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31 나이가 들면서 보이는 것

김흥만 2021. 6. 24. 10:03

2021.  6.  24.  05;30

요즘은 일찍 먼동이 터 이 시간에 작품사진용이 아니라면 꽃이나 나무를 찍기에

불편함이 없다.

 

산길에서 '고삼(苦蔘)'을 만난다.

작년 태풍에 갈기갈기 부러지고 찢어졌던 고삼나무에 흰 꽃이 주렁주렁 달렸다.

 

예전 호색한(好色漢)들이 즐겨 쓰던 말이 있다.

그들이 산에는 산삼(山蔘), 바다에는 해삼(海蔘), 땅에는 고삼(高蔘)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에서 고삼이란 여고생을 뜻하는데 사람들이 참 못됐다.

나야 딸을 길러본 경험이 없지만 딸을 가진 부모들이 그런 말을 들으며 얼마나

속상할까.

 

꽃이 떨어진 봉황삼(鳳凰蔘, 백선) 조금 위에 핀 고삼(苦蔘)을 보며 쓴웃음이 나온다.

한방에서 소화기 피부, 안과, 신경계 질환을 다스리는데, 맛이 몹시 쓰기 때문에

고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고삼  >

 

혜민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멈춘다고 다 보이는 게 아니다.

 

마음이 가야 멈춰도 보이고 마음이 열려야 사물이 보이는 법이다.

허리를 구부려 '벌노랑이'를 찍으며 찰나(刹那)의 생각을 갖는다.

 

또 어느 시인은 "오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려올 때 보인다"라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오를 때 작고 앙증맞은 야생화들이 더 잘 보이고, 내려올 때 잘 안보이니

이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을 해야 될까.

 

또한 조물주의 의도대로 귀가 어두워야 할 나이에 17데시벌(dB)까지 들리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06;00

산길에서 매일 만나던 믹스견 '풍산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버려 유기견이 되었다가 풍산지구에서 구조되어 풍산이란 이름을 

얻게 된 풍산이는 어디로 갔을까.

 

국내나 미국 등에 입양이 되지 않으면 제주도로 데려갈 계획이라던 위탁견주와 함께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입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지나가면 길가 한쪽으로 피했다가 조용히 스쳐 지나가던 풍산이,

누군가에 의해 이곳에 버려지고, 유기견이라는 굴레를 쓰고 굶주려가며 견주를

기다렸던 풍산이,

관계기관에서 구조를 했지만 막상 입양이 되지 않아 안락사 직전 위탁모에게 극적으로

가입양 되었던 풍산이,

 

또 사람에게 버려질까 불안해하던 풍산이의 슬프고 선했던 눈망울을 생각하며

산길을 내려온다.

 

18;00

오늘이 며칠이지,

책상 위에 놓인 탁상용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느새 하지도 지나 여름은 익어가고 며칠 남지 않는 6월 달력은 시들어간다.

 

가는 세월이 아쉬워 달력을 치워볼까 생각을 했지만,

달력이 있어도 달력이 없어도 세월은 급행열차를 타고 흘러간다.

내가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으니 세월가는대로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구나.

 

                               2021.  6.  2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