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30. 19;00
십수 년 전에 술을 좋아하던 조카사위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 눈물을 흘리며 "지금 들어가면 아마도
살아서 못 나올 것 같다."라는 말이 유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장례식장에서 들으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최근 복막염에 이어 패혈증(敗血症)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친구가 조금씩 회복기미를 보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온다.
전립선암, 담도암, 방광암, 후두암 등과 투병하는 여러 친구들의
소식은 수시로 들어오고 소통을 하는데,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는
친구 소식이 한동안 뜸해졌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금세 망각을 한다.
시한부 삶이라,
어차피 사람의 생명은 무한(無限) 하지 않고 유한(有限)하다.
단지 생명의 마감기한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무한한 줄 알고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이다.
나는 단 며칠이지만 시한부 삶을 살아봤다.
뇌종양 판정을 받을 때,
주치의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3개월 내 전신마비가 오고,
6개월 이내에 사망을 한다는 선고(宣告)를 한다.
이미 신체의 상당 부분에 마비가 진행되었고,
수술 중 Table death 즉 사망률이 70% 이상이라며 매우 위험
하다니 이건 숫제 암선고(癌宣告)가 아니고 예비 사망선고가
아닌가.
가장으로서 조직의 장(長)으로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나.
수술을 택하며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참으로 난감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지.
이번 생(生)의 마지막일지도 몰라 사무실에 들러 중요한
사항을 메모로 남긴다.
내가 직접 심은 담쟁이 푸른 잎이 지점장실 유리창을 덮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The Last Leaf)'가
생각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내버려 두면 점점 커지기에 때로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수술 후 커다란 상처는 흉터로 남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사라졌다.
따라서 걱정 근심도 사라진 거다.
최근 참사로 불릴만한 일들이 반복되어 생긴다.
그 현장에 있지 않아 살아남았다는, 살아있다는 안도감도
반복된다.
내가 느끼는 안도감의 실체는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생(生) 쪽으로 넘어왔다는 실감을 예전에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는 "죽음을 기억한 이후에야 죽음을 막을 수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살아남아 안도하는 비참함이 되풀이되는 게 우리네의 인생이
아닌가.
머리 좋은 사람(才)은 태도 좋은 사람(德)을 이길 수 없고,
재와 덕이 있는 사람은 운발(運)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따라줘도 복(福) 있는 사람에게 당할 수
없고,
복이 있어도 오래 사는 사람(壽)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하니
세상이치는 알면 알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모르는 거 투성이다.
지금 내 옆에 누가 있는가.
암튼 지금 단계에서 수(壽)를 따질 수는 없고 내가 최고로
누리는 복은 인복(人福)이다.
우리는 삶에서 종종 상식에 반하거나 겪어온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일에 맞닥뜨리곤 한다.
나와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이 불편하기에 손절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하는데 그게 인생인 모양이다.
가끔은 잠깐의 휴식과 일탈(逸脫)도 필요하다.
이제 눈(眼)의 휴식을 끝내고,
아픈 친구들의 분투(奮鬪)를 응원하며 졸필을 끄적거린다.
2023. 7. 3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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