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0.
작년에 이어 이번 가을학기에도 학생회장으로 피선(被選)된
손주와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 전 선거에 대비한 연설 연습을 한다고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는데 5명이 출마했고, 3명이 결선투표에 진출해
21/26표를 얻어 8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회장 되는 걸 원하기에 경쟁이
치열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교는 유치원과 달리 이미 경쟁사회이다.
회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하게 되고,
나름대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의(義)롭게 살 수 있다는
거다.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맹자'의 상편에 나오는 말로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의 마음에 차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이다.
물론 호연지기는 산수(山水)가 뛰어난 곳에서 마음껏 즐기며
기를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같이 조직화된 곳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호연지기를 잘 길러 평상시에 마음을 잘 지키고 의리가 항상
가득 찬 사람을 맹자는 '대장부'라 했다.
< 황금 낮달맞이꽃 >
선거공약을 들어보니
1. 싸움 말리기 2. 우산대여 3. 고민상담을 내세웠다고 한다.
우산대여와 고민상담은 누구나 내세울 수 있는 공약이지만
뜻밖에 "싸움 말리기"라는 공약을 들으며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초등학교는 어린이들이 세상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곳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른들이 모르는 싸움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싸움을 말릴래?"
손주는 "친구들에게 봉사를 잘하고 태권도 3품(단段)으로
학년에서 제일 고단자이며, 태권도 시범단 활동을 친구들이
잘 알고 있어 본인 말에 무게가 실린다"라고 의젓하게 답을
하니 나로서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한 셈이다.
우리 때도 선거공약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의 지시를 받아~" 보조활동을 하는 게 전부 아니었나.
무릇 인간사회에선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초등학교라는 어린이 사회에서도 갈등은 늘 존재한다.
싸움이 날 때 한쪽에서 양보를 하면 금세 끝이 난다.
그러나 양보만 해선 살 수 없는 노릇,
때로는 자기 목소리를 내야만 할 때도 있다.
어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잠시 주춤한다.
나는 무조건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방향을 조금 달리하면 분명 결과는 조금이라도 달라진다.
그냥 아이의 관점에서 봐주고, 아이의 판단을 존중해주려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이에게 간섭을 하지 않고,
양보와 협력, 그리고 리더십(leadership)에 대해 간결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막내 손주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든든
해지니 나도 나이가 먹긴 먹었나 보다.
2023. 7. 2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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