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30 두 가지 착각

김흥만 2021. 6. 20. 10:31

2021.  6.  20.  04;50

평소보다 10여분 일찍 나왔다.

주말 새벽시간엔 마스크를 쓰지않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을

피하고자 조금 일찍 나온 거다.

 

'까치수염'이 보인다.

수천수만의 식물 이름 중 '수염'자가 달린 식물이 얼마나 될까.

옥수수는 수염이 있어도 옥수수인데 동물인 까치에 수염이 달렸을까.

 

수염달린 까치를 본적이 없는데,

강아지 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서 얻은 별칭인 '개꼬리풀'이라는

이름이 차라리 더 어울리지 않을까.

 

수영을 닮아 '까치수영'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 까치수염을 찍으며

거친 내 숨소리가 귀에 확 들어온다.

                                <  까치수염  >

 

겨우 10분 올랐는데 숨이 가쁘다니, 

이젠 숨소리마저도 슬픈 나이가 되었구나.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두 가지 착각을 했다.

첫 번째는 나에겐 정년이 없고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근무를 할 줄 알았다.

 

이재(理財)에 밝은 친구가 노후대책으로 건물을 사라고 권유할 때도 현직에

충실하겠다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뇌종양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잡다한 세상살이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정년 후의 대책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정년이 찾아왔고,

32년간 몸을 담았던 은행을 떠나며 조금 당황했다.

                                         <  달맞이꽃  >

 

두 번째 나는 젊음이 계속되고 회갑(回甲), 종심(從心)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자 회갑이 오고, 시간과 추억이 쌓이며 종심이 찾아왔다.

나에겐 영원히 안 올 줄 알았던 종심이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며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진다.

 

언제부터 황혼현상(黃昏現象)이 생겼을까.

산속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지난 세월 회상을 한다.

 

눈(眼)이 침침해져 책을 오랫동안 볼 수가 없기에 황반변성을 탓하였고,

안경을 쓰면 글자가 잘 안보이고 안경을 벗으면 잘 보이니 근시 탓으로 생각을

했으며,

아침형 인간으로 초저녁 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는 걸 평생 생활습관으로

알았고,

아들보다는 손주가 더 보고 싶으니 '내리사랑'이라 생각했다.

 

먼옛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기억나니 아직도 기억력이 쇠퇴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을 했고,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아직 감정이 남아있음이요,

눈물이 나오면 안구건조증으로만 알았지.

그러고 보니 울 때는 눈물이 안 나오고, 웃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다.

 

샤워를 하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피부의 윤기는 떨어지고 머리털뿐만 아니라 눈썹도 하얘진다.

주름 없이 팽팽하던 얼굴에 어느새 저승반점이 많이 늘었구나.

 

착각 속에 즐기던 삶,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노인지반(老人之反)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아! 나도 늙어가는구나.

비소식이 없는데도 온몸이 쑤셔오니 안마기 위에 올라 잠시 졸아야겠다.

 

                               2021.  6.  20. 종심을 맞은 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