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2. 19;00
국지불국(國之不國)이라,
즉 "나라는 나라이나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은
나라가 부패하고 관리들이 가렴주구(苛斂註求)를 일삼던
고려말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이다.
나는 2019년 8월 8일 당시 돌아가는 나라꼴이 한심해 느림의
미학 474호의 제목을 '국지불국'이라 썼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진정한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고와 사건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묻고 또 묻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장맛비가 내려도 참 많이 내렸다.
어쩌면 하늘에서 물을 쏟아부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며칠 전 청주 오송 궁평 2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경북 예천에서는 실종자를 수색하던 꽃다운 나이의 젊은
해병대원이 꿈도 펴지 못하고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해당 관계기관에서 신경을 쓰고 미리 통행차단만 하였더라면~,
해병대원에게 구명조끼만이라도 입혔더라면~,
지나고 보면 온통 아쉬움 투성이다.
서초동 초등학교에서 젊은 여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였으며,
신림역 근처에서는 어느 남자가 140m 구간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차별 흉기로 찔러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였던가?
학생인권만 소중하고, 교사 생존권에는 어째서 관심이 없는 걸까.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으로 192명이 사망하였고,
2020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건으로 3명이 희생되었다.
2022년 9월엔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되어 7명이
사망하였으며,
2020년 4월 경기도 이천 화재로 38명이 사망하였고,
2022년에는 대전 아웃렛 화재로 7명이 숨지는 등 인재(人災)로
인한 대형 사건이 숱하게 발생하였다
매번 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을 규명하고 또다시 그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겠다는 비장한 표정의 고위 공직자,
근엄한 척 가면을 쓴 위선의 정치인이 수두룩한데도 불구하고
대형사건은 그침이 없으니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의 행태일까.
세월호 사건 때는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발칸반도'로 향하며
UAE 두바이 공항과 튀르키에 앙카라 공항에서 환승 대기 중
세월호에 관한 뉴스속보를 보며 어른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애가 타기도 했다.
해병대 병사가 실종되던 날에는 너무나 안타까워 핸드폰을
수시로 열어 보며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비록 종교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예수님, 부처님 등 여러 신(神)
에게 빌고 또 빌었지만 해병대원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 금계국 >
청주에 사는 내 동생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나기 30분 전
그곳을 통과하였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역주행하는 차량을 보고 상향등과 크랙션을
눌렀다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두 번이나 사과를
했다.
동생이야 지하차도에서 필사의 탈출을 하는 차량의 사정을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 우리 국민들은 위급할 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하여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니 갑자기 비참해진다.
세월호 때는 국내에 없어서 예상을 못했다.
그러나 이태원 서양귀신놀이에 많은 인파가 몰린다는 뉴스를
보며 대형사고가 날 것으로 예상을 했고,
친구들에게 내가 느끼는 불안감에 대하여 이야기도 나눴다.
예지몽(豫知夢)인지 심리몽(心理夢)인지 차이는 모르겠지만
핼러윈 데이 행사에 대해 방송이 나올 때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은 현실이 되어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나 부상을
당하는 등 참사로 분류될만한 사건이 잊을만하면 반복하여
발생한다.
TV나 인터넷으로 보는 사고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산다.
물론 사고를 근본적으로 막고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전에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지 못하였음은 분명히 인재(人災)이다.
20;00
밤 8시 뉴스에 180mm 이상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나온다.
오늘만은 애석한 죽음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에서나마 희생자에게 국화의 한 종류인 금계국을 바친다.
이 글을 쓰다가 TV 뉴스로 잠시 화면을 돌리니 고 채수근 해병의
영결식 장면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한줄기 눈물이 흐르기에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글을 쓰던 블로그로 화면을 바꾼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영면(永眠)을 비는 밤,
창문을 두드리며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망연히 바라본다.
수백 년 전 고려말 유행하였던 국지불국(國之不國)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온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가 언제
되려나.
2023. 7. 22.
석천 흥만 졸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761 기다리는 마음 (1) | 2023.08.13 |
---|---|
느림의 미학 760 시한부 삶 (1) | 2023.07.30 |
느림의 미학 758 싸움 말리기 <선거공약 제 1호 > (0) | 2023.07.20 |
느림의 미학 757 위암(胃癌) 선고 후 7개월 (1) | 2023.07.16 |
느림의 미학 756 졸필(拙筆) (0) | 2023.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