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 15;00
집 근처에 있는 경정장에 들렸다.
경정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조정경기를 치렀던 곳이고,
지금은 모터보트 경기를 하는 경정장(競艇場)으로 운용 중이다.
호수는 푸른 물이 늘 넘실거리며 평화롭다.
젊은이들이 수시로 조정 연습을 하며 생동감을 보여주고,
주중에는 모터보트가 굉음과 함께 물 위를 질주하며 삶의
역동감(力動感)을 보여주기에 산책을 할 겸 자주 찾는 곳이다.
물가를 벗어나 뒤쪽으로 난 숲길을 걷는다.
개나리가 터널을 이룬 곳에 외롭게 서있는 소나무를 외계에서
온듯한 식물이 소나무 전체를 덮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외래종 '가시박'이
소나무 전체를 감아 고사(枯死)를 시키는 중이다.
관계자들이 가시박 뿌리에서 뻗어 올라온 본줄기 몇 가닥만
잘라주면 소나무를 쉽게 구할 수가 있는데 포기를 한 건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가시박 덩굴은 소나무를 칭칭 감았고, 칡과의 치열한 전투도
피하지 않는 '환삼덩굴'이 그 가시박을 밖에서 포위하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일부 가시박은 환삼덩굴의 집요한 싸움에 져 축 늘어졌고,
다른 가시박들도 매우 고전 중으로 보인다.
< 가시박 >
자연은 지혜롭다.
사람이 간섭을 하지 않아도 기세등등한 가시박을 환삼덩굴을
이용하여 스스로 정리를 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자연의 암묵지
(暗默知)가 아닌가.
나는 암묵지(暗默知)라는 표현을 가끔 쓴다.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지만 말이나 글 등의 형식을
갖추어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암묵지라 한다.
어머니의 손맛, 엄마가 아기에게 보내는 미소로 보채는 아기를
달래는 행위, 엄마손은 약손이라며 아기의 배를 쓰다듬어 주면
아기의 아픈 배가 낫듯이 알면서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을 암묵지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문서나 매뉴얼과 같이 형식을 갖춰 외부로 표출시켜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형식지(形式知)라 한다.
< 환삼덩굴 >
천적인 두꺼비가 황소개구리를 억제하는 바람에 그렇게도
극성을 부리던 황소개구리 소식이 요즘 뜸해졌고,
물속에서 토종 어류(魚類)의 씨를 말리던 베스와 블루킬도
무슨 이유인지 조용해졌다.
자연은 천적을 이용해 지혜롭게 생태교란종을 억제한다.
즉 사람보다 나은 암묵지를 구사하는 거다.
16;00
소슬(蕭瑟) 바람이 불고,
나무에 힘겹게 붙어있던 단풍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어느새 11월,
세월은 하릴없이 지나가고, 26도까지 올라간 이상기온이
겉옷을 벗게 만든다.
2023. 11. 2.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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