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0. 04;00
열대야를 느끼지 못했던 간밤,
모처럼 푹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날아갈듯 개운하다.
열대야 기준인 영상 25도와 지금의 온도인 23도의 차이가 이렇게 클까.
창밖에선 뻐꾸기가 뻐꾹뻐꾹대고,
아~아! ♬도레미파솔라시도♪하며 차례대로 음계를 높여 소리를 내본다.
사일 만에 목소리가 거의 회복되어 살만하다.
왜 그랬을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조금이라도 몸이 아프면 사람대접 받기가
쉽지 않아 고심(苦心)을 했는데 원인을 모르겠다.
04;50
먼동이 터온다.
오늘도 예외 없이 예봉산 위 하늘은 붉게 타오르는 아침노을을 연출하고
'까치'의 조금 우울한 소리, '휘파람새'의 경쾌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오른다.
땅바닥만 기는 줄 알았던 '며느리 밑씻개'가 산벚나무를 타고 올라가기에
살짝 만지다 잔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움찔한다.
고부간의 갈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며느리밥풀꽃'과 쌍벽을 이루는
'며느리 밑씻개'에 손가락을 찔리며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돌아간다.
진천중학교에서 실업 과목은 농업이었다.
여름방학이면 퇴비로 건초 3관(약 10kg)을 제출해야 실기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낫질에 서툰 나로서는 곤혹(困惑)을 치른다.
쇠비름은 잘 썩지 않아 학교에서 퇴짜를 맞기에,
바랭이, 기름새 등을 낫으로 베어 말리는데, 장갑도 없는 시대라 어설픈 낫질을
하다가 며느리 밑씻개의 잔가시에 찔리기도 했고 오른손 중지를 베어 지금도 흉터가
남아 보기 싫다.
낫질을 하다 다친 손을 본 다른 친구가 대신 건초를 해줘 실기점수를 다 받지만
왠지 미안하고 찜찜해 메뚜기라 불리던 농업담당 김주룡 선생님에게 이실직고를 하니
그냥 웃어넘긴다.
농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잡초로 바랭이, 쇠비름, 칡, 환삼덩굴, 가막사리 등을 치는데
'며느리 밑씻개'도 만만치 않다.
화장지가 없던 시절 며느리의 밑을 씻으라고 가시 많은 '며느리 밑씻개'를 따다 준
시어머니의 심술,
밥의 뜸이 제대로 들었는지 밥알로 확인하다 시어머니에게 걸려 설움을 받던 며느리가
죽은 무덤가에서 핀 '며느리 밥풀꽃'은 우리나라 고부간의 갈등을 대표하는 식물이다.
05;30
여름이 익어간다.
어느 가수는 나이가 먹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멋진 표현을 했다.
자연은 생육성쇠멸(生育盛衰滅)이라는 5단계에서 성(盛)의 정점을 향해 여름은
마구 달려간다.
한동안 들리지 않던 매미소리도 들린다.
매미소리가 반가우면 여름이 시작되는 거고,
시끄럽게 들리면 여름이 절정이고, 애잔하게 들리면 가을이 다가오는 건데,
아직은 선탈(蟬脫)의 아픔으로 들리지 않으니 이 더위가 한참 갈 모양이다.
06;10
어제도 그제도 이 시간이면 흰빰검둥오리가 9마리의 병아리를 이끌고
망월천을 올라올 시간인데 나타나지 않기에 한참을 기다리다 하릴없이 발길을 돌린다.
신호대기 중 인터넷 검색을 하니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 피크 등정 성공으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하산 중 7900m에서 추락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어온다.
2021. 7. 2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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