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75 얌체족과 스피커족

김흥만 2023. 10. 23. 19:38

2023.  10.  23.  05;00

가로등이 외로운 산길을 밤새도록 지켰다.

박무(薄霧) 속에서 한 사람이 작은 발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다가온다.

 

전형적인 미음완보(微吟緩步)를 하는 그 사람에게 "일찍

나오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은행 영업점 직원은 CS(고객만족 Customer Satisfation)가

체질화되어 있다.

직원은 고객만족을 위하여 친절해야 하고,

친절이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려면 제일 중요한 게

인사다.

 

나는 수십 년 은행 영업점 생활에서 몸에 밴 CS Training으로

지금도 인사를 잘하는 편이다.

특히 이런 새벽시간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2~3분 정도 차이를 두고 올라오는 '스피커족'에겐

인사를 하지 않고 큰소리로 "에이 시끄럽다"라고 짜증을

낸다.

 

그 사람이 손에 든 휴대폰에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며

기분이 확 잡치기에 투덜거린 거다.

 

산에서, 특히 이렇게 조용한 새벽의 산속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는 다른 사람의 사유(思惟)를 훼방 놓는 못된 행위가

아닌가.

짜증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스피커족이 올라온다.

 

휴대폰으로 듣는 음악소리가 그들에겐 달콤하거나 새벽

숲 속에서 무서움을 달래주는 소리가 될 수 있겠지만,

나같이 산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산책을 즐기는 사람에겐

소음공해일 뿐이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얼마 전까지 골전도 이어폰을 끼고 산책을 했는데,

지난 8월 돌발성난청이 온 후 그냥 순수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한다.

                                 <    화살나무 열매   >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혼자만 즐기려는 얌체족에 의한 소음은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저런 사람들과 싸우기도 그렇고, 그냥 묵과(默過)하려니 심사

(心思)가 사나워진다.

 

05;30

아직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며 많은 친구와 지인을 만나는데,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관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또한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생각이 예민해져

한번 어긋나면 좋았던 관계를 원상태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무괴아심(無愧我心)이라,

'내 마음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다'라는 뜻이다.

 

즉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인데, 내가 무괴아심의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가끔 스스로 반성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많은 사람과 어울린다.

어느 친구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 서운한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참고 이해하고 넘어가라 한다.

 

그게 말같이 그리 쉬운가.

어제는 겨울맞이 옷장정리를 하며 최근 3년간 입지 않았던

옷을 10kg 이상 버렸다.

사람도 물건과 같이 때가 되면 minimalism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락이 되는 지인이 아직도 수백 명이나 되는데,

굳이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과 부대끼며 어울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자신의 이익만 취하는 얌체족과 근거 없이 남을 비난

하는 비방족을 주변에서 내쳤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06;00

신호등이 바뀌었다.

대기하는 차들은 한대도 보이지 않고 4거리에 나 혼자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덩그러니 서있다.

 

시간 여유도 많은데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신호를 위반해

무단으로 길을 건너기가 싫다.

 

중용에선 신독(愼獨)을 강조한다.

즉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가라 했다.

 

06;10

오늘은 고교동창의 당구 월례회가 있는 날이다.

몇 시간 후면 말없이 과묵(寡默)한 친구,

마음이 순수한 친구, 미소가 환한 친구, 표정이 밝은 친구를

만난다.

 

그들은 50년 넘은 세월 한결같이 행복의 기(氣)를 서로

나누는 질박(質樸)한 친구이기에 내 마음은 이미 당구장에

가있다.

 

                             2023.  10.  23.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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