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38 막걸리 100통~1

김흥만 2021. 7. 24. 19:36

2021.  7.  24.

백수의 행동패턴은 늘 비슷하다.

오전 근무가 끝나기 무섭게 강동의 당구장으로 달려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벌써 한 달이 다돼가는 이야기다.

그날도 늘 찾아가는 단골식당에 들렸더니

어느 한 친구가 친구들 마음 편히 마시라며 막걸리 100병 값을 미리 지불

하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지요.

 

그날은 두병,

다음날도 두병,

그 다음날은 세병,

또 그 다음날은 네병을 친구들이랑 마시게 된다.

 

막걸리 빈병이 늘어날수록 재고는 줄어드는데,

참말로 이 무슨 조화인지 마음은 점점 꽉차오더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슴속에 외로움이 점점 차고, 툭하면 서러운 마음이

생기는데 친구가 선불한 막걸리 100병은 친구들의 쓸쓸한 마음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두통을 까서 주전자에 넣으면 8잔이 나온다.

한잔 두잔 권주를 하며 마시다보면 얼굴이 불콰해지며 취기가 돌기 마련이다.

 

막걸리 넉잔에 홍조를 띈 얼굴로 당구장으로 올라온다.

당구장에 출입한지 벌써 몇 년이나 되는데 기초실력도 없고,

마비되어 운동신경이 원활하지 못한 팔로 치니 아무리 쳐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팀으로 칠 때 에러(error)가 나오면 파트너 눈치 보기 바쁘고,

개인전으로 칠 때 다른 친구들은 남은 점수를 줄여나가는데,

나는 많은 에러로 남은 점수가 점점 늘어갈 때가 허다하다.

 

잘 치지 못하니 입으로만 느는 당구,

오늘은 에러가 몇 번이나 나오려나,

몇 번이나 잔소리를 들으려나,

그래도 당구장 갈 생각이 꾸역꾸역 드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송나라 학자 주신중(朱新中)은 삶의 오계(五計)와 오멸(五滅)을 말한다.

삶의 오계(五計)에 대해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계획인 생계(生計),

병마, 부정에서 몸을 보전하는 신계(身計),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는 가계(家計),

멋지고 보람있게 늙는 노계(老計),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계(死計) 등 오계를 말하며,

 

특히 다섯 번째 사계(死計)에서 죽음을 맞이할 계획을 세울 때

다섯 가지 인연과 작별하는 오멸(五滅)이 중요하다는 거다.

 

재물과 헤어지는 멸재(滅財),

남과 맺은 원한을 없애는 멸원(滅怨),

남에게 진 빚을 갚는 멸채(滅債),

정든 사람, 정든 물건과 작별하는 멸정(滅情),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멸망(滅亡)을 말한다.

 

고차원적인 오계와 오멸을 따지는 거도 좋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살아가며 맺는 삼대 인연인 학연, 혈연, 지연 중 학연에 더 점수를

준다.

 

만나자는 친구의 메시지가 반갑고 전화가 오면 더 반가운 인연이기에

어쩌면 반가움과 그리움의 크기만큼 살아남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어릴 때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태도와 가치관이 달라진 친구도 있고,

하는 행동이 마음이 안 드는 동창도 생기는 게 삶이다. 

 

7월도 다 지나간다.

한해의 절반이 후딱 지나가더니 7월 한 달도 슬그머니 지나간다.

그래도 올해가 다 가려면 아직 5달이나 남지 않았는가.

 

어제 기준 막걸리 재고가 열댓 병이라는데,

열댓 병밖에 남지 않은 걸까,

아님 아직도 열댓 병씩이나 남은 걸까.

 

어느 친구의 넉넉한 마음을 쌓은 막걸리 재고를 생각하며,

친구란 곁에 있으면 더욱 좋고,

또한 곁에 있지 않아도 늘 그리운 사람이 친구라는 걸 알게 된다.

 

                                   2021.  7. 2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