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3 놈자(者)자 쓰는 기자(記者)

김흥만 2017. 3. 22. 11:18


2009.  6.  7.

머리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해 "간호원 아가씨"하고 부르다 깜짝 놀란다.

잔뜩 토라진 얼굴로 "앞으론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앙칼지게 말을 한다.

 

난 놈 자(者)자 쓰는 요즘의 기자(記者)가 너무 싫다.

시류와 권력에 편승해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정의감도 없이 권력에 빌붙으며,

때에 따라 이상하게 변하여 보도하고 글을 '쓰는 놈'들이니 말이다.

 

놈 자(者)자 쓰는 직업은 과학자, 성직자, 기술자, 운전자, 노동자처럼 자신을 낮추고

사회를 향해 묵묵히 한길을 걸으라는 뜻이다.

따라서 기자들의 사람(者)자를 찌를 자(刺)나 방자할 자(恣), 또는 흠 자(疵), 사람을 잘 까니

깔개 자(藉)로 바꾸면 어떨까?

 

우리네 직업엔  일 사(事), 선비 사(士), 스승 사(師), 사람 인(人), 수효 원(員), 사내 부(夫),

집 가(家) 등을 붙이는 무수한 명칭이 있다

 

일을 함으로 가치를 느끼고 긍지 및 자부심을 갖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직업은 아직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라는 정의 하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판검사(判檢事), 변호사(辯護士), 의사(醫師) 등은 소위 선망의 대상이지만,

제각기 事, 士, 師자로 다르다.

판검사는 맡은 일이 워낙 중요하니 직무 외엔 다른 것은 고려하지 말라는 뜻에서 일 사(事)자를

쓰고,

변호사는 법률의 해석 등에서 의뢰인에게 도움을 주도록 다소나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고

다소 여유롭게 살 수 있어 선비 사(士)자를 쓰며,

의사나 약사는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다룬다 해서 스승 사(師)자를 쓴다.

 

그렇다면,

간호원(員)에서 간호사(師)로 바꾸면 의사와 같은 동급의 반열이 된다?

원(員)이 붙으면 종속된 심부름꾼으로 하인 같은 신분이 되는 걸까?

결국 무수한 직업에 붙는 직명이 '사'인데, '사'자가 붙으면 신분이 높은 특정계층으로

오해하는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사'자란 즉 신분상승의 잘못된 인식이 아닌 직업 세분화에 따른 호칭일 뿐이다.

'사'가 붙은 직업은 교사, 목사, 미용사, 기사, 안마사, 약사, 요리사, 경매사, 기관사,

건축사, 기술사, 기능사, 요리사, 소방사, 보험설계사, 신용 분석사 등 엄청 많다고 하며 

그 간호사에 설명해주니 얼굴이 빨개진다.

 

사내 부(夫)를 쓰는 직업은 광부, 농부, 어부 등이 있고,

수효 원(員)을 쓰는 직업은 은행원, 공무원, 청소원, 국회의원, 회사원 등이 있으며,

난 평생을 원(員)자를 쓰는 은행원으로 살아왔으나, 원(員)자를 쓰는 콤플렉스는커녕

오히려 자부와 자긍심을 갖고 일해 왔다.

 

집 가(家)를 쓰는 직업엔 예술가, 정치가, 음악가, 화가, 작가, 사업가, 철학가, 등산가 등이

있고, 사람 인(人)을 쓰는 직업은 종교인, 방송인, 정치인, 도인, 시인 등 대체로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 재능에 관계되는 일을 다루는 직종이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 으로 나눈다.

정치인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과 식견이 넓은 '든 사람'일 텐데 대부분의 정치인과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며, 사람됨이 훌륭한 '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으니

정치견(犬)이라 하면 어떨까?


사리와 당리당략을 멀리하고 오직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훌륭한 정치家를

기대하는 거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일까? 

어불성설(語不成說)이겠지.

 

사업에 성공하여 돈을 조금 번 친구가 어느 날 "자기 딸이 서울대를 나왔고 재물도 충분하니

사윗감은 반드시 강남에 사는 '사'자 붙은 직업이어야 한다."라고 해 

"그러면 돈을 주고 사던지, 요리사, 경매사, 안마사, 장의사도 '사'자를 쓰니 괜찮겠지?' 하며

면박을 준 기억이 난다.

 

'글을 쓰는 놈' 즉 기자에 대하여 쓰다가 '사'자 붙은 글까지 쓰게 됨은

특정 직업에 대한 잘못된 우월감이나 왜곡된 의식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2009.  6.  7.  휴일 아침에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