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7.
우편함에 편지 한 통이 들어있다.
누가 보냈지?
나한테 올 편지가 없는데?
인터넷 시대인데 웬 편지가 생뚱맞게 왔을까?
발신인을 보니 한 XX로 되어있는데,
개봉을 해보고 나서야 얼마 전 별세한 친구의 아들이
보낸 편지라는 걸 알았다.
그러고 보니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별세한 친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구나.
살아있을 때는 늘 안타깝고 궁금해서 관심을 가졌건만
막상 타계를 하자 내 마음속에서 사라졌으니 사람의 인심이란
다 그런건가 자괴심(自傀心)을 느낀다.
어쩌면 이런 경우는 문해피사(文海彼沙)에 나오는 전형적인
노인지반(老人之反)이 아닌가?
예전일은 생생히 기억을 하고 최근일은 깜빡깜빡하니 말이다.
< 까실쑥부쟁이 >
나이를 먹었는지 요즘 들어 지인의 죽음을 자주 대하게 된다.
삶의 행복과 기쁨도 있겠지만 어느새 타인의 아픔과 죽음도
가까이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리움을 상기하는 일,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애달픔을 잊어버린 나,
예전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가 '망각곡선
(忘却曲線)'에 대해 쓴 글이 생각난다.
그는 망각은 학습직후 20분 내에 41.8%가 발생하며,
기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복학습과 더불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학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이를 '간격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에 대해 밸러드(Ballard)는 학습직후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기억과 재생이 더 뛰어나다는 과회상(過回想)
현상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의 양과 망각의 양을 전문가가
아닌 내가 어떻게 판단하고 조절을 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가 타계할 때마다 생기는 슬픔을 가슴속에
쌓아두기엔 연약한 인간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망각이 때로는 좋을 때도 있다고 애써 자위를 한다.
잠깐 켠 Tv에서 가수 양지은의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노래가 나온다.
[ ♬ 가지 마오 가지를 마오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가려거든 가시려거든
이 언약을 가져가시오~~~♬♪ ]
저렇게도 애절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니,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떠날 준비를 하고 또 누군가는
남는 게 자연의 섭리이다.
노래를 들으며 피안(彼岸)의 세계로, 황천(黃泉)으로 가버린
많은 지인이 떠오르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2023. 10. 17.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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