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34 어느 친구의 별리(別離)

김흥만 2021. 7. 9. 10:34

2021.  7.  9.

소나기 펑펑 쏟아지던 날 부고(訃告)가 떴다.

얼마 전 부인의 병이 악화되어 요양 차 치악산에 들어간 친구의 암울한 목소리를

폰을 통해 듣는다.

 

더 이상 버티기가 버겁다며 담담히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위로의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아내와의 이별여행, 즉 심신을 정리하고자 치악산에 들어간 친구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별 또한 운명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리라 생각을 하며

통화를 끝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별의 고통을 겪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고 헤어지는 고통은 모든 사람들의 일상사라지만,

특히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死別)이란 그 어떤 슬픔보다 더 힘든 고통이

수반된다.

 

4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와 사별이란 이별의 고통 중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통하겠지.

동생이 사망하였을 때도 "아우야! 저승가는 길에 휴게소가 있다면 그곳에서

기다려라"하며 펑펑 울었다는 친구,

 

뒤늦게 핀 '수레국화' 한 송이를 보며

유난히 정이 많은 친구라, 아내와 사별이라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 도와주기 좋아하는 친구,

자기의 물건을 필요한 친구에게 서슴지 않고 내주는 친구,

산에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한다며 육포를 꼬박꼬박 챙겨오는 친구,

 

내가 우이령 고갯길에서 배낭에 달고 다니던 등산용 고도계를 분실하자

자기 팔목에 차고 있던 고도계를 선뜻 풀어주는 친구,

여러 개의 배낭, 바람막이 재킷과 귀마개를 주던 친구의 망연자실하고 있을 얼굴이

떠오른다.

 

상처(喪妻)의 아픔을 안은 사부곡(思婦哭)이라,

아내에게 잘 가라고 슬픈 인사를 했겠지만 이 작별인사는 남은 친구에겐 회한이

고스란히 남는 긴 여운의 인사일 수밖에 없다.

 

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의 애별리고(愛別離苦)라,

이별은 그냥 이별인 게 좋다.

긴 투병생활이었더라도 이별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라 한동안 

그리움이 친구의 눈앞을 가리겠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근본가르침인 사고팔고(四苦八苦)를 말한다.

여기에서 사고(四苦)는 생(生), 로(老), 병(病), 사(死)요,

 

이밖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사람을 다시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오음성고(五陰盛苦)가 있다.

 

오음(五陰) 즉, 오온(五蘊)은

물질적인 육체를 말하는 색온(色蘊),

의식적인 감각과 감정인 수온(受蘊),

마음속에 떠올리는 관념을 말하는 상온(想蘊),

의지나 욕구를 가지고 하는 행위인 행온(行蘊),

구별하고 인식하는 마음의 본체를 가리키는 식온(識蘊)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별(離別)이라는 말이 무서워 별리(別離)라는 말을 만들었다.

사귐이나 맺은 관계를 끊고 따로 갈라섬을 별리라 하고,

이별은 서로 헤어짐인데 그중 가장 슬픈 이별은 사별(死別)이라 할 수 있다.

 

억겁(億劫)의 인연 속에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고,

생(生)과 멸(滅)이라는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친구가 빠른 시간 안에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졸필로나마 몇 자 적어

보낸다.

 

                                2021.  7.  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