난, 재아귀난, 재장수천난, 재울단월난, 농맹음아난, 세지변총,

불전불후난 등의 팔난(八亂)을 거론하지 않아도 참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과 함께 북한의 병란(兵亂)으로 부터

언제나 자유로워지려나.

 

지금 밝은 미래는 보이지 않고 역경과 위급이 쓰나미로 몰려오는 암흑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랴.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거든 나를 쏘라"며 적진을 향해

돌격할 수 있는 백선엽 장군 같은 진정한 영웅이 이 땅에 다시 나올까.

 

주역에서 '천지의 마음이란 생명을 살리는 마음(生生之謂易)'이라고 했다.

하늘을 따르고 백성의 민심을 살피며 모두를 살리는 길이 있는데 권력자는

이 길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영웅이 될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가졌다.

삼재팔난을 겪으면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을 떠올리며 걷는 강변길이다.

 

11;10

천상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유치원생 아기들이 재잘거리며 알파음보다 한수 위인 천상의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날이 흐려 호수에서 반짝거리는 '윤슬'이 보이지 않아도 아기들의 모습은

호수의 '윤슬'보다 아름답고 곱다.

나는 아기 둘이 있는데 다니는 학교가 '윤슬초등학교'이다.

 

누군가 참 멋진 이름인 윤슬로 교명(校名)을 지었기에 아기들에게 '윤슬'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는데, 학교에서 '윤슬'이라는 뜻을 제대로 알고 설명한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고 자랑을 한다.

 

윤슬이란 햇빛이나 달빛이 물에 스며들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어느 아이는 길을 걸으며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여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재잘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사의 모습이다.

 

11;41

임의(任意)의 반환점에 선다.

나이가 드니 더위도 더위지만 둘레길 끝까지 종주한다는 게 조심스럽다.

 

풀숲에 붉은꽃이 보인다.

멀리서 보니 숲속에 풍접초가 핀 거 같아 다가가니 뜻밖에도 '풀협죽도'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강한 독성을 가졌다는 풀협죽도(phlox)에 포커스를

맞춘다.

< 풀협죽도 >

 

'참나리꽃'을 찍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이란 고사성어를 생각한다.

산수를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정도에 지나쳐 고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병을

이르는 말인데 참나리꽃을 찍는 내가 바로 그 짝이 난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 참나리꽃 >

 

13;18

여행에서 최고의 즐거움은 땀 흘린 후 마시는 한잔 술이다.

회비를 내려고 지갑을 꺼내보니 참 많이도 낡았다.

 

10년을 넘게 쓴 지갑이 고약한 주인 땜에 고생만 하다 내 곁을 떠날 준비를

했구나.

생물이 아닌 하나의 물건이라도 오랜 세월 내몸과 같이하며 정이 든 물건을

버릴 때는 괜히 미안해지기에 이 지갑은 좀 더 닳을 때까지 써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음악을 틀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거창한 교향곡이 아니다.

바이올린 3중주도 아니고 팬플루트 단 한 개로 연주하는 '보리수를 듣는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선율로 굻어졌다 가늘어졌다 애절하게 이어지는

보리수를 따라 나도 입으로 흥얼댄다.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선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도 괜찮다.

 

문득 보리수 아래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에서 악기를 비우니 마침내 보이는 것들, 비로소 나의 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2020. 7. 22. 의암호 둘레길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