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4. 06;00
밤새 눈이 내렸고,
지금도 눈 내리는 세상은 설국(雪國)으로 변해간다.
크리스마스 캐럴(carol)이 사라진 성탄절 전날 새벽,
새벽 예배가 없고 트리도 점등이 되지 않은 교회 앞마당은
썰렁하기만 하다.
때마침 눈을 치우러 나온 교회관계자에게 점등을 부탁하니
흔쾌(欣快)하게 승낙을 하는데,
비싼 전기료와 민원이 많이 발생해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등을
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괜스레 가슴이 휑해진다.
비단 교회 앞마당만 썰렁한 건 아니다.
세상인심도 사납고, 썩은 냄새만 풍기는 사람들이 정치판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고, 국민들은 한숨만 내쉬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07;00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며칠간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 강추위로 오르지 못했던
앞산에 오른다.
산모퉁이에 놓인 텅 빈 의자에도 눈이 쌓였다.
그 옛날 주인이 있었던 의자에 오늘은 누가 앉을까.
아무도 앉는 사람이 없으면 이곳을 떠도는 지박령(地縛靈)이
주인이 되겠지.
어쩌면 이곳이 칠성단(七星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칠성단이라 생각하고 정화수 대신 쌓인 눈에 최근 타계한
친구의 명복을 빌어본다.
최근 가까운 친구 두 명이 이승을 하직하고 인간의 수명과
운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신(北斗七星神)에게 돌아갔다.
한 친구는 루게릭병의 일 년간 투병생활이 무위가 되었고,
지난주 타계한 고향친구는 십여 년 폐암 투병생활을 끝내고
영면에 들어갔다.
예전엔 친구의 부음(訃音)을 받으면 황망하고 손과 마음이
떨렸었다.
막상 종심의 나이가 되니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부음이
수시로 들어오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 되어 눈물도 나지
않는다.
또한 친구나 지인의 영정사진(影幀寫眞)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에 그냥 추억이나 떠올리는 소심한 사람이 점점 되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불교에서 말하는 팔고(八苦)
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팔고(八苦)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인 구부득고(求不得苦),
육신과 정신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오음성고(五陰盛苦)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별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 가장
힘들다는 애별리고(愛別離苦)의 고통이 점점 둔감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지나고 보면 허무(虛無)하고 허망(虛妄)한 게 삶이 아니던가.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숨 쉬고, 먹고, 싸고, 자고, 놀고
또 무엇이 있던가.
때가 되면 눈 위의 저 발자국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우리네
삶도 영정사진(影幀寫眞)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질 텐데,
무슨 욕심이 남았으며 구차하게 또 무엇을 남기리오.
2023. 12. 2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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