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7. 07;00
한 젊은이가 휴대폰을 보며 자전거를 달리다가 인도와
차도를 분리한 가드레일을 박고 넘어진다.
많이 다쳤으면 도움을 주려 접근을 하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난다.
안전모를 쓰지 않았어도 다행히 다치지 않았고 일어나는
동작을 보니 넘어진 경험이 많은 모양이다.
문득 예전 검단산 호국사 돌샘에서 물을 떠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등에 짊어진 물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얼굴과 머리를 다쳤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도 멀쩡한 길에서 약간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면서 얼굴, 손과 무릎을 심하게 다쳤었는데
저 청년은 다치지 않았으니 젊어서 순발력이 좋은가 보다.
지하철을 타면 맞은편에 앉은 7명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
있다.
길에서도 대부분 자라목이 되어 휴대폰을 보며 걷고,
심지어는 차가 오든 말든 휴대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위험하고 아찔한 상황을
매일 목격한다.
차에 올라타면 시동을 걸자마자 내비게이션을 켜는데,
내비게이션 없이 차를 운전을 한 게 까마득한 옛날이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지금처럼 필수품이 되지 않았을 때,
누구 차든지 차량 내부에는 최신 전국지도책 한 권쯤은
비치되어 있었고,
모르는 지역을 갈 때는 출발하기 전 지도로 사전 예습을
했어도 헤매기 일쑤였지.
지금은 여행을 떠나기 전 예정 목적지에 대해 후기와 평점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할 때도 사전에 상세정보와 후기,
별점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된 세상이라,
휴대폰과 내비게이션을 멀리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거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은 빨라졌고,
지금은 5기가에서 6기가 시대로 넘어가며 더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내비게이션은 출발지에서 최적의 경로를 안내하여 목적지로
빠르게 안내하는데 수입차인 벤츠와 BMW도 최근 가장
정확한 우리나라의 내비게이션을 장착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바쁜 생활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겐 항상 시간이 부족하기에
목적지를 향해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 주고 최적의 효율을
추구하는 내비게이션을 멀리 할 수 없고,
그 덕분에 길치(痴)가 사라져 누구도 길을 잃지 않는다.
학교에선 과정이 중요하다고 가르쳤고 배웠는데,
이젠 원하던 원하지 않든 시작과 끝만 있는 납작한 세상,
실리만 추구하고 이타심(利他心)이 사라진 세상이 되어간다.
13;00
아픈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폰을 든다.
번호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폰에서 연락처를 검색하고
통화를 시작한다.
은퇴하기 전에는 수백 명의 전화번호가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있었고 필요할 때마다 자동으로 꺼내 썼는데,
이젠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으니
나의 암기력이 많이 퇴보한 모양이다.
수년 전 서천 희리산 등반 후 계획 없이 가다가
'마량포구'에서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TV에 나오지 않은
식당'이라는 간판에 홀려 한잔술을 마시며 노독(路毒)을
풀기도 했었지.
이젠 바쁠 것도 없으니
가급적 휴대폰과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때로는 불확실성과 미스터리를 만나기도 하고,
계획 없이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낯선 것들을 만나는 것도 괜찮겠다.
위층에 사는 쌍둥이들이 쿵쿵대며 뛰어논다.
조금 시끄러우면 어떤가,
울고 뛰어노는 건 아기들만의 특권이다.
잠시 후 뛰어놀던 아기들이 울기 시작하고 우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린다.
창밖에서 따사한 햇살이 들어온다.
삶의 정석이 된 휴대폰과 TV를 끄고,
수면모드로 설정한 바디프랜드 의자에 누워 안마를 청한다.
조용하니 머리는 정적명상(靜寂冥想)이요,
안마기가 온몸을 흔들어대니 몸은 동적명상(動的冥想)
이로다.
지금 당장은 스마트폰과 낮잠 등이 나의 무기력을 심화
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처럼 휴대폰을 끄니 단톡공해에서 벗어나 마음이 평안
해진다.
어쩌면 이 시간만큼은 불확실한 지금을 받아들이고 삶을
탐색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
2024. 2. 17.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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