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4.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검사결과 오른쪽 귀의 청력이 25db로 돌발성 난청이 온 지
4개월 만에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왼쪽은 7db로 여전히 예민하고, 오른쪽 귀는 돌발성 난청이
왔던 날 검사수치가 57db에서 오늘 25db까지 떨어졌으니
스테로이드 치료덕을 단단히 본 모양이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처방약 '기넥신'을 사서 가방에
넣고 전철에 오르니 사람들이 웅성댄다.
한쪽에서 비쩍 마른 노인이 서서 큰소리로 "일본~~ 전쟁,
미군~~ 씨팔"하며 마구 욕을 해대니 정상으로 돌아온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고,
한쪽에 서있는 젊은이들이 작은 소리로 욕을 하며 투덜
거리는 걸 보니 은근히 화가 치민다.
제지를 하려고 다가가는데, 아마도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앞쪽에서 전철보안관 두 명이 다가오고 전철이 명일역에서
멈추자 보안관이 그 노인을 끌어내리며 상황 종료가 된다.
저렇게 행동을 하니 다른 노인까지 욕먹는 게 아닌가.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불특정 노인들이 막무가내
(莫無可奈) 행동으로 욕을 먹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유튜브를 크게 틀고 듣는가 하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옆 사람의 다리에 닿기도 하고,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며, 심지어는 젊은이에게 자리양보를 강권하는 노인도
보인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노인에 대하여 연금충(蟲) 또는 틀딱충
(蟲)으로 혐오 표현을 하고, 65세 이상 노인으로 분류가
되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정확히 일주일 전 은행 동기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가
자신의 담도암 투병 이야기를 잔잔히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동기가 이야기를 중간에 못하게 하고, 다른 동기에게 훈계를
하며 충고를 하는 추태(醜態)까지 보인다.
심지어는 모임의 리더로서 열심히 봉사를 하는 동기회장에게
회장노릇을 그만하라며 안하무인으로 윽박지르기도 해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고, 그 추노(醜老)는 강동당구 단톡과
동기모임 단톡에서 퇴출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과 사람이 절연(絶緣)하기란 참 쉽다.
또한 서로 절연(絶緣)을 하면 다시 관계 회복이 엄청 어렵다.
암튼 나이 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훈계나 충고는
최악이다.
따라서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현장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훈계나 충고는 쥐약이나 같기에 말을 가려서 해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된다.
노인(老人)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노인이 노인으로 불리는 늙었다는 말은 노인이 듣기에 썩
좋은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추노(醜老)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주민 복지센터 등에서 업무를 볼 때 아버님, 어머님, 어르신
소리를 자주 듣는데 이 호칭 역시 거부감이 든다.
오늘 병원진료 시 간호사가 '김흥만 님'이라고 호명을 했고,
십 년 넘게 얼굴을 봐서 익숙해진 간호사는 나에게
아저씨라는 호칭을 정겹게 쓴다.
호칭이 어떤 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름을 불러주는
거와 아저씨라는 표현이 더 좋게 들리니 나도 노인인
모양이다.
전철에서 추태를 부린 노인과 동기모임에서 추태를 보인
추노(醜老)의 얼굴이 오버랩(overlap)되며 잠시 기분이
잡쳤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빗소리는 참 묘하게도 나를 사유
(思惟)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2023. 12. 1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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