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46 산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

김흥만 2023. 5. 7. 13:03

2023.  5.  7.  04;30

가로등이 동시에 꺼지고 암흑의 세상이 밀려왔다.

강풍이 하늘에서 먹구름을 밀어냈고 그 빈자리를 별이

채워 나간다.

 

스마트폰의 플래시 기능을 켜지 않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빛으로 가득한 밤의 도시에서는 웬만한 별들이 보이지 않는데

인공조명이 일제히 꺼지자,

동쪽하늘에선 '개밥바라기별'이 밝은 빛을 뿜으며 서쪽으로

향하고 국자모양의 '북두칠성'도 선명하게 보인다.

 

견우성(星)과 직녀성(星) 사이엔 은하수가 넘실거렸는데

조금 남은 도심의 빛 공해로 이들 사이에 있던 은하수는

사라졌다.

 

서쪽하늘에 조금 남은 먹구름은 달빛을 가렸고 북쪽하늘에서

보이는 별자리들이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지수가 10 이하로 떨어지고 시커먼

밤하늘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별들이 빛을 내보낸다.

 

동양은 큰별(巨星)을 중심으로 28수(宿)의 별자리를 만들어냈고,

서양은 황도의 별자리와 기린자리, 큰 곰자리, 작은 곰자리,

용자리, 카페우스자리 등 무수한 별자리를 만들어냈다.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예봉산 상공에서 반짝거린다.

사람들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비, 인간의 수명과 운명을

관장하는 신(神)으로 모셨고,

집안에 칠성단을 쌓아 그 위에 정화수를 놓고 안녕과 명(命)을

빌기도 했다.

 

따라서 장수를 기원하는 북두칠성은 사(死)를 주관하는 별이요,

자식을 빌은 남두육성(南斗六星)은 생(生)을 주관하는 별이

된 셈이다.

 

05;30

작년 그 자리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란 꽃창포'가 피었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풀과 꽃,

피고 지고 또 피는 꽃들의 시간에 순응하다 보면 금세 여름이 오겠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장소에서 배고픈 고양이가 기다렸다.

호주머니에는 초콜릿밖에 없는데 어쩌나.

 

휴!

산다는 게 뭔지.

고양이를 바라보며 묘한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건 결국은 죽어간다는 뜻일까.

살아있는 생명들은 결국 죽기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삶은 좋은 거고 죽음은 나쁘기만 한 걸까.

생(生)은 시간과의 만남이고 사(死)는 시간과의 헤어짐인데

말이다.

 

친구의 육필(肉筆)에서 삶을 체념한 죽음의 냄새가 풍긴다.

우리에게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정말로 서로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죽으러 가는 우리에게 누군가는 먼저 죽어서 사후세계(死後

世界)에 도착하는 법을 안내해 줄 필요는 없다.

그 역할을 종교가 하기 때문이다.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우리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픔은 혼자만의 외로움이다.

아픔 중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아픔에는 절대 고독이 수반된

혼자만의 시간이다.

 

흔히 우리, 함께라는 말을 많이 쓰고 반려(伴侶)라는 말도 많이

쓴다.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虛像)으로 완전한 반려란 없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

 

아프면 아플수록 혼자만이 텅 빈 곳을 헤매는데,

텅 빈 것의 가득한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아픈 사람

누구에게도 없다.

 

별들은 수억광년이라는 멀고 먼 거리에서 빛을 보낸다.

순간이 모여 시간이 되고 그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그 세월을 넘어 반짝이는 별빛을 지금 나에게 보내는 것이다.

 

반짝이는 별이 혼자이듯 나도 지금 혼자다.

또한 누구든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산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고 기다림을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산다는 건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훅하며 더운 바람이 밀려온다.

여름이 지척까지 다가온 모양이다.

 

한 달이나 빨리 핀 아카시아꽃 향기, 이팝나무꽃의 향기에

머리가 어찔하다.

 

다시 몰려든 먹구름은 빗방울을 뿌려대기 시작하고,

함께 몰려온 강풍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2023.  5.  7.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